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책나눔위원회가 매달 일곱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문학 ▲인문예술 ▲사회과학 ▲자연과학 ▲실용 일반 ▲그림책·동화 ▲청소년 분야의 추천 도서는 여러분의 독서 욕구와 지적 호기심을 샘솟게 할 것입니다. <공감>은 책나눔위원회의 추천 도서를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
김용택 지음 | 문학과지성사
우리는 시집을 언제 읽는가? 어떤 날 어떤 마음으로 독자들은 시를 찾게 되는 것일까. <섬진강>이라는 시집 때문에라도 김용택은 이미 ‘국민시인’이며 충분히 유명한 작가라고 생각했다.
시인은 매만지고 매만진 둥근 언어로 아픔과 절망이 지나간 자리에 ‘생활’을 세워 그것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때로는 나비로, 때로는 눈사람으로. 시인의 시선은 순간이어도 생의 신비와 아름다움이 거기에 깃들어 있다는 데 나는 놀랐다.
그는 이미 가진 언어적 포용력 외에 “새로운 말”을 찾기 시작한 듯 보인다. 이 시들을 쓰기 위해 더 생생하고 역동적인 감각을 새로 익혔을 것이다. 마치 시를 처음 배울 때처럼 설레며 어떤 떨림 속에서. 그 수년간의 결과가 모인 시집이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가 아닐까?
조경란(소설가)
듣기의 윤리: 주체와 타자, 그리고 정의의 환대에 대하여
김애령 지음 | 봄날의박씨
이 책에서 저자인 철학자 김애령 선생은 “삶은 이야기다”라는 화두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 화두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들, 혹여 이야기를 한다 해도 그 이야기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을 건넬 수 있을까, 그들의 말, 그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질문을 선생은 1부에서 우선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가”라는 또 다른 질문으로 변용한다.
선생은 폴 리쾨르와 한나 아렌트의 철학을 읽으면서 인간은 말하는 존재로서 서사적 정체성을 자신의 본질로 지니고 있다는 답변을 이끌어낸다. 풍부한 철학적ㆍ문학적 논의를 담고 있음에도 과하지 않고, 탄탄한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난해하지 않다. 교양 있는 독자들이 충분히 음미하고 즐길 수 있는 현대유럽철학 입문서로도 손색이 없다.
진태원(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종속적 자영업자에서 플랫폼 일자리까지
전혜원 지음 | 서해문집
살아가기에 힘든 세상이다. 생계를 유지하고 품위 있게 살아가려면 일을 해야 한다. ‘화이트칼라-신중산층’이라고 부르는 공식부문 대기업 정규직 사무노동자의 노동은 전체의 일부분일 뿐이다. 기계화와 자동화로 숙련에 기반을 둔 안정된 일자리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과연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각자 어떤 장소에서 어떤 노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이 책은 기자의 예민한 눈으로 바라본 한국 노동현장의 서늘한 풍경이다.
저자는 행간과 여백을 통해 조용히 묻는다. 개별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무엇이며 노동법, 노사관계, 노동정책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런 구체적 질문 밑에는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일하고 모멸감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은 어떻게 오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자리하고 있다.
정수복(사회학자·작가)
개와 고양이의 물 마시는 법:
유체역학으로 바라본 경이롭고 매혹적인 동식물의 세계
송현수 지음 | MID
과학이란 무엇일까? 흔히 사람들은 과학을 매우 어려운 지적 활동이며, 여러 전문가가 크고 복잡한 장비가 필요한 전문 연구실에서 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학이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하며, 그에 대한 답을 합리적으로 풀어내는 활동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변의 흔한 현상들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가지고 묻는 자세다.
이 책은 유체역학이라는 학문을 동물과 식물의 예를 들어 쉽게 풀어낸다. 즉 물과 공기와 동물과 식물에 관한 책이다. 개와 고양이뿐 아니라 꿀벌과 물고기, 식물의 씨앗에 이르기까지 물리학자의 냉철함과 생명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공존한다. 저자의 유려한 글솜씨와 아름다운 제본이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권복규(이화여자대학교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부동산, 누구에게나 공평한 불행: 우리는 왜 부동산 때문에 좌절하는가
마강래 지음 | 메디치미디어
부제목은 ‘우리는 왜 부동산 때문에 좌절하는가.’ 집 없는 사람, 집 하나 가진 사람, 집 많이 가진 사람 할 것 없이 부동산 문제로 골치를 앓는다. 어제오늘 문제도 아니다. 도시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70년대 이후 반세기 동안 이어지는 문제다. 도시계획·재생·행정을 연구해온 마강래 중앙대 교수는 이 책에서 부동산 및 부동산 정책과 현실의 과거와 현재를 살피고 대안을 모색한다. 계속 오르기만 하는 집값에 사람들은 망설임을 접고 부동산 경쟁에 뛰어든다. 투기판이 되어버리는 것.
저자는 정부 부동산 정책이 국토 공간의 쏠림 현상을 촉진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수도권에 아무리 많은 주택을 공급해도 중단기적으로만 효과가 있을 것이라 단언한다. 주택 공급은 더 큰 수요를 부르기 때문. 그렇다면 근본 해결책은? ‘수도권의 대항마인 메가시티를 지방에 구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표정훈(평론가)
국경
구돌 글/해랑 그림 | 책읽는곰
나라와 나라 사이를 가르는 선, 한 나라를 에워싼 선인 국경. 책은 국경을 주제로 한 논픽션 그림책이다. 어린이 논픽션 책은 자칫 지식에 집중하다보면 딱딱해지고, 반대로 재미를 내세우다보면 내용이 빈약해지기 쉬운데, 이 책은 이야기와 정보, 재미와 지식, 글과 그림의 균형이 참 조화롭다. 저자가 전하고 싶은 주제도 과하지 않게 지식과 정보 안에 잘 스며있다.
국경을 넘으면 무엇이 달라지는가라는 첫 단계 이야기를 마치고 나면, 지식의 수준이 한 계단 올라간다. 이제 국경은 세계를 어떻게 나누고, 다르게 만드는지, 인접국들의 관계는 어떤지를 들려주고, 독일 장벽을 통해 역사를, 유럽연합과 영국 브렉시트를 통해 진행형 국제정치까지 설명한다. 자연스럽게 분쟁과 평화에 대한 생각도 녹아든다. 그림책 한 권에 들어간 지식의 폭이 참 넓다. 책을 보고 읽으면 그림책 밖의 세계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책이다.
최현미(문화일보 문화부장)
쇼핑의 미래는 누가 디자인할까?:
10대가 알아야 할 마케팅의 모든 것!
황지영 지음 | 휴머니스트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먹고 자라는 콩나무와 같다. 우리는 입는 옷, 먹는 음식, 사용하는 물건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SNS를 통해 타인의 취향을 확인하고, 셀럽의 생활을 관찰하며 산다. 거리를 가득 메운 간판부터 빅데이터를 활용한 맞춤식 광고까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사람들은 쇼핑에 길들여지고 새로운 욕망으로 흔들린다. 1987년, 바버라 크루거는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I shop therefore I am’라는 작품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17세기 근대철학의 문을 연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I think therefore I am’라는 명제를 패러디했으나 현대인의 존재의미를 더 적확하게 드러낸 것처럼 보인다.
방법만 달라졌을 뿐 첨단 기술, 인공지능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소비자이면서 생산자, 노동자이면서 창업자로 살아갈 미래를 살아가는 지혜다.
류대성(<읽기의 미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