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대 천안캠퍼스에 조성된 생활밀착형 숲에서 학생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그린 뉴딜로 퍼지는 생활밀착형 정원
기차와 지하철, 수많은 택시가 다니는 경기 평택역. 교통의 요지인 만큼 오고 가는 사람이 많은 평택역에 내리자 푸릇푸릇한 숲이 보였다. 장거리 이동으로 피곤에 지친 시민들이 기차역을 빠져나오면서 작은 숲을 바라보았다. 스쳐 지나가기만 하던 공간이 잠시 머물고 싶고 기분 좋아지는 정원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나뭇가지에는 ‘시민 정원 파이팅! 사랑 받는 공간이 되길’ ‘원평동 정원숲 파이팅!’이라고 적힌 손 팻말이 달려 있다. 시민들이 손수 적은 글이다.
평택역 2번 출구 서부광장에 조성된 실외정원은 2018년 울산국가정원박람회 쇼가든 대상과 2020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고덕 가든쇼 대상을 수상한 이주은 작가가 직접 설계했다. 도심 속에 깊고 그윽한 숲을 연출하기 위해 그늘목과 수조, 분수 등을 도입하고 이팝나무 등 15종 259주, 초화 2511본을 심었다.
다중이용시설의 미세먼지 저감과 도시 경관 개선을 위해 조성했다. 산림청에서 공모한 ‘2020년도 생활밀착형 숲 조성사업’에 최종 확정돼 사업비 5억 원을 전액 국비로 지원받았다. 산림청 산하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에서 공사를 시행한 뒤 관리는 평택시로 이관됐다.
▶경기 평택역에 생활밀착형 숲이 조성되면서 기차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나무를 보며 휴식할 수 있다.
생활밀착형 정원 375곳→2200곳으로 확충
평택역 서부광장에 조성된 숲처럼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정원 문화를 향유할 곳이 점차 늘어날 전망이다. 산림청은 2025년까지 도시의 녹색 생태계를 회복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정원을 즐길 수 있도록 실내·외 정원, 스마트 가든 등 생활밀착형 정원을 375곳에서 2200곳으로 확충하고 시민 참여를 활성화한다. 정원 문화 참여자를 현재 연 218만 명에서 400만 명으로, 정원 산업 규모를 1조 2500억 원에서 2조 원 수준으로 확대한다.
산림청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제2차 정원진흥 기본계획’(2021∼2025)을 추진하기로 3월 확정했다. 이상익 산림청 산림복지국장은 “제2차 정원진흥 기본계획을 차질 없이 이행해 국민 누구나 생활 속에서 정원을 누리고 혜택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림청이 지원하는 사업 가운데 눈에 띄는 사업은 생활밀착형 숲 조성이다. 생활권 주변, 소읍 지역의 다중이용시설을 중심으로 거주민의 일상 속 녹지 공간을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생활정원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실외정원, 옥상·실내정원, 수직정원을 조성해 국민 생활 속 녹색 생활공간을 확충하고 국·공유지 활용을 제고하기 위해 시민 정원사, 지역주민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해 정원의 지속 가능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생활밀착형 숲 조성사업은 2019년 시작해 2020년에 국민참여예산으로 사업이 확대됐다. 정부의 한국판 뉴딜 사업 중 그린 뉴딜 사업으로 지정돼 추진됐다. 그린 뉴딜 사업은 녹색성장의 연장선상에서 디지털을 심화하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지속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남수환 정원사업실장은 “영국,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사람들의 인접 공간에 정원이 많이 있다. 우리나라는 정원보다 수목원, 식물원 개념이 많은데 이런 곳은 생활공간과 동떨어진 곳에 있다. 식물원, 수목원 공간을 영위하기 위해서 멀리서 찾아가야 하는데 작지만 가까운 숲이나 정원에 가는 것도 좋다”며 생활밀착형 숲의 취지를 설명했다.
▶전남 목포대에 조성된 생활밀착형 숲
병원·군부대 등 삭막한 환경도 바꿔놓아
숲은 삭막한 병원 환경도 바꿔놓았다. 전북 전주 전북대학교병원에 환자와 방문객, 직원들이 마음 놓고 쉴 휴식 공간, ‘바람 곁에 머무는 숲’을 조성했다. 자혜관과 교수연구동 사이 공간이 녹색 휴식 공간으로 바뀌었다. 전북대병원에 들어선 생활밀착형 숲은 대나무원, 야생화원, 텃밭정원과 커뮤니티마당으로 꾸며졌다.
