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적 감각이 이끄는 대로 상식을 깨다

2021.11.29 최신호 보기
▶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 캔버스에 채색, 130×201cm, 1897, 뉴욕현대미술관 소장│ⓒ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보다 9년, 폴 고갱(1848~1903)보다 4년 연상인 앙리 루소(1844~1910)는 둘과 마찬가지로 독학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화가다. 화가로 전직한 나이는 셋 가운데 가장 늦다. 고흐가 27세 때, 고갱이 34세 때 전업화가의 길로 들어선 데 비해 루소는 지천명을 코앞에 둔 49세에 이르러서야 미술에 승부를 걸었다. 화가가 되기 전 고흐는 화랑 점원과 실패한 전도사의 길을 걸었다. 고갱은 짧은 도선사(導船士) 생활을 거쳐 11년 동안 증권회사 중개인으로 근무했다.
반면 루소는 22년 동안 파리세관에서 세관원으로 일했다. 오십 줄에 전업화가를 선언했지만 루소는 서른 중반부터 취미 삼아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마흔이 넘어서면서부터는 전시회에 꾸준하게 작품을 출품하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특히 주말마다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일요화가’로 불리기도 했다.
전업화가가 된 지 4년이 되던 1897년, 루소는 훗날 자신의 대표작으로 명성을 날리게 된 한 점의 작품을 세상에 선보인다. 참신성과 독창성, 단순성과 원시성으로 요약되는 루소 특유의 화풍이 고스란히 집약된 그림 ‘잠자는 집시’다.
부자연스럽고 어울리지 않는 인체 비례, 현실성이 떨어지는 생뚱맞은 묘사 등으로 별 볼 일 없는 아마추어 화가라는 화단의 비아냥거림과 멸시를 받았으나 루소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10년 뒤 루소는 자신의 진가를 알아주는 한 사람을 운명적으로 만난다. 1908년에 이루어진 만남의 주인공은 한 해 전 입체파의 화려한 탄생을 알리는 ‘아비뇽의 아가씨들’(1907)을 발표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20대의 천재 화가 피카소다. 루소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64세의 할아버지와 27세의 손자뻘 되는 두 화가의 만남은 사실 피카소가 마련한 것이었다.

초현실주의의 아버지
피카소는 몇 년 전부터 루소의 작품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회화의 기술적 솜씨가 보잘것없다며 평가절하한 세간의 평은 피카소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피카소는 루소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사물을 단순하고 명확하게 구성하는 기하학적 능력과 평면성·다시점(多視點)에 이어 환상과 현실을 엇갈리게 하는 투박하고 소박한 원시미를 눈여겨본 것이다. 입체파의 대가다운 안목이다.
피카소와 가까운 초현실주의 시인 아폴리네르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이 루소의 그림에 공감한 분위기도 한몫했다. 피카소는 새로운 질서와 가치에 대한 욕구가 분출하던 20세기 초, 전위적인 예술가들과 뜻을 모아 ‘루소의 밤’ 행사를 열었다. 화가 루소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진 뜻깊은 자리였다. 아폴리네르는 루소에게 바치는 시를 즉석에서 지어 낭독했다.
루소가 사망하고 10여 년이 흐른 1924년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한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루소를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로 받들었다.
‘잠자는 집시’의 등장인물은 동양풍 의상을 입고 자는 것처럼 보이는 흑인 집시 여자와 맹수의 제왕 사자 한 마리다. 배경은 모래사막이다. 사막 뒤로 강물이 보이고 그 너머로 산들이 줄지어 서 있다. 푸른 하늘 위로 창백하게 흰 보름달이 떠 있다. 여자 옆에 만돌린 악기 하나와 질항아리 물병이 놓여 있다. 집시 여자와 사자의 조합은 배경도 생뚱맞고 그림 속 모든 것이 평면적이다. 화가의 기교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촌스럽고 생경한 그림이다.
‘제아무리 사나운 육식동물이라도 지쳐 잠든 먹이 앞에서는 망설인다’라는 부제는 더욱 엉뚱하고 어색하다. 세련미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이 그림에 묘사된 공간과 상황은 현실 세계와 동떨어져 있다. 원근법과 명암법, 입체감 등 회화 기법도 지켜지지 않았다. 루소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미술이론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아 자신의 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그림이 천하제일이라고 굳게 믿었다. 현실성이 없는 공간 설정과 상황 묘사도 자신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림 전체에서 환상적이고 신비스러운 오라가 뿜어져 나온다. 구성도 지극히 단조롭다. 그 점이 그림의 명확성을 증폭시키는 이유다. 여인이 입고 있는 빨강, 파랑, 노랑, 녹색, 주황색 의상과 피부 빛깔은 원시성을 연상시킨다.

당연시한 지식과 기법 가차 없이 혁파
여인과 만돌린은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으로 사자와 물병은 옆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복합 시점이다. 단순하고 평면적인 구성과 다시점, 이국적이고 원시적인 분위기. 피카소가 이 그림에 주목한 것은 당연했다. 현대미술의 출발점이 ‘있는 그대로의 재현’이라는 전통 미술 규범의 타파라는 점에서 루소의 그림은 피카소 등 입체파 화가들과 꿈·상상력, 몽환성을 추구한 초현실주의 화가들을 흥분시켰다.
‘잠자는 집시’라는 제목과 달리 여인은 지금 잠든 것이 아니라 자는 척하는 것 같다. 보일락 말락 가늘게 뜬 두 눈과 입술 사이로 보이는 치아의 흰색이 이를 증명한다. 더욱이 인기척이라고는 없는 사막 한복판에서 사자를 만났으니 어찌 한가롭게 잠을 청할 수 있으랴. 사자의 행동도 이상하다. 금빛 눈은 살기와는 거리가 멀고 입을 꽉 다문 채 날카로운 이빨을 일부러 숨기고 있는 듯한 게 맹수의 위용이 온데간데없다.
집시 여인은 지금 사자와 평화로운 동거를 즐기고 있는 걸까? 하긴 떠도는 삶이 운명이고 머무는 곳이 집인 집시 여인에게 두려운 게 있을까?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무너뜨리는 설정이다. 루소의 그림은 우리가 당연시한 지식과 기법, 판단과 인식을 가차 없이 혁파했다. 인위적인 의도의 개입 없이 아주 자연스럽고 본인만의 날것 그대로 감각으로. 프랑스 시인 장 콕토(1889~1963)는 ‘잠자는 집시’를 본 뒤 ‘본능적인 감각이 이끄는 대로 자유분방하게 그린 환상적인 그림’이라고 칭송했다. 루소가 위대한 까닭이다.

박인권 문화 칼럼니스트_ PIK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전 <스포츠서울> 문화레저부 부장과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팀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와 사랑에 빠진 그림> <미술전시 홍보, 이렇게 한다>, 미술 연구용역 보고서 ‘미술관 건립·운영 매뉴얼’ ‘미술관 마케팅 백서’ 등이 있다.



페이지 맨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