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책나눔위원회가 매달 일곱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문학 ▲인문예술 ▲사회과학 ▲자연과학 ▲실용 일반 ▲그림책·동화 ▲청소년 분야의 추천 도서는 여러분의 독서 욕구와 지적 호기심을 샘솟게 할 것입니다. <공감>은 책나눔위원회의 추천 도서를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일기 日記
황정은 지음 | 창비
이 책은 소설가 황정은의 첫 산문집이다. 이 사실이 화제가 되는 이유는 아마도 그간 작가가 소설에서 풀어내지 못한 사회적 관심사들 때문이 아닐까? 소설가 황정은은 일기를 쓴다. 직업병이기도 한 허리디스크 때문에 근육운동을 하는 이야기, 동거인과 저녁으로 가지를 요리해 먹는 이야기, 수세미와 제라늄과 떡갈나무를 키우는 이야기. 그리고 2017년 이후 매년 방문하는 목포행 기록, 혐오와 아동 폭력과 인권에 대해서, 그가 본 사회의 크고 작은, 아니 잊어서는 안 될 문제적 사고들에 대해서. 필요한 글들을 그저 사사로운 기록이라고 부르기에 이 가볍고 작은 판형의 책은 너무나 묵직하고 크다. 울림과 여운이. 책을 다 덮고 나서도 어쩐지 한 권 다 읽었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가 남긴 시대적 아픔에 관한 질문들 때문이리라. 사는 동안 우리가 기여해야 하는 모든 것에 관해 생각하게 하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다들 평안하시기를.”
조경란(소설가)
한국의 능력주의
박권일 지음 | 이데아
저자는 전통시대의 과거제에 기원을 둔 한국 능력주의의 원형을 해방 이후 “우승열패의 쟁취장”으로 정착된 고시제도에서 찾으면서 한국의 능력주의가 지닌 다양한 측면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다른 나라들과 사회문화적 비교를 통해 우리나라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작용하는 나라 중 하나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 책의 장점은 주로 규범적 측면에서 비판의 대상이 돼온 능력주의가 근현대 한국 사회의 현실 제도 속에서 어떻게 기능해왔으며, 신자유주의 전환 이후 한국 사회에서 왜 능력주의가 젊은 세대들에게 유일한 공정성의 기준으로 각광받는지 설득력 있게 설명해준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에서 능력주의 현상이 어떻게 형성되고 제도화됐는지, 그리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내면화됐는지 살펴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진태원(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
정치란 무엇인가?
함재봉 지음 | 에이치프레스
말이 제대로 서야 사회의 질서가 생긴다. 말의 뜻이 희미해지면 세상이 혼란해진다. 함재봉은 정치라는 개념어의 바른 뜻을 되새겨 먹고사는 민생에 몰두하는 경제의 논리를 넘어 고귀한 가치를 추구하는 행위로서 정치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민주주의와 공화정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리스, 로마와 피렌체를 거쳐 미국에 도달해 대한민국에 전달된 민주주의의 역사를 일필휘지로 보여준다. 정치에서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함재봉은 책의 부록으로 페리클레스, 안토니, 링컨, 처칠, 케네디, 마틴 루터 킹 목사, 레이건, 오바마로 이어지는 민주주의 역사에서 기억해야 할 명연설들을 정성스럽게 번역해 영문과 함께 독자들과 공유한다. QR코드로 연결하면 저자의 감동을 자아내는 국어와 영어 낭독을 들을 수도 있어서 영어 공부는 물론 정치 연설 연습에도 도움이 된다. 대한민국의 국민이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특히 정치인이나 정치 활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정수복(사회학자·작가)
데이터 과학자의 사고법:
더 나은 선택을 위한 통계학적 통찰의 힘
김용대 지음 | 김영사