병원 내 커피전문점과 연결되는 통로를 개방하면서 활용도가 더욱 높아졌다. 본관 뒤편에 마련된 작은 공터가 커피 한 잔 마시며 걸을 수 있는 정원으로 탈바꿈된 것이다. 울창한 대나무숲과 나무들로 환자와 보호자 모두 편하게 정원에서 쉴 수 있게 됐다. 환자와 시민들은 이곳에서 답답함을 덜어내고 심신을 회복한다.
남 실장은 “코로나19 유행 속에 시민들이 휴식할 수 있는 자연 공간을 많이 찾는다. 생활권에 정원이 생기자 주민들의 만족도가 좋다. 사회복지시설 등 취약계층 거주 시설에서 찾아보기 어렵던 녹지가 생기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면서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경기 이천 육군 특수전사령부에도 생활밀착형 숲이 조성됐다. 이전까지 특수전사령부 내부에 중앙공원이 조성됐지만 접근성이 낮았다. 그러나 생활밀착형 숲이 조성되면서 장병들이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게 됐다. 탁 트인 잔디밭과 나무가 있고 호숫가 데크 옆에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생활밀착형 숲을 조성한다. 울산시는 북구 육아종합지원센터 일원과 울주군청사 등 두 곳에 생활밀착형 정원을 조성키로 했다. 쓰레기 투기가 잦은 북구 육아종합지원센터 주변에 국비 5억 원을 들여 실외정원을 만들고 민원인이 많이 찾는 군청사에는 국비와 지방비 5억 원씩 총 10억 원을 들여 실내정원을 조성한다.
서울 마포구청사에도 생활밀착형 숲 조성사업이 추진된다. 구는 청사 1층, 지하 1층 등 건물 내 유휴 공간 곳곳을 활용해 벽면 등에 공기정화 효과가 입증된 식물들로 실내정원을 조성한다. 스마트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해 최적의 상태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만들 계획이다. 도서관, 청소년센터, 어린이집 등이 건물 내에 있다는 점을 고려해 공간 특색뿐 아니라 청사를 방문하는 다양한 이용자의 특성을 반영해 차별화한 녹색 휴식 공간을 마련할 방침이다.
▶정원은 삭막한 병원 분위기마저 바꿔놓았다. 전북 전북대병원에 조성된 생활밀착형 숲
실내정원으로 미세먼지 저감 효과도
생활밀착형 숲 사업은 어떤 절차를 거쳐 추진될까? 먼저 기초단체에서 정원 조성 대상 후보지를 광역단체에 추천한다. 광역단체에서 이를 종합해 산림청에 최종 후보지를 제출한다. 산림청에서는 제출된 자료를 바탕으로 대상지를 평가하며 최종 대상지를 확정한다. 산림청 산하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 실외 생활밀착형 숲 조성을 하고 실내는 지자체가 맡는다.
생활밀착형 숲 조성 사업의 대상지는 공공시설과 국·공유지 등의 다중이용시설에 우선 추진된다. 2020년 생활밀착형 숲 조성사업으로 실외 5곳, 실내 7곳이 조성됐으며 2021년 실외 12곳, 소읍 8곳(실외), 실내 14곳을 조성할 계획이다.
남 실장은 “미세먼지 저감형 실내정원을 취약계층 거주 시설 인근에 만들자는 프로젝트다. 실제로 미세먼지 저감 효과가 나타났다. 지금까지 실내에서는 왕래하는 사람도 잦고 먼지도 많아서 환풍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실내정원으로 화학물질을 저감하는 효과를 보았다”고 설명했다
정원 설계는 정원 분야 전문가(정원작가)가 참여해 설계하며 기본 계획 단계에서 지자체나 이용자 대상 의견 수렴을 통해 이용자를 고려한 설계를 한다. 남 실장은 “설계에 참여한 사람들은 서울정원 박람회 등 다양한 박람회에서 입상한 정원 작가들이다. 기존 조경과 조금 다른 스타일의 설계가 나오고 계절마다 볼거리가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이천 특수전사령부에 설치된 데크 길 |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시민 참여 정원 조성 프로젝트 추진
2021년 지속 가능한 정원을 조성하기 위해 사업 과정에 시민이 참여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이후 이를 확대할 계획이다. 조성 후에는 지자체와 시민들이 정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관리 매뉴얼을 발간해 배포하고 정원 관리 관련 교육도 이행한다.
한편 지자체에서 조성하는 실내정원은 정원 분야 전문기관인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에서 전문 컨설팅을 활용해 주기적으로 관리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정원의 품질을 높이고 있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은 앞으로도 다양한 규모의 생활밀착형 숲 조성을 늘릴 계획이다. 남 실장은 “기후변화로 열섬 현상이 심해지면서 큰 규모의 정원보다 유휴 부지 속 작은 정원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현재는 실내·외로 구분해 숲을 조성하는데 옥상 등에 다양한 규모의 숲을 조성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박유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