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일게이트의 게임 속 가상 모델 ‘한유아’ | 한유아 인스타그램
가상 인간이 광고계의 우량주로 떠오르면서 연예계까지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기업들의 광고모델로 활약하고 있는 가상 인간들이 인지도를 넓히면서 드마마나 영화, 가요계에도 진출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가상 인간이 가장 먼저 선점한 곳은 광고계다. 사생활을 둘러싼 스캔들이 없고 시공간 제약을 받지 않는 가상인간 모델들이 이동에 제약이 많은 코로나 시대에 대안으로 떠올랐다. 최근 각광받는 가상 인간 모델은 ‘로지’다. ‘오로지’에서 따온 순수한 한글 이름으로 최근 들어 부쩍 인지도가 높아졌다. 지난 7월 로지가 출연한 신한라이프 광고가 눈길을 끌었다.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로지를 보고 사람들은 “진짜 사람이 아니냐?”며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콘텐츠제작기업인 싸이더스 스튜디오엑스가 만든 로지는 누리소통망(SNS)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하면서 각종 광고에 출연 중이다. 영원히 22세일 로지는 170cm를 넘는 큰 키에 이국적인 외모, 개성 넘치는 스타일, 자유롭고 친근한 성격으로 호텔, 전기차, 패션 브랜드, 심지어 환경 캠페인 모델 자리까지 꿰찼다. 싸이더스 스튜디오엑스는 로지의 성공에 이어 3인조 보이그룹을 제작해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현실세계와 가상세계 멤버가 공존하는 걸그룹 ‘에스파’ │SM엔터테인먼트
가상 인간 소재로 한 다양한 시도
게임 업계에서도 가상 인간 키우기에 나섰다. 가상 인간 ‘한유아’를 게임 속 모델로 데뷔시킨 스마일게이트는 앞으로 한유아를 배우와 가수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갈 계획이다. 이밖에도 삼성전자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 전시회(CES)에서 가상 인간 ‘네온’을 내세워 신제품을 발표했고 LG전자도 디지털 휴먼 ‘래아’에게 제품 소개를 맡겼다.
이러한 추세는 이웃 나라인 일본이나 중국도 비슷하다. 일본의 ‘이마’와 중국의 ‘화즈빙’은 광고모델로 활약하면서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다. 다국적 가구 기업 이케아는 가상 인간 이마가 도쿄 하라주쿠에 있는 매장에서 먹고 자며 요가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공개했다. 화즈빙은 칭화대학교 컴퓨터과학과 지식공정실험실이 개발, 이 학교 학생으로 등록됐다. 최근 틱톡 등 동영상 플랫폼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해서 화제가 됐다.
그렇다면 노래와 춤, 연기가 가능한 가상 인간의 출현이 가능할까? 메타버스로 불리는 가상공간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보편화되면서 가상 인간은 한층 친숙해졌다. 국내 많은 메타버스 기업과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가상 인간을 소재로 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SM이 선보인 걸그룹 에스파는 멤버마다 ‘아이(ae)’라 부르는 아바타를 가지고 활동한다. 현실 세계 멤버와 가상세계 멤버가 공존하는 형태다. 메타버스 기업인 딥스튜디오도 4명의 가상 인물을 멤버로 한 남성 아이돌 그룹을 제작해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 공식 계정에서 팔로워(특정한 사람 등의 계정을 즐겨 찾고 따르는 사람)를 모으고 있다.
또 다른 기업인 펄스나인은 ‘이터니티’라는 디지털 K-팝 걸그룹을 만들었다. 이들은 뮤직비디오까지 제작해 유튜브 등 온라인상에서 활동하고 있다. 일부 메타버스 기업에서는 인기 가수들의 아바타 제작에 나서기도 한다. 가수들은 나이가 들어가지만 가상 인간으로 제작해 놓으면 영원히 늙지 않는 가수를 보유하게 된다는 논리다. 실제로도 아이돌 그룹 출신인 ㄱ군과 똑같은 가상 인간을 만드는 작업 등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문이다.
▶신한라이프 광고 모델로 눈길을 끈 가상 인간 ‘로지’ | 유튜브
실제 인간과 가상 인간의 대결
<메타버스>의 저자인 김상균 강원대 교수는 저서에서 “과거 사이버 가수 아담은 1~2분짜리 인터뷰를 찍기 위해서 엔지니어들이 며칠 밤을 새워 작업해야 했지만 이젠 인공지능으로 학습한 캐릭터가 실시간으로 말과 동작을 재현해준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목소리는 아직 희망적이지만은 않다. 현재 실제 인물을 촬영한 영상에 얼굴만 합성하는 기술과 전체 인물을 창조해내는 방법이 있지만 전자는 현실감이 떨어지고 후자는 제작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버추얼제작사에서 일하는 한 엔지니어는 “기술이 발전했지만 인간과 똑같이 노래하고 춤을 추고 연기할 수 있는 가상 인간을 구현하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그렇게 구현된 가수나 연기자가 많은 팬덤을 몰고 다니는 스타로 커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인기인들이 팬덤을 형성하는 요인은 팬들과 끊임없는 소통과 인간적인 매력, 기술적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노래나 연기에 대한 재능이 작용한다.
실제 인간과 가상 인간이 나란히 쇼무대에서 노래와 춤 대결을 펼치고 인기순위에서 겨룰 날이 머지 않은 느낌이다.
오광수 대중문화평론가(시인)_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문화 분야에서 기자로 일했다. 저서로는 시집 <이제와서 사랑을 말하는 건 미친 짓이야>, 에세이집 <낭만광대 전성시대> 등이 있다. 현재는 문화현장에서 일하면서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