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 경판의 평면도│ 해인사 누리집
“보지 않은 자는 보지 않았기에 말할 수 없고 본 자는 보았기에 말할 수 없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저자 유홍준 명지대 교수가 석불(돌로 새긴 불상) 사원인 석굴암의 경이로움을 표현한 한마디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 때 한 번쯤 봤을 법한 자비로운 표정의 본존 불상이 중앙에 터를 잡고 있는 석굴암은 통일신라의 종교와 문화, 과학이 한데 어우러진 결정체다. 국보 제24호인 석굴암은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생각하며 지은 절이다. 이 하나의 건축물에 녹아 있는 정신적 토대가 다름 아닌 팔만대장경(국보 제32호)에 새겨진 불법이다. 두 문화재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팔만대장경은 경남 합천 해인사에 있다. 양산 통도사, 순천 송광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사찰로 꼽히는 해인사에는 세계문화유산과 국보 보물 등 약 70점의 유물이 있다. 그 가운데 백미는 단연코 팔만대장경이다.
문화재 보호를 이유로 약 600년 동안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던 팔만대장경은 2021년 6월부터 주말마다 사전 예약해 일반인도 관람할 수 있다. 코로나19 탓에 수시로 관람 제한 규정이 바뀌니 방문 전 해인사 누리집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목재로 된 경판 8만 1258개로 구성
팔만대장경은 고려대장경으로도 불린다. 불교를 숭상한 고려시대 몽골의 침략을 불심으로 맞서려는 차원에서 조성됐다. 호국정신으로 이뤄낸 대규모 국책사업의 결과물인 셈이다. 제작 기간만 16년(1233~1248년)이 걸렸다. 원래 강화도 선원사에 보관하던 팔만대장경은 조선 태조 7년(1398년) 서울 지천사(현 서울시청 맞은편 자리)로 운반됐다가 그해 가을 해인사로 봉안됐다.
팔만대장경은 나무판 약 8만 개로 구성돼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목재로 된 경판이 총 8만 1258개로 여기에는 중생의 번뇌 8만 4000가지에 조응하는 법문 8만 4000가지가 수록돼 있다. 팔만대장경에서 ‘대장경’은 고대 인도어로 ‘세 개의 광주리’를 뜻한다. 부처님의 말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 부처님의 가르침을 연구한 이론을 가리킨다.
조선시대 후기 명필인 추사 김정희는 팔만대장경을 보고는 “사람이 쓴 것이 아니요, 마치 선인들이 쓴 것 같다”고 감탄했다. 10년 넘는 기간 제작에 참여한 명필과 조각사들이 수백 명에 이르는데도 글자 수백 만 개의 필체가 한결같고 오·탈자 없이 바르게 판각돼 있는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팔만대장경은 천년의 세월에도 형질 변경 없이 보존된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그 비밀은 우선 제작 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경판 원료인 목재는 바닷물에 3년 담가뒀다가 판자로 짠 뒤 다시 소금물에 삶아내어 그늘에 말리고 깨끗이 대패질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세월이 지나도 부패하거나 좀먹지 않았다. 또 양 끝에 각목으로 마구리를 붙이고 옻칠까지 돼 있어 경판이 뒤틀리지 않았다.
▶팔만대장경 탐방 참가자들이 6월 20일 경남 합천군 해인사 법보전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해인사는 6월 19일부터 하루 두 차례 일반 국민에게 팔만대장경이 있는 법보전을 공개했다.│연합
천년 세월에도 그대로… 600년만에 공개
또 다른 비밀의 열쇠는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전각인 장경판전에 숨어 있다. 장경판전은 팔만대장경이 거처하는 집이다. 외부에서 보면 허름한 창고처럼 보여서 조금 실망할 수도 있지만 겉모습과 달리 국보 제52호로 팔만대장경보다 12년 앞선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을 정도로 그 가치가 높다.
해인사 내 위치만 보더라도 장경판전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해인사에 들어설 때 처음 마주치는 일주문을 지나 가장 안쪽,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건축물이 바로 장경판전이다. 장경판전은 긴 건축물 두 개(수다라장, 법보전)가 남북으로 나란히 마주 보고 있다.
장경판전과 관련한 재밌는 일화가 있다. 박정희정부 시절 화재 위험을 이유로 장경판전 옆에 시멘트 건물을 지어 팔만대장경을 옮겼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곰팡이가 피어 장경판전으로 다시 옮기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장경판전은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데 필수적인 습도 유지와 통풍이 자연 조절되도록 설계돼 있다. 장경판전 부지에는 기본 토질에다가 숯, 횟가루, 찰흙을 섞어서 습도가 스스로 조절된다. 장경판전 외벽에는 위아래로 창살이 여럿 나 있는데 위·아래 창의 크기가 다르다. 창마다 공기 유입량이 달라 습도가 다르기 때문에 공기가 특정 공간에 정체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 법어를 남긴 성철 스님이 해인사의 초대 방장(최고책임자)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장기간 지속하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숨조차 쉬기 힘든 요즘 천년의 지혜를 담은 팔만대장경이 숨 쉬는 해인사를 찾아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마음속 경판에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보았기에 말할 수 없는’ 그 신비로움도 함께.
김정필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