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차별·혐오 표현
‘추석 맞아 결손가정 불우 이웃에 나눔을’ ‘함께하는 따뜻한 명절, 결손가정 어린이에게 선물 증정’
“이 기사 제목에서 뭔가 이상한 게 보이지 않나요?” 청소년들에게 신문활용교육(NIE)에 대해 설명하다가 이런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다. 학생들은 필자가 느낀 문제까진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이웃과 함께 마음을 나누며 명절을 보내자는 취지의 행사를 소개한 거 같아요. 좋은 의도인데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될까요?”
답변처럼 행사 취지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왜 이렇게 썼을까?” 하고 거슬리는 표현이 있어 질문해본 거였다. 결손가정(缺損家庭)이라는 표현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결손가정은 “부모의 한쪽 또는 양쪽이 죽거나 이혼하거나 따로 살아서 미성년인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가정”을 뜻한다. 결손의 한자어를 풀어보면 왜 고쳐 써야 하는 차별적 표현인지 알 수 있다. 결손은 ‘이지러질 결’(缺) ‘덜 손’(損)을 쓴다. 여기서 ‘이지러지다’라는 말은 어딘가 한 귀퉁이가 떨어지거나 찌그러져 있다는 뜻이다. 즉 결손은 어느 부분이 없거나 잘못되서 불완전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결손의 뜻을 제대로 알고 나면 ‘결손가정 어린이’라는 표현이 불편하다. ‘불완전한 가정의 어린이’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또 따른 편견 만드는 ‘편모’ ‘편부’ 표현
‘불완전한 가정’이 있다는 건 어딘가에 ‘완전한 가정’이 있다는 얘기 아닐까? 그렇다면 대체 완전한 가정이란 어떤 가정을 말하는 걸까? 행복한 가정을 완전한 가정이라고 말하는 것이라면 부모 한쪽이 없거나 양쪽이 없는 가정은 불완전한 가정일까?
우리 사회는 오래전부터 결혼을 통해 결합한 남자와 여자 그리고 그들의 자녀로 이뤄진 가정만 정상이라고 생각했고 여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문제가 있다고 여겼다. 결손가정이라는 표현에는 이런 편견과 차별적 요소가 담겨 있다.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등 대체어를 써야 하는 이유다.
이른바 ‘정상가족(가정) 이데올로기’는 편모(偏母), 편부(偏父) 등의 단어에서도 발견된다. 한자 ‘편’(偏)은 ‘치우치다’ ‘쏠리다’ ‘기울다’ 등의 뜻인데 결국 ‘편모’ ‘편부’라는 단어에는 “부모 양쪽이 다 있어야 균형이 맞는다”는 편견이 깔려 있다.
게다가 ‘결손가정’ ‘편모’ ‘편부’라는 말에는 “살림이나 처지가 딱하고 어렵다”는 뜻의 불우(不遇)라는 단어가 늘 붙어다니며 또 다른 편견을 만들어낸다. ‘불우한 결손가정 아이들’ ‘편모(또는 편부) 밑에서 불우하게 생활하던’ 식으로 말이다. 이런 표현에는 특정 형태의 가정을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깔려 있다. “아버지(또는 어머니)만 있었으니 얼마나 안됐어” “할머니(또는 할아버지) 손에서 컸으니 상처가 컸겠지” 등 온갖 편견과 추측으로 가득 찬 시선 말이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공공영역의 차별 표현 및 대체어 목록>에서 미혼모, 미혼부 등의 표현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꼽았다. ‘결혼할 의사가 없어서 결혼은 하지 않고 아이만 낳아 기르는 경우’에는 적절하지 않을 뿐더러 예기치 않은 임신으로 아이를 낳은 상황이라도 굳이 이를 드러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출산의 권리를 존중한다는 점에서도 기존 부정적 어감을 주는 표현의 대체어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시대 변하며 가족 개념도 점차 바뀌어
시대가 변하면서 전통 의미의 가족 개념도 점차 바뀌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2020년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9.7%가 혼인·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또한 함께 거주하지 않고 생계를 공유하지 않아도 정서적 유대를 갖고 있는 친밀한 관계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비율은 39.9%로 나타났다. 법적인 혼인·혈연으로 연결돼야만 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는 비율은 64.3%로 2019년보다 3.0%포인트 하락했다.
‘부부와 미혼 자녀’ 형태의 가구 비중도 전체 가구의 37%(2010년)에서 29.8%(2019년)로 약 10년 사이 크게 감소했다. 반면 1인 가구는 23.9%(2010년)에서 30.2%(2019년)로 크게 늘었다. 실제 주변에서 1인 가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시대다.
전통 혼인 비율과 유자녀 가정 수도 점점 줄고 있다. ‘2020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2020년 혼인 건수는 21만 4000건으로 2019년보다 10.7%(-2만6000건) 줄었다. 이는 1970년 혼인통계 작성 이후 가장 적은 수치다.
육아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한부모 가정, 비혼 출산 가정 등 다양한 가정이 등장한다. 방송인 김나영과 사유리, 연기자 조윤희 등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응원을 보낸다. 단순히 수가 적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표현을 바꿔 쓰자는 뜻은 아니다. 애초 완전한 가정이라는 틀을 임의로 만들어놓고 여기에 들지 않으면 불완전한 가정이라고 취급하는 것은 차별이다. 또한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도 시대착오적이다.
김청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