우리는 데이터의 홍수 속에 살아가지만 장작 그 데이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떻게 하면 그 데이터를 잘 이해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른다. 코로나19 예방접종은 과연 안전하고 효과적인지, 조사 주체마다 서로 다른 대선후보 지지율의 이유는 무엇인지, 각종 경제지표의 등락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등. 데이터 과학은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오늘날 데이터과학은 의학자로부터 경제학자까지, 기상학자로부터 정치학자까지 모두가 활용하는 기본 지식이며 일반 시민들도 알아야 하는 삶의 도구가 됐다. 이 책은 이러한 데이터 과학의 전모를 일반 시민들도 알기 쉽게 여러 예를 들어 평이하고 명료하게 서술했다. 또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윤리에 이르기까지 최근의 뜨거운 주제 역시 빼놓지 않는 친절함을 보여준다. 데이터의 홍수에 떠내려가지 않고 중심을 잡는 시민이 되기 위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권복규(이화여자대학교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정은정 지음 | 한티재
부제목은 ‘농촌사회학자 정은정의 밥과 노동, 우리 시대에 관한 에세이.’ 먹을거리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와 함께 농부, 외국인 노동자, 외식 자영업자, 배달 노동자, 학교급식 노동자 등 그 관계를 이루는 이들이 처한 현실을 짚어본다. 저자는 “사람과 자연 모두가 상처받은 밥상을 무람없이 받아 들고 입만 흥겹고 배만 두둑해진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입만 흥겹고 배만 두둑해지는’ 가운데 농민이, 청년 노동자가, 학교급식 영역 바깥 청소년들이 소외된다. 청년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누군가의 먹을거리를 생산해온 이주노동자가 추위 속에 목숨을 잃는다. 또한 저자는 자영업자들의 현실에 깊이 주목하고자 한다. 왜일까? “그 고통의 심연에는 농촌의 고통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확신 때문에 내게 자영업 문제는 농촌의 문제이다. 그래서 지겨우리만치 농촌·농업·농민 문제와 더불어 자영업자 문제에 천착, 아니 집착하며 글을 써 왔다.”
표정훈(평론가)
우주 택배: 우리에게 지구는 너무 좁다
이수현 지음 | 시공주니어
우주 택배를 소재로 한 가벼우면서도 재밌는 어린이 SF 그림책. 우주여행이 일상화된 미래, 수롱이네 농장에서 나온 팝콘 옥수수가 우주 홈쇼핑에서 방영되고, 외계인으로부터 첫 주문이 들어온다. 평소 우주에 가보고 싶었던 수롱이는 엄마, 아빠가 한눈판 사이 몰래 택배 상자에 숨어 들어가 우주로 날아간다. 그곳에서 우주 택배 기사를 만나 어느 행성에서나 적응할 수 있는 신기한 조끼를 건네받고 배송 일을 시작한다. ‘우주’라는 광대한 세계에 ‘택배’라는 일상적 소재를 결합해 우주라는 세계에 친근하게 한 발 들여놓게 한다. 먼 세계로 떠나고 조금 성장해 돌아오는 성장담의 전형적인 구조를 안정적으로 펼치면서도 우주, 우주인, 우주여행에 대한 상상을 해보게 한다. 유쾌한 스타일의 일러스트, 또 일러스트 안에 깨알처럼 숨겨놓은 여러 물건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이 그림책으로 우주가 궁금해지면 보다 과학적인 논픽션 책으로 건너가게 하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는 책이다.
최현미(문화일보 문화부장)
시작도 끝도 없는 모험, 『그림 동화』의 인류학
오선민 지음 | 봄날의박씨
타인과 관계를 맺고 세상을 경험하면서 청소년들은 성장통을 겪는다. 우리는 동화처럼 아름답고 완벽한 삶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으며 성장한다.
권선징악처럼 뻔한 교훈만을 읽어낸다면 성장기의 독서는 얼마나 지루한 일인가. 오선민은 『그림 동화』의 주인공들이 겪는 사건을 통해 우리가 모두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너와 삶이 하나로 이어진다는 놀라움은 공존하는 존재로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들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재해석되고 당대의 진실을 담아낸다. 세상을 하나의 고정된 틀로 보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는 변화 의지가 필요하다. 가르치고 배우는 독서가 아니라 스스로 깨닫고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독서가 필요한 시대다. 성숙한 나를 위해, 어제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오래전 읽은 동화책을 다시 꺼내보는 건 어떨까?
류대성(<읽기의 미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