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가리고 방울 소리로 공의 위치를 파악해 상대팀 골대에 공을 넣는 경기 ‘골볼’│사진공동취재단
2020 도쿄패럴림픽이 13일간의 여정을 마쳤다. 대회에 참가한 장애인 선수들은 뜨거운 열정과 빛나는 투혼으로 올림픽 못지않은 감동과 재미를 선사했다. 이번 패럴림픽에선 모두 23개 종목이 펼쳐졌는데 패럴림픽이 인기를 끌며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커지는 모양새다. 그런데 혹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애인 스포츠도 있을까?
방울 소리에 귀 기울이는 ‘골볼’
골볼은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스포츠다. 패럴림픽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종목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패럴림픽 종목은 기존 올림픽 종목을 장애 유형이나 정도에 맞게 즐길 수 있도록 변형한 것인데 골볼은 처음부터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특징이 있다.
골볼의 역사는 1964년 시작됐다. 오스트리아 한츠 로렌첸과 독일 제프 라인드레가 실명한 퇴역 군인들의 재활을 위해 골볼을 고안한 것이다. 재활을 위해 만들어진 골볼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지금은 100개 나라 이상에서 즐기는 스포츠가 됐다. 국제장애인경기연맹(ISOD)에 정식종목으로 등록된 것은 1976년이다.
골볼은 한 팀에 세 명씩 두 팀이 길이 18m, 폭 9m의 코트 위에서 진행한다. 경기 목적은 상대 팀 골문을 향해 공을 굴려 득점하는 것이다. 상대 팀은 이 공격을 막아낸 뒤 다시 공격을 해야 한다. 아이패치(눈을 빛으로부터 차단해주는 안대)와 눈가리개를 반드시 착용해야 하므로 모든 선수가 장애등급에 관계없이 같은 조건으로 경기를 치른다. 비장애인도 장비를 착용하면 장애인과 같은 조건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셈이다.
눈으로 볼 수 없다면 어떻게 공을 던지고 막아낼까? 답은 소리에 있다. 골볼용 공은 단단한 재질로 돼 있지만 많은 구멍이 뚫려있다. 공 안에는 방울이 들어있는데 이 방울 소리를 듣고 공의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 오로지 소리에 의존해서 경기를 치르기 때문에 관중들은 침묵을 지켜야 한다. 다만 득점이 터질 때는 마음껏 환호하거나 안타까움을 표출할 수 있다.
골볼의 매력은 빠른 속도감이다. 골볼은 상대의 공격을 막아낸 뒤 10초 안에 다시 공격을 해야 한다. 경기가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소리를 듣고 공의 위치를 알아채는 집중력에 더해 강인한 체력이 필요한 이유다. 또 상대 선수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다양한 동작으로 공을 던지는데 관중들 입장에선 이를 지켜보는 재미도 있다.
우리나라에선 1986년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골볼이 처음 선보였다. 이후 맹인학교를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우리 대표팀은 1996 애틀랜타패럴림픽에서 처음 국제무대에 얼굴을 알렸고 2010 광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다만 이번 도쿄패럴림픽에서는 아쉽게도 본선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잔디 경기장에서 표적구 ‘잭’에 가장 가깝게 공을 굴려 승부를 가르는 경기 ‘론볼’│대한장애인론볼연맹
치열한 머리싸움의 매력 ‘론볼’
론볼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스포츠다. 잔디라는 뜻의 ‘론’(Lwan)과 굴린다는 의미의 ‘볼링’(Bowling)의 합성어인 론볼은 영국에서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 서울패럴림픽에서 처음 소개돼 장애인 스포츠로 오해받지만 해외에서는 비장애인도 골프만큼이나 많이 즐기는 스포츠다. 골볼이 애초 장애인을 위해 고안됐다면 론볼은 정적인 경기 특성상 장애인도 쉽게 참여가 가능해 장애인에게 인기를 끈 경우다.
론볼은 역사도 길다. 최초의 기록은 1299년 영국에서 돌을 깎아 만든 공을 사용해 론볼 경기가 열린 것이다. 본격적으로 장애인 스포츠로 편입된 것은 1960년 영국 스토크맨드빌 병원에서 휠체어를 탄 선수들이 경기하면서다. 패럴림픽 종목이 된 것은 1968 텔아비브패럴림픽 때인데 이번 패럴림픽 때는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지 못했다.
론볼은 ‘잭’이라고 불리는 표적구에 누가 더 가깝게 공을 굴리는지에 따라 승부가 갈린다. 표적구는 보통 눈에 잘 띄는 하얀색이나 노란색 공을 사용한다. 각각 네 개의 공을 던져 표적구에 가장 가깝게 근접시키는 공만큼 점수를 획득하고 1엔드에 최대 4점까지 득점할 수 있다. 개인전·단체전·혼성전 등 다양한 경기방식이 가능하다.
언뜻 보면 동계올림픽 종목인 컬링과 비슷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컬링은 표적구가 고정돼 있지만 론볼은 공을 굴려 표적구를 맞춤으로써 그 위치를 바꿀 수 있다. 이 때문에 마지막까지 승부의 향방을 알 수 없고 치열한 머리싸움이 펼쳐진다. 빠르게 공을 굴리는 능력보다는 상대의 전략까지 내다보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신체적인 차이와 관계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인 셈이다.
공에도 론볼의 매력이 숨어있다. 론볼에서 쓰는 공은 완전한 구 형태가 아니다. 자체적인 치우침이 있어 60% 정도 굴러간 뒤에는 궤적이 휘어진다. 공의 경로를 정확히 계산해 의도한대로 공이 굴러가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는 공 때문에 전략을 세울 때도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같은 팀 선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팀워크를 쌓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패럴림픽을 앞둔 1987년 제7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론볼이 처음 시범경기로 치러지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장애인 스포츠로 인기를 끌며 전국 곳곳에 동호회가 결성돼 생활체육으로 자리 잡았다. 장애인 뿐만 아니라 노인들도 건강유지와 취미생활 목적으로 론볼을 즐기고 있다.
이준희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