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8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1 수소모빌리티+쇼’에 참관한 수소기업협의체 대표들 | 연합
수소경제 활성화 어디까지 왔나?
수소산업 생태계 구축을 통한 수소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정부의 과감한 재정투자와 국내 주력 산업과 기업 간 협업이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다. 2021년 9월 8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1 수소모빌리티+쇼’에선 현대자동차, SK, 포스코 등 13개 그룹과 3개 단일 계열사 등 모두 15개 회원사의 최고경영자(CEO)로 구성된 ‘수소기업협의체(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가 창립 총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협의체의 초대 간사를 맡은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국내 수소산업 각 분야의 균형 발전을 통해 전체 생태계의 완결성과 경쟁력을 높이자는 게 협의체 구성 취지”라며 “우리 기업들이 전 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만큼 못할 것도 없다는 자신감도 든다.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이 수소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리딩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협의체 출범에 앞서 현대차, SK, 포스코, 한화, 효성 등 5개 그룹은 2030년까지 수소산업 전 분야에 걸쳐 모두 43조 4000억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수소 전기차 연간 생산량을 50만 대로 늘리고 수소 연료전지 시스템 70만 기를 생산한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다.
수소·전기차 외에 수소 연료전지를 이용한 운송 수단(모빌리티)의 다양화도 추진한다. 수소 트램(노면전차)은 상용화를 앞둔 실증 사업에 들어갔고 수소 연료전지 시스템에 자율주행 기술을 접목시킨 ‘트레일러 드론’, 화재 진압용 ‘레스큐 드론’ 등의 개발 계획까지 확정했다.
▶경기 하남 수소충전소 | 현대자동차
현대차·SK 등 15개사 수소기업협의체 출범
SK그룹은 수소 생산·유통·공급의 가치사슬 전 과정을 통합 운영하는 사업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2025년까지 18조 5000억 원을 투자한다. 국내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그룹 차원의 수소산업 전담 조직인 수소산업추진단을 구성한 SK는 2023년까지 세계 최대 규모의 액화수소플랜트를 지어 연간 28만 톤 규모의 수소를 생산할 계획이다. 2025년까지 전국에 수소 저장·충전소 100곳을 설치하는 등 공급망 확보에도 나선다.
포스코는 2050년까지 수소 생산 500만 톤 체제를 구축해 수소 사업에서 매출 30조 원을 달성한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또 제철 공정에 석탄 대신 수소을 환원제로 사용하는 ‘수소환원제철’ 공법을 개발해 이산화탄소 배출이 거의 없는 철강 공장을 세계 최초로 추진한다.
한화그룹은 발전 터빈에 수소와 액화천연가스(LNG)를 같이 태워 에너지를 생산하는 ‘수소 혼소 발전 프로젝트’로 차별화에 나선다.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기존 가스발전 설비에 견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50% 이상 줄일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갖추게 된다. 한화는 또 태양광 소재 산업의 강자답게 친환경 재생에너지로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 및 설비 투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효성그룹은 독일 린데그룹과 손잡고 3000억 원을 투자해 2022년까지 울산에 액화수소 공장을 구축한다. 승용 수소차 기준으로 연간 10만 대가 사용할 수 있는 물량인 연산 1만 3000톤 수준의 설비다. 기체 상태인 수소를 액체로 만들어 부피를 줄여 공급하면 한번에 더 많은 수소를 운반하고 충전 시간도 서너배 빨라져 수소 유통 및 충전 사업의 효율성과 수익성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수소기업협의체 회원 대기업들은 앞으로 공급·수요·인프라 영역에서 다양한 상호 협력으로 사업 환경의 전후방 불확실성을 줄여나가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매년 9월 총회를 열어 수소산업 관련 주요 이슈와 현황을 공유하고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또 분과별 협의체를 구성해 협력 과제를 선정하고 세부 추진 방안을 도출하는 정기 모임을 별도로 진행한다. 나아가 2022년부터 매년 상반기에 전 세계 투자금융사 등을 대상으로 한 투자 유치 행사도 열 계획이다. 정부에 제도·규제 개선이나 보조금·세금 감면 등의 지원도 요청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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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2050년 수소전문기업 500개 육성
중견·중소기업의 수소 산업 생태계 구축은 정부가 따로 정책 창구를 마련했다. 2월부터 시행한 ‘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수소법)’에 근거한 수소전문기업 지정제도를 통해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총매출액 중 수소산업 관련 매출액 비중이나 수소산업 관련 연구개발(R&D) 투자액 비중이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외부 전문가 심사 등을 거쳐 수소전문기업 확인증을 발급해주는 제도다.
