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1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열린 ‘탄소중립 시민회의-대토론회’ 개회식에서 윤순진 민간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있다.│2050탄소중립위원회
탄소중립시민회의 시민대토론회
“탄소중립이라는 단어의 뜻조차 몰랐고 환경문제는 막연히 미래 세대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9월 12일 ‘탄소중립시민회의 시민대토론회’가 끝난 뒤 오수현 씨는 이틀 동안 ‘참여시민단’으로 참여한 소감을 이렇게 시작했다.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탄소중립위)와 환경부가 9월 11일부터 비대면으로 진행한 이번 대토론회에는 참여시민단 500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7월 전국 만 15세 이상 국민 가운데 지역별, 성별, 연령별로 대표할 수 있도록 컴퓨터가 무작위로 선정했다.
참여시민단은 50개 조로 나눠 분임토론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1조에서 토론한 오수현 씨는 “시민 구성이 남녀노소 다양해 여러 나이와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과 화상회의로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며 “1조에는 외국과 제주에 사는 분도 있었다. 원래라면 만나기 힘든 분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어 많이 배웠고 내가 가진 사고나 지식에서 더 확장된 것 같다”고 말했다.
▶9월 12일 열린 ‘탄소중립시민회의 시민대토론회’에서 참여시민단 (위부터) 염지은 씨, 노선희 씨, 이종화 씨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중계 영상
시민단, 한 달간 단계적 숙의 진행
8월 7일 출범한 참여시민단은 한 달가량 온라인으로 오리엔테이션을 포함해 이(e)-러닝, 시민탄소교실을 통해 탄소중립의 기본 개념 이해부터 주요 쟁점에 이르기까지 단계적 숙의 과정을 밟았다. 오수현 씨는 “토론회를 앞두고 e-러닝과 시민탄소교실을 수강하면서 탄소중립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면서 환경문제가 지금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더 와 닿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숙의 과정의 마지막 단계인 대토론회는 탄소중립 사회 진입을 위한 미래비전과 정책과제에 대해 참여시민단의 의견을 수렴하는 최종 과정이었다. ▲석탄발전의 단계적 감축 등 국가 전원믹스 개선 ▲내연차에서 친환경차로 전환 ▲플라스틱 등 폐기물 감량 및 재활용률 제고 ▲탄소중립 사회로 정의로운 경제·사회 대전환 등 탄소중립과 관련된 7개 주제와 6개 쟁점을 논의했다.
각 주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발표를 들은 뒤 참여시민단은 각 조에서 분임토론을 했다. 이때 취합한 질문을 주제별로 분류해 분야별 위원과 전문위원이 답했다. 질의·응답이 끝난 뒤에는 각 쟁점에 대한 참여시민단의 의견을 공유했다. 유튜브 채널로 생중계된 대토론회는 일반 시민도 참관할 수 있었다.
미래 세대 위해 이틀간 16시간 격론
매일 8시간이 넘게 이틀 연속 토론하는 강행군이었음에도 참여시민단은 다양한 의견을 공유하고 탄소중립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이 좋았다고 평가했다. 46조 이종화 씨는 “긴 시간이라 힘들었고 생소한 단어라 더 힘들었지만 다른 분들의 의견이 큰 도움이 됐다. 궁금했던 기후변화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많이 알게 됐는데 체계적으로 공부해 실천하겠다”며 “첫 참여시민단의 결과가 좋아 다음 세대까지 이어갈 수 있으면 보람이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35조 안찬석 씨는 “빡빡한 일정으로 이틀 동안 토론한 문제들은 일반 시민이 해결할 문제보다 정부나 기업들이 더 효율적이고 더 쉽고 더 많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며 “시민은 얼마든지 실천하고 따를 준비가 돼 있다. 정부는 탄소를 배출하는 기업을 먼저 찾아가 설득하고 압박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41조 이광철 씨는 “이틀 동안 강의를 듣고 토론도 했는데 나는 앞으로 행동으로 탄소중립에 일조하겠다. 우리나라 전체가 똘똘 뭉쳐서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노력한다면 미래의 우리 자손들은 좋은 환경에서 삶을 영위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9월 11일 열린 ‘탄소중립 시민회의-대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이 참여시민단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중계 영상
10대도 참여 “탄소중립 홍보 꼭 필요”
참여시민단의 공통된 의견은 탄소중립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아 적극 홍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분임토론이 끝난 뒤 많은 조에서 홍보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토론 과정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홍보’였다는 조도 있었다.
18조 염지은 씨는 이틀 동안 토론을 진행하면서 주변 사람들은 탄소중립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궁금해 약 100명이 활동하는 단체 대화방에 질문을 던져봤다고 했다. 그 결과 대부분은 탄소중립을 모르고 있었고 한두 사람만 조금 아는 정도였다. 그는 “탄소중립 시민회의 활동이나 대토론회가 일회성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여기 모인 한 분 한 분의 앞으로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참여시민단에는 10대 청소년도 적극 참여했다. 고등학생인 엄선우 군은 “학교에서 환경 교육을 많이 하는데 평소에는 별로 와 닿지 않았다”며 “이틀 동안 조원들과 함께 탄소중립에 대해 깊게 알아가고 다양한 의견을 나눠보면서 생각의 전환점이 돼 앞으로도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실천할 것 같다”고 말했다.
