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서피비치
정부가 코로나19 감염 최소화를 위해 공공부문의 휴가 가능 기간을 6월 셋째 주부터 9월 셋째 주까지 늘리고 2회 이상 나눠 쓰도록 권고함에 따라 휴가철이 길어질 전망이다. 가족 단위 소규모로 성수기는 피해서 비시즌에 나눠가기 좋은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시기별로 최적화된 휴가법과 여행지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양양 서피비치
가성비 공감 여름휴가 즐기기_ 늦캉스
아침저녁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은 새로운 계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나게 해준다. 지난여름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상향 되면서 ‘7말 8초’에 떠나는 성수기 여름휴가를 미룬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어쩌랴. 혹시나 모를 감염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안고 휴가를 가느니 차라리 한두 달 미룬 것이 오히려 마음은 더 편했을 지도 모른다.
아쉽지만 이제 여름은 가고 있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한여름에 가지 못한 바캉스 대신 ‘늦캉스’ 또는 ‘추(秋)캉스’를 준비해보는 것은 어떨까?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조용하게 휴가를 보내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9월, 10월에 늦은 휴가를 떠나는 늦캉스가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여행업계에서도 늦은 휴가를 떠나는 늦캉스족을 잡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놓을 정도다. 늦여름 초가을엔 어느 곳으로 떠나더라도 인파로 북적이지 않아 안전한 여행을 즐기기에 좋다. 여름 바캉스를 못간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는 나만의 여행지는 어느 곳이 좋을까?
▶선유도 명사십리
강원도 양양
대한민국 서핑 1번지에서 누리는 파도타기
한여름 뜨거운 태양과 푸른 파도에 미련이 남았다면 강원도 양양에서 시원한 파도타기에 도전해보자. 수도권에서 접근성이 좋은 동해의 양양은 죽도해변을 중심으로 국내 서핑의 성지로 떠오른지 오래다.
사실 서핑의 계절은 여름이 아니라 조금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다. 북적북적하던 피서객이 사라진 해변이 평화롭고 잔잔하던 파도가 높아지면서 제대로 파도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전신 수영복을 입고 있어 춥지도 않다.
양양에서는 총 15개의 해변에서 연중으로 서핑 전문점과 서핑학교를 운영 중이다. 서핑학교에 등록하면 공인된 강사가 보드에 서는 방법부터 첫 파도를 타는 요령까지 가르쳐주기 때문에 당일 누구나 적합하고 다양한 크기의 파도를 즐길 수 있다. 대표적인 서핑 장소로는 양양을 서핑 성지로 만든 일등 공신인 죽도해변과 새로운 명소로 부상한 서피비치를 꼽을 수 있다.
죽도해변은 2009년 서핑학교가 자리 잡으면서 숙박, 음식, 패션, 미디어, 교육, 대회 등 서핑 관련 산업이 여러 방식으로 서핑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곳이다. 해변에는 2km의 아름다운 모래사장이 길게 펼쳐져 있다. 모래사장 뒤로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다. 도보로 연결된 죽도봉에 오르면 망망대해에 펼쳐진 동해의 전경을 관람할 수 있다. 특히 죽도해변은 수심이 얕아서 바다가 두려운 초보 서퍼들이 서핑하기에 좋은 장소다. 사계절 좋은 파도가 들어와서 국내외 서퍼들이 자주 찾는 곳이며 겨울 서핑으로도 유명하다.
죽도해변에서 10분 거리에 새롭게 뜬 서피비치가 있다. 하조대IC에서 10분 안에 닿아 접근성이 좋은 서피비치에서는 코로나19의 갑갑함은 잠시 잊어도 좋을 만큼 언제나 맑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암초 하나 없이 평탄하게 펼쳐진 백사장에는 늘 힘찬 파도가 밀려와 서핑하기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서핑 전용 해변이라 수영도 금지, 튜브도 금지다. 오로지 서핑만을 위한 해변이어서 초보자들이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서핑을 배울 수 있다.
서핑 외에 해먹존 등 색다른 휴식 공간과 수제맥주 전문점 등이 있어 마치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니스비치나 호주 골드코스트 해변을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그만이다. 서피비치는 동해안의 새로운 매력을 창출한 점을 인정받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2020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됐다.
