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M휘트니스는 질병관리청이 방역수칙 준수 모범사례로 선정할 만큼 철저하게 방역 수칙을 지키며 운영해왔다. 한지연 대표가 입구에서 자체 방역 프로세스를 설명하고 있다.
일상회복 현장을 가다_ VM휘트니스
11월 1일부터 단계적 일상회복 1단계가 시작됐다. 실내체육시설은 영업시간 제한과 샤워실 이용 제한이 해제됐다. VM휘트니스도 자정까지 정상 운영하고 있다.
앞서 2020년 8월 서울 동대문구 VM휘트니스 제기점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헬스장에 다녀간 회원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한지연 VM휘트니스 대표는 이 사실을 회원들에게 감추지 않고 바로 공개하기로 결심했다. 운동하고 있던 회원들에게 환자가 다녀가 역학조사 중이라고 밝힌 뒤 “지금부터 헬스장 문을 닫고 방역 조치를 하겠다”고 안내하자 일부 회원은 바로 회원권을 환불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역학조사를 거쳐 직원 등 밀접 접촉자들이 유전자 증폭(PCR) 검사를 받은 결과 다행히 아무도 감염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지연 대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가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안전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실내 체육시설에 대한 정부의 세부 방역 지침이 나오기 전이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먼저 찾아 나갔습니다.”
▶일회용 물컵을 없애고 개인용품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스트레칭 존은 3명 이상이 동시에 사용할 수 없다.
운동은 물론 샤워할 때도 마스크 쓰기
우선 마스크 쓰기부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일부 회원은 “운동할 때 마스크 쓰면 답답해서 못 한다”며 마스크를 턱까지 내린 ‘턱스크’ 상태로 운동하기를 고집했다. 직원들이 계속 다니며 마스크를 내린 회원에게 마스크를 제대로 써달라고 요청했다. 경고를 세 번까지 무시하면 아예 퇴장시키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심지어 샤워할 때도 마스크를 그대로 쓴 채로 머리는 감지 말고 몸만 씻기를 권유했다. 탈의실에서는 마스크를 벗는 회원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탈의실을 드나들며 “모두의 안전을 위해 또 실내 체육시설이 문을 닫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회원들과 한 동안 실랑이를 벌인 뒤 자연스럽게 마스크를 쓴 채로 운동하고 샤워까지 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
“나중에는 오히려 회원들이 ‘잘한다, 잘한다’ 해줬어요. 확산세가 한창 심각할 때 다른 헬스장은 쉬쉬해서 문제가 된 경우가 있었는데 저희는 오히려 알리고 이렇게 대처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처음에는 불편함 때문에 반발하던 분들도 나중에 필요성을 인식한 뒤부터 잘 협조해주더라고요.”
▶VM휘트니스 직원이 운동기구를 소독하고 있다.
▶얼굴 인식 출석 시스템이 있어 손을 대지 않고 입장할 수 있다.
정수기 일회용 물컵과 일일 입장권 없애
이어서 정수기 옆에 두던 일회용 물컵을 없앴다. 일회용 물컵이 있으면 여러 사람이 마스크를 내리고 물을 마시는 정수기 앞이 집단감염의 진원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수기 앞에서는 물을 못 마시게 하고 일회용 물컵 대신 개인 물통을 들고 다닐 것을 요청했다.
“회원들은 불편하니까 당연히 반발하죠. 그런데도 서로가 더 안전한 방법이기 때문에 저희는 고수할 수밖에 없었어요. 지금은 모두 개인 물통을 가지고 다니면서 다른 회원이 없는 곳에서 마시려고 해요. 식당이나 미용실 등 다른 업소들도 일회용 물컵을 없애고 정수기 앞에서 음료를 마시지 않는 문화가 정착한 것 같아요.”
일일 입장권도 없앴다. 일일 입장권은 연 회원이나 월 회원으로 등록하지 않고 당일만 이용할 수 있는 입장권이다. 큰 폭으로 할인해주는 연 회원권이나 월 회원권보다 훨씬 비싸기 때문에 업체 입장에서는 쏠쏠한 수입원이다.
“연 회원이나 월 회원으로 등록한 회원들은 자신이 매일 운동하는 곳이라 방역을 지킬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일일 입장하는 분들은 조금 소홀할 수가 있거든요. 대신 기존 회원과 동반하는 지인은 일일 입장이 가능해요. 기존 회원이라는 분명한 연결 고리가 있으니까요.”
▶마스크를 쓰고 운동한 덕분에 코로나19뿐만 아니라 감기 환자도 많이 줄었다. 한 회원이 마스크를 쓴 채 운동하고 있다.
