“소프트파워 문화 강국 위상 새삼 실감 OECD 가입 25년, 선진국 내 ‘인싸’됐다”

2021.12.06 최신호 보기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우리나라가 ‘선진국 경제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29번째 회원국으로 가입(1996년 12월 12일)한 지 25년을 맞았다. 2021년은 코로나19 대유행에서 보여준 K-방역과 그룹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해 영화 <기생충>·<미나리>,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지옥> 현상까지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글로벌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소프트파워 강국으로 부상한 해였다.
OECD 가입 25년 차를 맞아 OECD 회원국으로서 회고와 기념이 어느 해보다 각별하다. 11월 1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사진)을 만났다. 김흥종 원장은 20여 년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일한 유럽 지역 및 국제통상 분야 전문연구자로 OECD 회원국으로서 우리나라의 경제·사회의 변화상과 개혁 과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OECD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를 끊임없이 비춰주는 거울이다. 다른 회원국과 비교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 그림은 지금 어떤 풍경일까?
“우리는 압축적인 경제성장과 민주화 과정을 겪은 나라, 역동성과 창의성이 분출하는 나라, 개발도상국에서 60여 년 만에 선진국으로 진입한 매우 진귀한 사례다. 우리는 이제 혁신지수도 높고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나라로 변모했다. 20여 년간 업무차 외국 여러 나라에 나가보니 우리가 압축적 경제성장을 이룬 건 잘 알지만 동시에 압축적 민주화 과정을 겪은 국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경제 영역 못지않게 ‘다원적 민주주의’도 OECD가 추구하는 중요한 설립 이념 가치 중 하나다.”

▶1996년 10월 25일 당시 공로명 외무부 장관(왼쪽)이 프랑스 파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본부에서 도널드 존스턴 OECD 사무총장과 OECD 가입 서명식을 하고 있다.│한겨레

개인 행복과 삶의 질 높이는 게 당면 과제
지난 25년에 대해 그는 “가입 10년을 막 지난 2007년에는 이제 OECD 회원국으로서 성공적으로 안착해가고 있구나 하는 감회였다. 20주년이던 2017년은 우리 사회가 유례없는 정치적 격동기를 통과하고 있던 때라 OECD 기념에 별다른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다”며 “문재인정부 들어 지난 5년은 우리가 소프트파워 강국으로 도약했다. 지금은 우리가 OECD 안에서 ‘인싸(인사이더)’가 됐구나 하는 자부심과 긍지를 여러 현상과 사례에서 자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OECD 산하 경제검토위원회(EDRC)는 몇 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프랑스 파리 본부에서 각 회원국별로 경제정책과 거시경제 동향, 금융·기업구조조정, 사회정책, 고용·산업정책을 검토·평가하고 회원국별 ‘경제검토보고서’를 발간한다. 여기에서 정책적 해결 과제를 제시하고 권고한다.
“프랑스를 검토할 때 한동안은 우리나라가 주된 검토국이 돼 우리 대표단이 프랑스 정부에 사회·연금개혁 이슈를 개혁 과제로 요구했다. 다른 회원국들이 우리를 검토하는 시기에는 우리가 대규모 대표단을 파리에 파견해 우리 정책을 설명하고 방어한다. 가입 초기 10년은 당당하게 OECD 일원으로 인정받는 시기였고 그 뒤 2006~2016년까지는 도약기였다. 지금은 인사이더로 확인받고 있다.”
지난 10월에 러시아에 가보니 여러 대외정책 담당자들이 “‘나도 <오징어 게임>을 봤다. 그 드라마가 한국의 현실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는 게 맞느냐’고 물어보더라”며 소프트파워 문화 강국으로서 위상을 새삼 느꼈다고 김 원장은 덧붙였다.
하지만 다른 OECD 회원국에 견줄 때 사회 구성원들이 마냥 행복하지는 않은 나라이기도 하다고 김 원장은 강조했다.
“국민 개인의 행복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해결 과제다. 우리는 OECD 다른 회원국인 포르투갈보다 행복지수가 낮은 편이다. 압축적 성장과 민주화 과정에서 너무나 빨리 변하는 사회를 살아왔기 때문에 정신문화적 측면과 물질적 풍요 사이에 이른바 ‘시간 지체’ 현상이 나타나는 건 불가피하다. 개개인이 별로 행복하지는 않은 사회라는 점을 인정하고 국가와 사회, 개인 모두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한 제도·규범·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2021년 10월에 주 OECD 대한민국대표부가 발간한 OECD 가입 25주년기념 자료 책자 표지