2021년 6월 11개 기업을 첫 지정한 데 이어 9월에 8개 기업을 추가해 모두 19개 회사로 늘어났다. 수소전문기업에는 제품 판로 개척과 기술 사업화 등을 지원해준다. 2021년 기준으로 기업 당 최대 1억 5000만 원까지 정부 지원 혜택이 있으며 대학과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수소혁신데스크’를 통해 맞춤형 기술·경영 컨설팅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수소 생산, 모빌리티, 충전, 연료전지 등 다양한 분야별로 기술력과 성장 잠재력을 갖춘 중견·중소기업을 발굴해 누적으로 2030년 500개, 2040년까지 1000개의 수소전문기업을 육성할 계획이다. 수소전문기업들이 수소경제의 핵심 주체이면서 선도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 프로그램도 꾸준히 확충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산업부는 2020년 7월에 출범한 수소경제위원회 하위 실무위원회를 출범시키고 9월 28일 첫 회의를 열었다. 실무위원회는 보다 체계적인 수소경제위원회의 운영을 위해 안건의 사전 검토·발굴 등 필요한 업무를 지원한다.
이에 정부는 실무위원회 및 전문 분과 위원을 구성·운영해 수소경제 이행을 뒷받침한다는 구상이다. 구체적으로 실무위원회 산하에 ▲생산 ▲저장·운송 ▲모빌리티 ▲발전 ▲산업 ▲지역 ▲국민참여·안전 등 전문 분과위원회를 7개 설치하고 위원들이 각 분과에 참여하게 한다. 각 분과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개발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실무위원회 위원장인 박기영 산업부 2차관은 “최근 탄소중립 등 정책 여건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수소기업협의체의 출범은 수소경제 이행에서 민간의 주도적 역할이 강화되는 변곡점이 될 것”이라며 “실무위원회가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린 수소 중심 수소 생산 패러다임 전환
국내 생산되는 수소의 60%는 석유화학, 철강 제조 공정의 열처리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뽑아내는 부생 수소다. 나머지 40%는 액화석유가스(LPG)나 액화천연가스(LNG)에서 고압의 수증기로 가스의 성질을 바꿔 추출하는 개질 수소다. 부생 수소, 개질 수소 생산은 둘 다 화석연료 사용량과 비례한다.
탄소 배출이 전혀 없는 청정 수소(그린 수소)를 만들려면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발전소에서 나온 전기로 물을 분해(수전해)하면 된다. 그러나 그린 수소 역시 생산 및 유통 기술의 난관에다 낮은 상업성 때문에 아직 걸음마 단계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20년 에너지 산업 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 수소 생산량 약 7000만 톤 가운데 그린 수소 비중은 1% 수준에 불과하다.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0)’로 줄인다는 2050 탄소중립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하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제조업 기반의 산업 구조를 특징으로 하는 우리나라는 대규모 탄소를 배출하는 에너지 산업과 중화학 공업이 수소경제로 전환을 더욱 서둘러야 한다.
수소경제는 우리 주력 산업의 위축 없이 탄소중립에 이를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다. 정부는 그린 수소 중심의 수소 생산 패러다임 전환을 최종 목표로 잡고 중간 단계로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을 고도화해 수소경제 활성화를 꾀할 방침이다. 당분간 부생 수소와 개질 수소 중심의 공급 기반을 유지하되 수소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가 대기 중으로 빠져나가기 않도록 모아두고 재활용하는 기술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제2의 반도체 같은 미래 먹거리 육성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확대하는 에너지 전환도 서둘러야 할 과제다. 산업부는 최근 기업 간담회에서 수소경제 선도국가 도약의 관건은 재생에너지 발전의 확대와 맞물려 있다고 강조했다. 또 수소경제 분야에서 제2의 반도체와 같은 미래 먹거리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기업의 노력을 뒷받침하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정부는 전북의 그린 수소 생산, 울산의 수소 모빌리티, 경북의 연료전지·발전 등 수소경제의 4대 분야 5개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수소산업 클러스터(집적지) 구축을 통해 에너지 분야의 한계 돌파형 기술 혁신을 촉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범정부 차원의 협력과 기획으로 10년 동안 최대 10조 원 규모의 신규 기술 실증 및 상용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우선 앞으로 1~2년 안에 추진할 1조 2739억 원 규모의 연구개발(R&D) 투자를 예비타당성 조사대상(예타) 사업으로 산정했다. 국가재정법에 근거한 예타 사업은 총 사업비 500억 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 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경우가 대상인데 R&D 프로젝트를 예타 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단기적인 성공 가능성 못지 않게 국민경제 전체에 미치는 중장기 파급 영향까지 중시하겠다는 정책 의지의 반영이다.
박기영 산업부 2차관은 “대규모 예타 R&D 사업 추진을 통해 에너지 분야의 한계 돌파형 기술 혁신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오는 11월까지 그린 수소 개발을 주축으로 하는 새로운 산업·에너지 R&D 전략을 마련하고 업계의 자발적인 기술 개발과 투자에 대해서도 재정 보조를 포함한 다각적인 지원 방안을 강구해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박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