7차례 진단에도 집단감염·추가 확산 없어
2020년 8월 이후 VM휘트니스 제기점과 삼성점에 7명의 코로나19 환자가 다녀갔다. 심지어 부부 회원이 감염된 일도 있었다. 역학조사를 해보니 환자 한 명이 다녀간 시간에 직원을 포함한 방문자 수는 평균 100여 명이었다. 그러나 강력한 방역 조치 덕에 집단감염은커녕 추가 환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10월 1일에는 직원이 감염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한 대표는 “직원 한 명이 출근해서 열이 있는 것 같다고 보고하길래 바로 조퇴해 PCR 검사를 받게 했는데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감염 경로는 VM휘트니스가 아니었지만 한 시간 동안 회원과 개인교습(PT)을 하는 직원이 감염됐기 때문에 회원이나 동료 직원으로 추가 확산이 우려됐다. 한 대표는 청량리점까지 세 지점의 PT 수업을 모두 중단시키고 전 직원이 PCR 검사를 받도록 조치했다. PT 수업을 받는 회원들에게는 수업을 중단시킨 이유를 사실대로 알렸다.
다음 날 새벽 검사 결과가 나왔다. 양성 판정을 받은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제가 마스크 쓰기를 굉장히 강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환자가 여러 차례 다녀간 현장에서 그 효과를 느꼈기 때문이에요. 직원이 PT 수업할 때는 물론 직원들끼리 있을 때도 마스크를 쓰게 하고 웬만하면 밥도 같이 못 먹게 하거든요. PT 수업을 받은 회원이 감염된 일이 있었는데 같이 있던 트레이너조차 안 걸렸어요. 마스크를 쓰는 것과 안 쓰는 건 정말 큰 차이가 있더라고요.”
전 직원의 음성 판정 결과는 모든 회원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알리고 입구 게시판에 공개했다. 잠복기를 고려해 일주일 뒤에 모든 직원이 PCR 검사를 한 번 더 받았다. 역시 양성 판정은 없었다.
“직원들이 귀찮았을 텐데도 다 잘 지켜주더라고요. PT 수업을 못 받은 회원들도 저희가 ‘이만저만해서 이렇게 수업을 정지했습니다’라고 말씀드리면 ‘왜 수업을 못 해’라고 항의하는 대신 저희가 실익이 아니라 회원의 안전을 따지는구나 이해해줘서 감사했죠.”
일상회복 시작에 기대 반 걱정 반
한 대표는 코로나19 때문에 휘트니스 이용을 잠깐 정지했거나 아예 그만둔 회원들이 다시 돌아올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그동안 매출은 거의 반으로 떨어졌다. 헬스장 등 실내 체육시설은 코로나19에 제일 타격이 심한 업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정부가 실내체육시설에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아 불만이 많지만 계속 반발하기보다는 거기에 발맞춰 방역이나 시스템 같은 것을 바꿔야 한다고 직원들한테 항상 얘기해요. 정부에서 시키는 방역 지침 사항보다 환기나 기구 소독, 연무 소독의 횟수를 더 늘려 강화한 저희만의 자체 방역 체계를 만든 거죠.”
VM휘트니스에는 손을 대지 않고 쳐다만 봐도 입장할 수 있는 얼굴 인식 출석 시스템이 있지만 출석과 체온을 확인한 뒤 출입자 명단까지 수기로 작성해야 한다. 이중으로 관리하는 이유에 대해 한 대표는 “회원은 출입 기록이 출석 시스템에 남지만 상담하러 오는 분들은 기록이 없다. 만약 환자가 다녀가면 그런 분들한테도 연락해야 하기 때문에 불편하지만 이중으로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트레드밀(러닝 머신)은 물론이고 스트레칭 공간에서도 거리두기를 위해 한 칸 띄우게 했다. 초반에는 불편해하고 불만을 터뜨리던 회원들도 강력한 방역 조치 덕분에 안전하게 운동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 매일 한두 차례 진행하던 연무 소독을 소독기 고장으로 며칠 중단하자 일부 회원이 왜 소독하지 않냐고 먼저 이야기할 정도다.
“앞으로 저희가 더 강력한 조치를 말씀드린다 할지라도 저희 회원들만큼은 믿고 따라줄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이제 앞으로가 문제죠. 이런 신뢰가 바탕이 돼서 단계적 일상회복 이후 얼마나 많은 분이 다시 돌아올지….”
현재와 같은 방역체계 계속 유지
일상회복이 시작됐다고 코로나19 이전의 VM휘트니스로 그대로 돌아가는 건 아니다. 한 대표는 코로나19의 종식은 없다고 가정하고 지금과 같은 방역체계는 계속 유지할 방침이다. 감기나 다른 질병으로부터 회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감기 환자가 많이 줄었다고 하더라고요. 침이나 비말을 통해 전염되는데 마스크를 쓰면서 감염이 줄어든 거잖아요. 마스크 쓰기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지켜야 할 원칙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느낌이에요. 더군다나 여기는 여러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다중이용시설이기 때문에 약간의 강제성을 둬서라도 마스크 쓰기는 유지하려고 해요.”
한 대표는 “청소나 소독을 가장 기본적인 것들만 하다가 코로나19를 계기로 방역과 안전, 위생 관리를 철저하게 할 수 있었다”며 “더 위생적이고 청결해야 하는 곳이 바로 실내 체육시설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감염병에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회원의 안전을 위해 저희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에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희가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자꾸 숨기고 피해 가는 것보다 맞닥뜨려 살아남을 방법을 빨리 찾는 게 지금은 경쟁력인 것 같아요.”
글 원낙연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