세계경제 질서 수립에도 적극 참여

저마다 해결해야 할 여러 사회문제를 안고 있는 건 OECD 회원국마다 엇비슷하다.
“선진국으로 불리는 나라들을 가보면 어느 나라든 쉽사리 해결하기 힘든 여러 문제를 많이 안고 있다. 우리가 주변 선진국들간의 경쟁에서 밀리고 추격당하는 샌드위치 신세에 있다고 말하지만 전 세계 대다수 국가가 각각 형편대로 그런 샌드위치 형국에 놓여 있다.”
OECD 최고의 노인 빈곤율 지표 등을 인정하되 과도하게 불안해하거나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도 피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우리 사회의 소득수준에 대해 “마치 높은 근로소득을 얻고 있으나 자산은 갖고 있지 못하는 흙수저 출신의 유능한 회사원과 같은 형상”이라고 진단했다.
“우리는 OECD에서 경상수지 계정 중 상품계정 비중이 압도적으로 큰 나라다. 서비스산업이 더 발전하지 못하고 소득계정이 여전히 낮은 비중에 머물러 있는 건 압축성장 속에서 완전히 퇴화되지 않은 수출 주도형 개발도상국의 흔적이다. 국제 비교에서 제조업이 발달한 독일에 견줘도 우리는 상품계정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제조업 상품 외에 서비스와 해외투자·소득에서 버는 돈을 늘려 ‘소득 안전판’을 갖추는 쪽으로 전환해가야 한다.”
그는 우리 사회를 ‘용광로 같은 사회’로 비유했다. “우리는 다른 OECD 국가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세대 갈등을 넘어서는 세계관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노년 세대는 거칠게 말하자면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이다. 빠르게 변하는 나라에 적응하기도 바빴다. 과거에도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하다. 이 노년 세대와, 10% 이상 매년 성장하는 개발 연대에 자신의 정체성을 남겨두고 선진국으로 강제 이주당한 장년 세대, 그리고 태생적으로 선진국 시민인 청년 세대가 함께 사는 용광로와 같은 사회다.”
지난 60여 년 동안 세대마다 전혀 다른 사회를 겪어온 만큼 한국적인 특유의 세대 갈등 구조가 형성됐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2010년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해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변신 한데 이어 2021년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는 ‘그룹 A’(아시아·아프리카 개도국)에서 ‘그룹 B’(선진국)로 지위가 변경·격상됐다. 이미 OECD를 통해 선진국 경험을 배우는 데 중점을 두는 단계에서 탈피하고 세계경제 이슈와 세계경제 질서 수립에도 적극 참여하는 나라가 된 것일까?
“남중국해 이슈와 무역 항로 문제, 아프리카 기아문제  등 글로벌 및 다자간 이슈의 경우 그동안 우리는 ‘우리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 한반도 문제가 당장 중요하고 주변 4강이 당사자로 있다는 측면을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목소리를 내고 국제외교에서 자율성을 확보하고 공간을 창조하는 노력을 더 경주해야 할 때다. 축구에서 공을 장악하려면 여기저기 움직이면서 자기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이치와 같다.”

