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최전선에서 건져낸 생의 질문 “돕는 사람의 반성이야말로 참된 반성”

2021.10.04 최신호 보기
▶죽기로 결심한 의사가 간절히 살리고 싶었던 순간을 기록한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의 정상훈 작가│웅진지식하우스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 펴낸 정상훈 작가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내가 죽음에 이끌린 이유를. 나는 죽음이 아니라 삶의 목소리에 이끌린 것이다. 그것은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나는 살아야 했다. 살아서 이곳에 와야만 했다. 오마르가 ‘엉클’을 찾을 때 그 앞에 있어야 했다. 기꺼이 그의 엉클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의 고통에, 살고 싶다는 열망에 응답해주어야 했다. 다행히 나는 여기에 있었다. (…) 동이 트기 전, 오마르는 세상을 붙잡던 손을 놓았다.”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 표지│ 웅진지식하우스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는 죽기로 결심한 의사가 간절히 살리고 싶었던 순간을 기록한 에세이다. 지독한 우울증을 앓던 한 의사가 세상의 밑바닥에서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살리고자 고군분투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다. 이 여정에서 의사는 또다시 빛나는 삶을 만난다. 돈 잘 버는 의사보다 세상을 고치는 의사가 되고자 치열하게 살아가는 정상훈 작가를 인터뷰했다.

▶레바논 위험구역 사진. 벽 군데군데 총탄이 뚫고 지나간 자리가 남아 있다.

우울증 극복하면서 해외 구호활동 나서
어느 날 갑자기 우울증이 그에게 찾아왔다.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3년이 걸렸고 2년간 치료받아 점차 회복했지만 그의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질문이 남았다. 그는 우울증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우울증의 이유는 무엇인가?’ 얼마나 많은 우울증 환자가 이런 질문을 받을까요? 이 질문은 틀렸습니다. 우울증은 단순히 우울한 기분과는 다릅니다. 우울증은 뇌 안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 물질의 균형이 깨진 상태입니다. 이 불균형은 특별한 계기나 이유 없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우울증에 이유가 있다는 고정관념. 그것은 누구보다 우울증 환자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환자에게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대신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으면 잘 나을 수 있대’라고 격려해주세요.”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이유도 모른 채 산다면 우리는 잘사는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마흔 살이 되던 해 국제 인도주의 의료 구호 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에 지원했다. 둘째를 임신한 아내와 여덟 살이던 첫째 아들을 남겨 두고 아르메니아로 떠났다.
“우울증이 제게 준 선물이 있어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습니다. 때로는 모든 것을 완전히 내려놓아야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의사, 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의사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해외 구호활동이었습니다.”
그는 4년간 중앙아시아 빈곤국인 아르메니아(2011년 11월~2012년 8월·다제내성 결핵 프로젝트), 시리아 내전으로 난민이 몰려든 레바논(2013년 7월~2014년 1월·시리아 난민 진료소), 치사율이 50~90%까지 치솟은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한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2014년 11월~2015년 1월·에볼라관리센터)에 머물며 구호활동을 했다.

▶시에라리온에서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를 위해 진료에 들어가기 전 방호복을 입은 정상훈 작가

구호 현장서 ‘큰 사람’ 만나 묵묵히 업무 수행
아르메니아에서 처음 맡은 임무는 모순적이게도 환자에게 치료 실패를 통보하는 것이었다. 암 같은 위중한 질병을 앓고 있어서 치료해도 효과가 없는 환자들의 치료를 멈추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가면을 쓴 불평등한 세계의 민낯이었다. 의사의 직업윤리는 환자와 심리적 거리를 바탕에 둔다. 냉담해서도 감정이입을 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그는 “직업윤리를 지키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점점 더 제 자신과 환자의 감정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아예 환자의 의지에 저 자신을 내주었습니다. 저는 환자의 마음으로 살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아르메니아에서 첫 번째 구호 활동은 제 영혼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습니다. 상처가 깊어지면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남죠. 비 오면 아픈 관절처럼 흉터는 저에게 아픔을 일깨워줄 것입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구호 현장에서 ‘큰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아르메니아에서 만난 독일 간호사 기젤라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문제 그 자체가 되지 말고 문제를 바라보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덕분에 그는 두 번째, 세 번째 구호활동에 나설 수 있었다. 때로 격리와 수액 처방이 의료 행위의 전부인 현실 앞에서 그는 죽음을 목전에 둔 환자들 앞에 섰다. 자신을 의사가 아닌 ‘엉클’(삼촌)이라고 부르며 애타게 찾는 소년과 에볼라에 걸린 두 살배기 아이를 치료하는 동안 하나만 떠올렸다. ‘살리고 싶다’는 간절한 외침이었다.
“사경을 헤매다 기적같이 깨어났던 두 살배기 파티마타의 죽음은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책에서 묘사했듯이 의료팀장 이브가 조금이라도 울먹였다면 바로 무너져 내렸을 겁니다. 그는 흔들리지 않는 인간이었어요. 이브는 그 순간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어떤 감정이 들었냐고 물으셨죠? 이브라면 이렇게 답했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어요. 필요한 일만 바라보았습니다.’ 팀원을 위해서 이브는 그것을 해냈습니다. 저 역시 이브를 따라 묵묵히 일할 수 있었습니다.”

