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전
명절음식
명절에 먹는 음식을 절식(節食)이라 한다. 농경의례에 따라 생겨난 세시풍속에서 명절과 24절후(節侯) 등이 포함된다. 명절은 태음력을 지키지만 신기하게도 24절후는 태양력을 따른다. 예를 들어 추석은 음력 8월 보름, 동지는 양력 12월 22일이다.
신석기 시대부터 농경을 시작한 한반도는 대대로 파종과 수확 시기를 고려해 명절로 삼았는데 이 중 가장 큰 명절이 바로 수확기에 해당하는 추석이다.
7세기 씌여진 수서(隋書)와 당서(唐書) 동이전 신라조에는 ‘신라인들은 8월 보름에 큰 잔치를 베풀고 관리들을 모아 활쏘기를 한다’고 했다. <삼국사기> 신라 유리왕조에도 가배(한가위)에 대한 기록이 있다. ‘7월 16일부터 8월 보름까지 신라 6부의 여성들이 편을 갈라 길쌈을 하는데 승부에서 지면 이긴 편에게 크게 대접하고 한바탕 흐드러지게 논다’는 내용이다.
고려의 9대 속절(俗節)과 조선 5대 명절(名節)에도 당연히 추석은 들어있다. 8월 보름 추석은 민족 최대 명절이다. 추석 아침에는 햇곡으로 빚은 송편과 각종 음식을 차리고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간다. 가을에 걸맞는 추석 명절 음식이 이때 나온다.
추석 때는 사실 오곡백과가 덜 영근 상태다. 추석은 서양의 추수감사절이 아니라 수확을 앞두고 대풍을 기원하는 의미가 크다. 추수 감사의 의미를 따지자면 추석이 아니라 상달(음력 10월)이 맞다.
수확이 이른 호남에선 일찍 수확한 올벼(풋벼)로 송편과 밥을 지어 차례를 지내는 올베심리가 있다. 수확이 늦은 영남에선 추석 즈음에 올베심리와 비슷한 풋바심을 하고 대신 중구(中九, 9월 9일)에 햅쌀을 거둬 차례상에 올렸다. 영남 북쪽인 안동 하회마을에선 요즘도 중구 제사를 중시한다.
추석의 대표 절식은 역시 송편이다. 솥바닥에 솔잎을 깔고 햇곡으로 반달 모양 송편을 빚어 쪄먹는다. 소로 콩이나 깨를 넣기도 하고 앙금을 만들어 채우기도 한다. 중국은 반대로 보름달 모양의 중추월병(中秋月餠)을 만들어 먹는다. 9월 중구에는 국화전을 부치고 국화주를 담가 마신다.
▶배추전
이외에도 전(煎)을 부친다. 궁중에서 전유어(煎油魚), 전유화(煎油花)라고 불렀던 전은 지역에 따라 저냐, 지짐이, 부치개, 부치기, 부침개 등으로도 불린다. 손이 많이 가고 예전엔 밀가루와 기름이 귀했던 터라 전은 대대로 명절에나 만들어 먹던 음식이었다.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생선살, 고기, 채소, 김치 등을 밀가루 반죽에 얇게 부쳐낸 전통 요리다.
파전, 부추전, 해물전, 김치전, 감자전, 빈대떡 등이 대표적인 전 메뉴인데 요즘은 소시지전이나 동그랑땡(돈저냐), 매생이전, 새우전, 육전 등 다채로운 메뉴가 있어 한식의 한 분야로 당당히 인정받는다. 양반이 많이 살던 서울 종로 인근에는 전을 파는 식당들이 많았다. 제례상에나 올리던 귀한 음식인 전이 막걸리 한 사발에 곁들이기 좋은 서민 안주로 여겨진 까닭이다. 옛 피맛골 부근이나 광장시장 인근에 오랫동안 전을 부쳐 팔아온 노포들이 여전히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다.
모든 식문화는 해당 지역의 지리적 행정적 위치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밀가루 반죽을 부쳐냈을 뿐인 전에도 각각 지역적 특색이 서려있다. 남도 광주와 경남 진주는 고기를 지져내는 육전이 유명하고 대구는 배추전과 정구지(부추)전, 땡초(매운고추)전, 전남 목포는 민어전과 홍어전으로 유명하다. 부산에선 동래파전이 가장 유명하지만 동태전과 가자미전도 많이 먹는다.
▶소시지전
차례상에는 산적(散炙)도 올렸다. 편의상 햄과 게맛살을 쓰는 요즘 산적을 연상하면 안된다. 원래 저민 고기와 대파 등 채소, 해물, 떡 등을 꼬치에 꿰 구워낸 음식인데 숯불 직화나 번철에 지져낸다. 구운 대파의 향긋함이 고기에 배어드니 그 조화가 아주 좋다.
오백년 조선의 확고한 통치이념 유교적 전통이 밥상에도 살아있는 안동에 가면 고스란히 녹아있다. 제례를 치르지 않고 그 음식상만 받아드는 경북 안동 헛제삿밥(虛祭飯)은 원칙에 따라 고기와 채소, 생선 등 제철 고급 식재료로 차린다. 나물이며 산적 등 손도 많이 간다. 차례상과 비슷한 구성이다. 밥, 다시마 뭇국, 간고등어, 육전(또는 산적), 상어, 각종 전유어(동태포, 두부, 다시마, 배춧잎 등), 각종 나물(고사리, 도라지, 숙주, 시금치, 무나물 등), 안동식혜, 과일 등을 올린다. 3적 3탕 3채를 기본으로 하는 정식 제례 원칙을 따른다.
한상 차림으로도 먹지만 보통은 차례상 반찬들을 밥과 함께 비벼먹는다. 비빔밥의 유래로 ‘골동반(骨董飯)’을 언급한 해동죽지 등 문헌에 따르면 헛제삿밥과 비빔밥은 그 뿌리가 같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양반이 많이 살던 전주와 진주에도 이같은 음식이 있다. 비빔밥은 차례상에서 나온 음식으로 볼 수 있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