▶10월 파리에서 열린 2021 OECD 각료이사회(MCM)에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머티어스 코먼 OECD 사무총장이 만나고 있다.│대외경제정책연구원

신남방정책으로 새로운 외교 지평 넓혀
김 원장은 문재인정부의 신남방정책은 우리가 주변 4강을 넘어 새로운 외교 지평을 넓히고 있는 사례라고 말했다.
“신남방은 우리와 가깝고 경제사회가 역동적이고 발전 가능성도 높다. 이미 우리 기업과 자본이 많이 들어가 있는 지역이다.”
점차 우리나라는 기후변화 대응과 공적개발원조 기여 등 국제사회에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이런 이슈에서 국제사회 논의에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우리가 OECD에 잘 보이려고 하는 게 아니다. 탄소중립과 기후변화 대응, 디지털과 그린 뉴딜 쪽으로 정부가 정책적·제도적 강화를 하면 민간의 돈과 투자, 창업이 그쪽으로 몰리게 된다. 정부가 탄소중립 기술개발과 산업육성, 자본투자를 유도하는 쪽으로 신호를 보내고 유인구조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OECD 가입 직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OECD 가입 비판론이 일기도 했다.
“OECD의 정책 권고는 참고하는 것일 뿐 법적 강제력은 없다. ‘경제 선진화’ 관련 제도·규범의 도입·변경 및 개혁은 우리 현실과 사정에 맞게 진도를 나가면 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오히려 1990년대 초에 더 빨리 가입했다면 더 좋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1980년대 중후반의 3저 호황 이후 1990년대 초에 민간·정부의 과잉 부채, 원화 환율 고평가,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 문제가 심각했다. 이때 가입해 이런 문제들을 더 빨리 교정했으면 좋았을텐데 당시 정책 당국자들이 잘 몰랐던 거 같다.” 그는 “OECD에 가입한 뒤에 더 좋아진 나라가 많다. 우리나라, 멕시코, 터키, 호주 등이 그런 사례”라고 말했다.

글 조계완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

연구개발 투자 OECD 평균 2배 ‘혁신’ 선도
ODA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유일 전환
1961년에 설립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개방된 시장경제’와 ‘다원적 민주주의,’ ‘인권 존중’을 3대 기본 가치를 동질적으로 공유하는 국가들에 회원국 문호를 개방하는 정부 간 정책연구·조정 협력기구다.
현재 회원국(38개국)은 오스트리아, 벨기에, 캐나다, 덴마크, 프랑스, 독일, 그리스,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포르투갈,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터키, 영국, 미국, 일본, 핀란드,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체코(이상 1995년 이전 가입), 헝가리(1996), 폴란드(1996), 한국(1996), 슬로바키아(2000), 칠레(2010), 슬로베니아(2010), 에스토니아(2010), 이스라엘(2010), 라트비아(2016), 리투아니아(2018), 콜롬비아(2020), 코스타리카(2021) 등이다. 우리나라 가입(29번째 회원국) 이후 들어온 ‘후배’ 회원국이 9개다. 어느새 우리도 OECD 중견국이 된 셈이다.
주 OECD 대한민국 대표부가 최근 25주년 영문 자료(Korea and The OECD: 25 Years and Beyond, 총 300여 쪽)를 냈다.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는 1996년 가입 당시 전체 OECD 국가의 2%에 불과했으나 2020년에는 3.3%로 증가했다. 25년 전 OECD 평균의 70% 수준이었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이제 OECD 평균과 같아졌다.
OECD 평균에 2년 정도 미달했던 평균수명은 지금 오히려 2년 이상 더 높은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출생 시 기대수명이 OECD 국가 중 다섯 번째로 높은 단계에 와 있다. 외국인 비율은 가입 당시 전체 인구의 0.4%에도 미치지 못했으나 이제는 4%에 달한다.
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도 가입 당시엔 OECD 평균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거의 2배에 근접하고 있어 혁신 경제를 선도하는 국가 반열에 올라섰다. 인터넷 보급률은 2000년대 초반부터 세계 최고 수준이다.
특히 OECD 가입 당시에 여전히 개발원조를 받고 있었으나 2010년 OECD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해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세계 유일의 나라가 됐다. 개발도상국과 최빈국 등에 지원하는 국제개발원조(ODA) 예산 규모는 2020년 3조 원(국민총소득의 0.15%)을 넘었다. OECD 예산은 모든 회원국이 의무 참여하는 예산과 자발적·선택적으로 참여하는 기여금 조성 예산으로 구분된다. 회원국의 경제 규모에 따라 매년 분담률이 산정되는데 2021년 우리나라의 의무 예산 분담률은 OECD 전체 의무 예산의 3.5%(회원국 중 7위 수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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