▶시에라리온에서 성탄절을 맞아 팀원들과 함께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몄다.│웅진지식하우스

“생명의 최전선에서 버텨내며 남긴 최대치”
멀고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불행이 과연 우리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그는 코로나19에 제일 먼저 노출된 우리 곁에 공기처럼 떠도는 수많은 아픔의 세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쪽방촌 주민들, 숫자로만 존재하는 감염병 사망자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이주노동자들은 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눈감고 있어서 보지 못하는 걸까?
“저는 연민이나 동정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냉담함이 더 나쁘죠. 피상적이라 할지라도 연민은 좋은 출발입니다. 물론 그 자리에 머문다면 안타깝게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지만요. 그다음에 필요한 것은 반성입니다. 돕는 사람의 반성이야말로 참된 반성이라고 믿습니다. ‘나는 정말 돕고 있을까?’ 한 달에 얼마씩 후원하는 돈으로 아프리카 어린이가 목숨을 건질 수 있습니다. 오해를 피하고자 덧붙이자면 이런 후원은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춘다면 언제까지 뼈만 앙상한 아프리카 아이를 텔레비전에서 봐야 할지 모릅니다. 저에게도 아직 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답을 찾을 때까지 반성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2003년 의료인 단체 ‘행동하는의사회’를 창립해 남다른 의사의 길을 걸었다. 사단법인으로 성장한 단체는 쪽방 거주민, 중증장애인, 가정폭력 피해 여성 등을 위해 무료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의료 현장에서 동네 의사로 일하고 있다. 그가 세상의 아픔을 꾹꾹 눌러 담은 에세이를 두고 의사 이국종은 이렇게 말한다. “한 의사가 생명의 최전선에서 버텨내며 남긴 최대치”라고.

박유리 기자

코로나19 우울 대응 마음 건강 대책 강화
코로나19 상황에서 우울을 느끼는 국민 비율이 1분기보다 2분기에 다소 감소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보건복지부가 6월 15~25일 전국 성인 206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분기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울과 관련한 설문에서 총점 27점 중 10점 이상 받은 ‘우울 위험군’ 비율이 전체 18.1%로 집계됐다. 이는 3월 시행한 1분기 조사(22.8%)보다 5%포인트 가까이 감소한 수치다.
코로나19 우울에 대응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마음 건강 대책을 강화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시행 중인 심리 상담 핫라인, 전문가 심층 상담, 찾아가는 마음 안심 버스 등이 그 예다. 코로나19 환자와 격리자에게 심리 상담과 완치자 심리 회복 지원, 치유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다.
보건복지부는 자살 예방 상담도 강화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보다 촘촘한 자살 예방 상담을 위해 자살예방상담전화(1393) 인력을 확충하고 자살예방상담전화 자원봉사센터(이하 1393 자원봉사센터) 운영을 연장하기로 했다. 자살예방상담전화의 경우 현재 26명에서 하반기에 31명을 추가 고용해 총 57명으로 상담 인력을 증원할 계획이다. 1393 자원봉사센터는 코로나19로 급증한 상담 전화 양에 대응하기 위해 2020년 11월부터 기존 자살예방상담전화(1393)를 보완해 긴급 운영 중이다. 상담 건수가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당초 3월 말까지 진행하기로 했던 자원봉사센터 운영을 연말까지 연장한다. 2020년 9월 29.4%이던 응대율은 10월 55.7%를 거쳐 12월 최대 79.5%로 증가했으며 이후에도 월평균 70%대의 응대율을 유지하고 있다.
자살 방지 관리를 받으면 자살 시도 위험이 낮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은 전국 66개 병원 응급실에 내원한 자살 시도자 2만 2572명을 분석한 ‘2020년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사업 결과’를 8월 19일 발표했다. 극단적 선택을 하려다 응급실에 실려간 사람 10명 중 9명은 충동적으로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살 시도 경험을 묻는 설문에 응답한 1만 6698명 가운데 8205명(49.1%)은 “이전에도 자살을 시도했다”고 답했다. 이들 가운데 4회 이상 사례 관리를 받은 8069명을 분석해보니 사후관리를 진행할수록 전반적으로 자살 위험도와 우울감, 식사·수면 문제 등이 호전됐다. 자살 위험도를 상·중·하로 구분할 때 사후관리 1회 진행 후 ‘상’에 해당하는 비율이 14.4%였으나 4회 진행 후에는 6.5%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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