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피에타상’, 대리석, 높이 174cm, 너비 195cm, 두께 69cm, 1498~1499,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 소장│ⓒStanislav Traykov·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대한’이라는 형용사는 최상의 수식어다. 최고 수준의 이 수사(修辭)가 사람 이름 앞에 놓일 때 우리는 그 인물을 위인, 천재, 영웅, 거장, 거인으로 부른다. 역사를 빛낸 인물이나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꾼 사람들에게 헌정되는 영예로운 찬사다.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한 이탈리아 조각가 미켈란젤로(1475~1564)는 그런 점에서 거부할 수 없는 위대한 예술가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화가로서도 불멸의 업적을 남겼다.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의 수석 건축가로 활동할 만큼 건축 분야에서도 당대 최고의 권위자로 이름을 떨친 미켈란젤로는 말 그대로 다재다능한 예술가였다.
미켈란젤로가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사실 조각이 아니라 그림이다. 로마 바티칸 궁전 내 시스티나 성당 하면 떠오르는 게 둘 있는데 하나는 교황이고 나머지 하나는 천장 벽화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거대한 벽화가 바로 미켈란젤로가 그린 불가사의한 그림이다. 불가사의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캔버스나 벽이 아니라 천장에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린 그림인데다 천장 규모가 어마어마할 뿐 아니라 인간의 경지로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작업을 사실상 혼자서 4년 만에 무결점의 솜씨로 완성했기 때문이다.
실제 사람처럼 생생하고 섬세한 기운
그러나 정작 미켈란젤로는 자신은 조각가이지 결코 화가가 아니라고 틈만 나면 강변했다니 조각에 대한 그의 무한한 자긍심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자긍심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조각작품으로는 피에타상과 다비드를 꼽을 수 있다. 13세 때 피렌체 최고의 화가이자 금세공업자인 기를란다요의 도제로 들어가 예술계에 입문한 미켈란젤로는 1년 만에 더는 배울 것이 없다며 스스로 공방을 뛰쳐나갈 정도로 출중한 실력을 인정받았다.
10년 뒤인 1499년, 기념비적인 조각작품을 완성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는데 바로 피에타상이다. 미켈란젤로 나이 불과 24세 때였다. 가속도가 붙은 천재성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며 1501년 피렌체시의 권유로 제작에 들어간 높이 5m 17cm의 거대한 대리석 조각상 다비드로 정점을 찍게 된다. 이스라엘 왕 다윗의 청년 시절 전신을 대리석으로 빚어낸 다비드는 3년간의 작업 끝에 1504년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냈다.
프랑스의 소설가 겸 극작가로 19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로맹 롤랑(1855~1944)은 저서 <미켈란젤로의 생애>에서 “천재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면 미켈란젤로를 보라”고 극찬했다. 피에타상만으로도 미켈란젤로는 천재 조각가로서 손색이 없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안고 슬퍼하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표현한 피에타상은 기독교 미술을 대표하는 주제로 여러 예술가가 다뤘는데 미켈란젤로의 이 작품이 단연 최고로 평가된다. 그 이유는 우선 대리석 조각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실성이 뛰어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한 개의 대리석 덩어리를 두드리고 깎고 쪼고 다듬고 새겨서 성모 마리아와 예수 두 인물의 형상을 빚어낸 조각 기술의 극치와 함께 표정과 피부, 근육과 핏줄, 갈비뼈, 옷자락과 수의의 주름까지 실제 사람처럼 생생하고 부드럽고 섬세한 기운이 압도하기 때문이다.
피에타상에서 극한의 사실성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은 조각가 미켈란젤로의 초인적 재능과 더불어 완벽에 가까운 해부학 지식 덕분이다. 신체 비례와 사람 몸의 겉모습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인체 내부의 구조와 모양을 파악하는 게 필수적이다. 미켈란젤로가 해부학에 얼마나 정통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피에타상이 빼어난 사실성은 물론 조화와 균형미, 미적 아름다움까지 갖춘 불후의 명작으로 회자되는 이유다.
세속적 비애와 종교적 구원의 중첩
피에타상의 두 번째 감상 포인트는 성모 마리아의 표정과 자세. 죽은 아들을 끌어안은 어머니의 비통한 마음은 말로 설명할 길이 없을 것이다. 작품 제목인 피에타(Pietà)도 이탈리아어로 비탄, 슬픔, 애통을 의미한다.
그런데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눈을 지그시 감고 입을 다물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얼굴에서 아들을 잃은 격한 감정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성모 마리아는 놀라우리만치 차분하고 정적인 표정으로 군더더기 없는 절제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의연하게 다스리며 예수의 부활을 기도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는 그의 모습은 그러나 앙상한 갈비뼈를 드러낸 채 축 늘어진 예수의 시신과 대비하는 순간 한없는 슬픔이 경건하고 성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자식을 떠나보낸 세속적인 비애와 종교적 구원이 겹쳐진 가슴 뭉클한 장면이다.
절제된 슬픔의 위력을 보여주는 미켈란젤로식 표현은 또 있다. 피에타상을 형성하는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모든 신체 부위가 일관되게 낮은 곳, 땅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마리아의 얼굴과 두 눈, 팔과 손, 예수의 머리와 오른손, 두 다리 모두 지향점이 땅이라 참척의 고통을 소리 없이 증폭시키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독창적인 장인정신은 마리아를 예수보다 젊게 표현한 데서도 나타나는데 인간과 달리 원죄가 없는 마리아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그의 소신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 예수보다 마리아를 훨씬 크게 형상화했는데 피에타상 전체가 삼각형의 안정적인 구도를 유지하면서 조화와 균형미를 살리기 위한 미켈란젤로의 의도적인 기획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진짜 천 같은 옷자락과 수의의 주름 표현도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마리아의 왼쪽 어깨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가슴에 두른 레이스 띠에 ‘피렌체인 미켈란젤로가 만들었다’라는 문구를 새겨 넣어 예술가의 무한한 긍지를 밝힌 것도 이채롭다. 조각을 대하는 미켈란젤로의 신념은 특이하다. 그는 대리석 안에 이미 표현하고자 하는 형상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조각 작업은 단지 그 형상을 밖으로 드러내기 위해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설파했다.
박인권 문화칼럼니스트_ PIK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전 <스포츠서울> 문화레저부 부장과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팀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와 사랑에 빠진 그림> <미술전시 홍보, 이렇게 한다>, 미술 연구용역 보고서 ‘미술관 건립·운영 매뉴얼’ ‘미술관 마케팅 백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