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2020년 영화 <기생충>의 미국 아카데미상 작품상 수상? 2021년 영화 <미나리>의 윤여정 배우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 수상?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빌보드 차트 석권? 아니면 2010년 김연아의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 이것도 아니라면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오늘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으로 대변되는 우리나라 문화의 세계화 현상은 과연 그 유래가 언제일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지금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든 각자의 자리에서 크게 신장된 대한민국의 위상을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필자는 곰곰이 되돌아보니 대한민국의 변화된 위상을 피부로 느낀 건 2019년 6월 유럽 방문길에서였다.
<기생충>이나 <미나리>가 나오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그 무렵이 대한민국이 어떠한 경제·문화적 임계점을 돌파하던 시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방문국 정부 인사들은 그들이 왜 우리나라와 협력할 생각을 하게 됐고 우리나라와 어떤 분야에서 협력할 것인지에 대해 체계적인 일정을 짜서 방문단에게 설명했다. 그들은 과도하다 싶을 만큼 우리나라를 우대하고자 했고 한국산 자동차·드라마·노래에 대한 애정을 일관되게 표현했다.
2019년과 대한민국 ‘한류’
이들이 갑자기 왜 이런 태도로 우리나라를 대하는지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정부 관리를 만나면 정부 관리에게 민간 회사 종사자를 만나면 그 종사자에게 여러 차례 “왜 한국이냐”는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이들의 대답은 대체로 유사했다. 첫째, 우리나라는 기술적으로 협력할 만한 기술 강국이며 둘째, 세계적 신기술을 빠르게 파악하고 이를 즉시 실전에 적용하는 최첨단의 국가이며 셋째, 경제력과 군사력이 뒷받침되는 부강한 국가라는 공통된 인식이 있었다.
우리나라 취재진을 이런 방식으로 초청한 역사가 있는지를 묻자 “역사상 처음”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만큼 2019년 6월 어느 날 유럽에서 우리나라를 함수에 넣은 계산기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정부 관리는 자신들이 직접 나서서 우리나라와 협력 강화를 추진하게 된 배경 중 하나로 한국 기업과 다리를 놓아달라는 민간기업들의 요구를 들었다. 민간에서 우리나라와 협력 지원 목소리가 높으니 관이 지원에 나서는 ‘상향식 행정’인 셈이다.
한 민간기업 종사자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은 자사 기술 및 제품의 수요처였지만 단시간 안에 기술적으로 빠르게 자사를 따라잡아 이제 한국은 글로벌 수주 시장에서 자사의 거의 유일한 경쟁자로 떠올랐다”며 강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또 다른 민간기업 종사자는 “자신이 회의 장소까지 타고 온 차량이 한국산 자동차인데 기술적으로 매우 뛰어나다”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이어진 회의 자리에서 그는 “자사가 개발한 신소재를 세계 최초로 제품에 적용한 회사가 한국 회사”라며 또 한 번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러면서 “바로 이런 한국의 모습이 우리가 한국과 협력을 추진하는 주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경제력과 기술력은 물론, 문화적 역량까지 포함한 대한민국의 총체적 역량이 그즈음 이미 어느 임계치를 넘어서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안타까운 점은 그러한 대한민국의 국력 신장과 대외적 위상 제고의 원인에 대해 잘못된 분석이 횡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의 힘은 오랫동안 추구해온 가치
일부 해외 언론은 오늘날 <오징어 게임>으로 대표되는 우리 문화의 세계화 신드롬에 대해 “한국 정부가 ‘막대한 자금 지원’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쾌거”로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는 주로 일본 언론에서 차용된 것으로 오늘날 세계를 제패하는 한류 문화의 이면에는 막대한 정부의 자금줄이 있다는 논리를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한국인 고유의 문화적 역량이나 자질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누구든 정부의 막대한 자금 지원을 받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다’는 반발심을 일으키는 데 초점을 맞춘 듯하다. 한류가 아무리 세계를 석권해도 이는 한국인의 문화력이 높아서가 아니라 정부의 막대한 자금 지원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이나 프랑스 등 해외 각국이 대부분 자국 문화산업 활성화를 위해 막대한 정부 지원금을 편성하고 있다는 얘기는 애써 거론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성공 사례를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더 심하게 폄훼할 수 있을까에만 골몰한 눈치다.
하지만 ‘높은 문화의 힘’은 우리 조상이 오랫동안 추구하던 가치와도 일맥상통한다. 백범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서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는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힘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역설했다.
김구 선생은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 물질력으로 20억 명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라면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이라는 우리 국조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김수한 헤럴드경제 기자
(북한학 박사·한국기자협회 남북통일분과위원회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