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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시절 이래 무척이나 내가 좋아했던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그의 시 <가을날>이란 작품에서 ‘여름은 위대했습니다’라고 썼다. 젊은 시절엔 나도 이 구절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또 그렇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나이 들면서 조금씩 다른 느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더구나 2020년과 2021년 여름은 코로나19와 함께 하는 여름이라서 여름이 위대했다는 생각보다는 힘겹고 지쳤다는 생각이 더 든다. 내내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보내는 여름이라니! 이거야 말로 지칠 일이고 지겨운 일이고 짜증나는 일이다. 끝내는 코가 헐고 아파서 병원 신세를 지기까지 했다.
언제쯤 이 형벌 같은 시간이 바닥이 날 것인지는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형편. 하지만 자애로운 자연은 우리에게 가을을 약속하고 있으며 조금쯤 편안히 숨쉴 수 있는 틈을 주고싶어 한다. 아, 고마운 자연이여. 어쩌면 우리가 당신에게 그토록 모질게 대했고 함부로 행동했던지요! 당신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어버이입니다.
해마다 곡식과 나무와 풀들을 자라게 하고 푸르게 해 지구의 세상을 풍성하게 해주는 여름도 축복이지만 그러한 여름을 거쳐 가을이 온다는 것은 더욱 커다란 축복이요 은총이요 안식이요 고마움이다. 하루하루 매미 소리 멀어지고 하늘에 구름 높이 뜨더니만 8월이 물러가고 어느새 9월이 와서 웃고 있다.
지난 여름 우리는 짐짓 거칠다 못해 난폭했고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9월은 우리에게 나보다는 남을 챙기라고 말하고 있고 무슨 일이든 함께 같이 하는 일이 좋은 일이고 먼길을 가더라도 더불어 함께 가는 길이 좋은 길임을 가르치고 싶어 한다. 그런 점에서 9월은 현명한 이웃이고 나아가 좋은 스승님이다.
뿐이랴. 9월의 중심에는 추석명절이 숨어 있다. 실상 추석명절은 농경 시대의 유물이다. 서양식으로 얼른 말한다면 추수감사절. 비록 우리가 농경 시대의 사람들이 아닐지라도 한해를 무사히 잘 견디며 살아감을 감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고 유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작은 일에 감사하자. 그리고 또 만족하자. 그러면 기뻐질 것이고 끝내는 우리 모두가 행복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이제 다시 우리는/ 이렇게 묻습니다/ 가을은 올까요?/ 우리 마을에도/ 사나운 여름을 이기고/ 가을은 분명 찾아올까요?// 옵니다 분명/ 가을은 옵니다/ 9월은 벌써 가을의 문턱/ 9월은 치유와 안식의 계절// 우리 9월에 만나요/ 만나서 우리 서로 그동안/ 힘들었다고 고생했다고/ 잘 참아줘서 고맙다고/ 서로의 이마를 쓰다듬어주며/ 인사를 해요// 여름에 핏발선 눈을 씻고/ 말갛고 말간 눈빛으로 만나요/ 그날 그대의 입술이 봉숭아 빛/ 더욱 붉고 예뻤으면 좋겠습니다.’
-나태주, <9월에 만나요> 일부
나태주 시인_ 풀꽃 시인. 한국시인협회장. 100여 권의 문학 서적을 발간했으며 충남 공주에서 풀꽃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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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