허예은 양은 “17세인 내게 정말 뜻깊은 경험이었고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두고두고 기억할 경험인 것 같다”며 “34조에서는 탄소중립위가 너무 늦게 생겨 아쉽고 이틀 동안 온종일 토론하는 것이 불만이었지만 얼마나 급하면 이러나 이해한다는 말씀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윤순진 민간위원장은 “탄소중립위가 너무 늦게 출범해서 아쉬웠다는 시민의 말씀에 나 또한 굉장히 공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소중립이라는 이름으로 위원회가 출범한 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처음이다. 그런 탄소중립위에 1기 참여시민단으로 참여한 여러분은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강조했다.
참여시민단의 역할·목소리 확대 요청도
대토론회의 아쉬운 점을 지적하는 시민도 있었다. 47조 위영애 씨는 “이틀 동안 다룬 의제가 너무 전문 분야라 참여시민단의 의견이 얼마나 반영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며 “정부는 정치 목적이나 실적을 위한 정책을 지양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정책을 펴야 하고 기업은 이윤 추구보다 노동자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을 더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소 탄소중립에 관심이 많아서 인터넷으로 자료를 많이 찾는 편이라는 5조 김혜인 씨는 “다양한 연령대와 계층, 직업을 가진 분과 얘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 굉장히 유의미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정책에 대해서 우리 의견을 전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해를 풀어주는 정도에 그쳐서 아쉬웠다”며 앞으로 참여시민단의 역할과 목소리가 확대될 수 있기를 바랐다.
40조 노선희 씨는 “이번 참여로 지구가 많이 아파하고 위험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나 먼저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탄소중립위가 참여시민단의 의견을 잘 수렴해 정의로운 전환을 꼭 구현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윤순진 민간위원장은 “이틀만 놓고 보면 정말 긴 시간이지만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 나눠야 할 말씀에 비하면 정말 짧은 시간”이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대화하고 소통하는 자리를 보강해 여러분께서 주신 의견을 담아내겠다”고 답했다.
원낙연 기자
출범식~대토론회 네 차례 설문조사
각종 협의체 의견도 시나리오 최종안에 반영
참여시민단은 이번 대토론회에서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관련된 7개 주제를 토론했다.
먼저 ‘탄소중립을 위한 전원믹스 방향 및 전기 요금’ 주제에 대해 전원믹스 조정에 따른 국민의 비용 부담과 보조금 등 혜택(인센티브)을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했다. 향후 대체 전원으로 재생에너지의 단가, 수급 안정성, 환경성부터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 경제성, 필요성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내연기관차에서 친환경차로의 전환 및 교통 수요관리 강화’ 주제와 관련해서는 대중교통을 확대했을 때 따르는 불편함을 해소할 방안과 생업으로 자가용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사람에 대한 지원 대책 등을 토론했다. 친환경차 보급 확대를 저해하는 요소인 충전소, 보조금, 기술 안전성 등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대체육 개발 등 식생활 개선’ 주제에 대해서는 개인 식단 선택권과 탄소중립을 위한 식단 개선 등을 토론했다. 대체육 식품 안전성 확보와 농축수산 부문 종사자를 위한 지원정책도 논의했다.
‘탄소중립을 위한 순환경제 전략’ 주제와 관련해서는 현재 폐기물 정책의 문제점과 폐기물 불법배출 개선 방향을 토론했고 쓰레기 감량과 재활용률 제고를 위한 정책 방향도 논의했다. ‘탄소중립의 공정하고 정의로운 전환 대책’ 주제에 대해서는 석탄발전, 내연기관차 등 피해가 예상되는 산업과 관련된 노동자와 지역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논의했다.
참여시민단을 대상으로 대토론회를 시작하기 전과 끝난 뒤 설문조사가 각각 이뤄졌다. 앞서 출범식 때 1차 설문조사가, 학습 종료 뒤 2차 설문조사가 이미 진행됐다. 탄중위는 모두 네 차례에 걸친 설문조사로 학습과 토론, 숙의의 효과를 측정하고 최종 설문조사 결과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 수정 작업에 반영한다. 탄소중립위가 8월 5일 초안을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우리나라의 30년 뒤 온실가스 감축 정책 방향과 전환속도 등에 대한 장기적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탄소중립위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시민사회, 종교계, 노동계, 농축산계 등 각종 협의체의 의견 수렴도 9월 말까지 완료해 참여시민단 설문조사 결과와 함께 10월 말 확정할 시나리오 최종안에 반영할 계획이다. 윤순진 민간위원장은 “최종안조차도 첫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앞으로 더 많은 의견을 모아 더 나은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 시나리오를 기초로 이행 계획을 만들어 차분하게 실천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