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을 잘라야 혁신이 자란다

2021.10.04 최신호 보기


‘빅테크 기업 갑질’ 철퇴 의미
“오늘 전 세계 개발자들은 자랑스럽게 ‘난 한국인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8월 31일 구글과 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갑질을 막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미국 유명 게임회사 에픽게임즈의 팀 스위니 대표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1963년 존 에프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독일 베를린 장벽 앞에서 ‘난 베를린 시민이다’라고 외치며 소련에 맞서 서독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을 재구성한 것이다. 구글, 애플의 독점 행위를 막는 법을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도입한 것을 높이 평가한 셈이다.
해외 유력 언론들도 큰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구글과 애플의 지배력에 타격을 주는 세계 첫 법률”이라고 칭찬했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앱스토어 사업자가 쌓은 견고한 장벽에 처음으로 균열을 냈다”고 치켜세웠다.

시장 경쟁 압력 활성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우리나라의 ‘빅테크 기업 갑질’ 규제는 보름 뒤에도 이어졌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9월 14일 삼성전자 등 스마트 기기 제조사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탑재를 강제한 구글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2074억 원을 부과했다. 구글은 그동안 스마트 기기 제조사에 안드로이드 변형 OS를 탑재한 디바이스(기기)를 생산하지 못하도록 했다.
구글은 플레이스토어 라이선스 계약과 안드로이드 소스코드를 약 6개월 전 미리 제공하는 OS 사전접근권 계약을 맺으면서 그 전제 조건으로 파편화금지계약(AFA) 체결을 강제했다. 이 계약에 따르면 스마트 기기 제조사는 스마트폰뿐 아니라 출시하는 모든 스마트 기기에 변형 OS를 탑재할 수 없고 직접 개발할 수도 없다.
따라서 기기 제조사로서는 등록 애플리케이션(앱) 수가 300만 개에 육박하는 구글 플레이스토어 생태계에서 배제되지 않으려면 AFA를 체결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스마트 시계용 변형 OS를 개발해 2013년 8월 갤럭시 기어1에 적용했다가 구글이 AFA 위반이라고 위협하자 이를 포기하고 타이젠 OS로 변경했다. 이후 앱 생태계 구축 한계에 직면한 삼성전자는 결국 2021년 8월 구글의 스마트 시계용 OS인 ‘웨어 OS’를 탑재해 갤럭시 워치4를 내놓았다. 독자적인 앱 생태계를 구축하려다 실패하고 구글 안드로이드 생태계로 돌아간 것이다.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이번 조처는 유럽연합(EU)이 스마트폰, 태블릿으로 국한한 구글에 대한 시정 조치를 스마트 시계와 같은 스마트 기기 전반으로 확대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시장 경쟁 압력을 활성화함으로써 새로운 혁신이 이어질 것”이라고 의미를 뒀다.
8월 31일 국회를 통과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구글, 애플과 같은 앱마켓 사업자가 특정 결제 수단을 앱 개발사에 강제하는 행위, 앱 심사를 부당하게 지연하는 행위, 모바일 콘텐츠를 부당하게 삭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구글, 애플은 모바일 게임 등 앱 유료 콘텐츠를 소비자가 결제할 때 자신들이 개발한 시스템을 통해 결제하도록 하고 최대 30%의 수수료를 받았다. ‘인앱 결제(In-App Purchase)’라 불리는 이 방식은 앱마켓 사업자의 대표 갑질 행위로 지적됐다. 그동안 게임 영역에서만 인앱 결제를 강제해온 구글은 10월부터 모든 콘텐츠로 확대 적용할 예정이었다. 국내 앱마켓 시장은 구글의 플레이스토어(72%)와 애플의 앱스토어(9%)의 점유율이 합쳐서 80%를 넘는다.

전 세계 빅테크 기업 규제의 마중물
우리나라의 잇따른 빅테크 기업 규제는 유럽연합과 미국 등 전 세계에서 일고 있는 빅테크 기업 규제의 마중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21년 6월 미 의회 하원 반독점소위원회는 ‘플랫폼 독점 종식법’ 등 다섯 개 플랫폼 규제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애플을 앱마켓 경쟁 방해 혐의로 기소했고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관련 입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 앱공정성연대(CAF)는 “한국 정부와 국회가 한 일은 공정한 앱 생태계를 위한 싸움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독점은 자유경쟁을 저해하고 시장의 왜곡을 가져옴으로써 자원의 최적 배분을 파괴할 뿐 아니라 높은 독점 가격으로 소비자를 희생시킨다. 빅테크 기업은 그동안 혁신 기술과 서비스로 소비자의 박수를 받았지만 지금은 탐욕의 화신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이들이 혁신을 계속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정부와 정치권이 할 일이다.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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