▶선유도에서 자전거 타기
군산 선유도
신선이 노니는 섬에서 즐기는 자전거 타기
전북 군산 앞바다에 자리한 선유도는 말 그대로 ‘신선이 노닐던 섬’으로 불린다. 선유도는 16개의 유인도와 47개의 무인도로 이뤄진 고군산군도에서 맏이 격이다. 오래전 장자도, 대장도, 무녀도 등과 다리로 연결되면서 한 묶음이 됐고 지금은 총칭해서 선유도로 불린다.
오죽했으면 신선도 놀고 간다고 했을까? 실제 선유도는 고군산군도 8경의 대부분이 선유도 안에 있을 만큼 자연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문체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이면서 미국 뉴스 채널인
에서 꼽은 한국의 아름다운 섬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선유도의 대표 명소는 명사십리 해변이다. 천연 해안사구 해수욕장으로 모래가 가늘고 곱다. 물은 얕고 잔잔하며 해수욕장 끝자락에 선유도의 상징인 망주봉이 자리 잡아 반대편 언덕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답다. 물이 빠지면 해변은 갯벌 체험장으로 탈바꿈해 소라, 맛조개, 바지락 등을 잡는 재미가 쏠쏠하다.
명사십리 끝자락에 자리한 거대한 바위 봉우리 두 개는 마치 등대처럼 서 있다. 선유도의 상징 망주봉이다. 그 모습은 마치 두 신선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망주봉에서 일곱 개의 물줄기를 가진 폭포가 생겨 장관이다. 해가 저문 뒤 볼 수 있는 망주봉과 어우러진 명사십리의 낙조는 선유도 최고의 절경이다.
한적했던 선유도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시점은 2017년 다리가 개통되면서다. 새만금 방조제에서 자동차로 10분이면 도달할 수 있어 많은 사람이 찾는 섬이 됐다. 휴가철이면 사람들로 넘친다. 하지만 시즌이 지나면 한가로이 늦캉스를 즐기기에 좋다.
선유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밋거리는 자전거 타기다. 섬의 면적이 넓지 않고 오르막길이 거의 없어 하이킹의 천국으로도 불린다. 저렴한 가격에 자전거를 빌려 타고 선유도와 연결된 장자도, 대장도, 무녀도 등 구석구석까지 둘러볼 수 있다. 이들 섬을 연결하는 하이킹코스는 총 9.28㎞이기 때문에 짧지도 않으면서 가족이 단체로 하이킹을 즐기기에 부담이 없다.
‘자전거 천국’이란 명성답게 자전거 타기를 위한 코스도 잘 마련돼 있다. 명사십리에서 장자대교를 거쳐 대장도를 돌아오는 A코스(약 3.7km), 망주봉을 지나 남악리 몽돌해수욕장을 다녀오는 B코스(약 4.7km), 선유대교 건너 무녀도를 일주하는 C코스(약 4.3km)가 있다. 섬 전체를 일주하려면 A코스, B코스, C코스 순서로 하는 것이 수월하다. 자전거를 타다 힘들면 해변에서 바다를 보고 낙조를 감상해도 좋다.
▶경주남산 마애석가여래좌상
경주 남산
세상에서 가장 큰 노천 박물관 트레킹
보통 남산이라 하면 서울의 남산이라고 생각하지만 전국에 ‘남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은 한두 곳이 아니다. 앞에 있는 산 또는 남쪽에 있는 산을 모두 남산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그 많은 남산 가운데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보물 같은 산이 경주의 명산 남산이다.
이 산은 전체가 노천 박물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높이 500m가 채 안 되고 산세가 빼어난 것도 아니지만 가치를 인정받아 국립공원이 됐고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역사유적지구로 지정됐다. 누구라도 산을 한바퀴 돌고나면 천년의 시간 여행을 다녀온 착각에 빠지고 마는 매력적인 곳이다. 산 곳곳에 절터 122곳, 석불 80체, 석탑 61기가 산재해 있으니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노천 박물관인 셈이다.
대표 탐방코스는 다섯 개. 이 중에서 삼릉골 코스를 추천한다. 삼릉에서 시작해 금오봉을 거쳐 가장 많은 절터가 있는 용장골로 내려오는 코스다. 신라시대의 석불을 만날 수 있는 신라 석불의 보고다. 대략 6.3㎞, 4시간 정도면 완주할 수 있다. 그러나 워낙 보물 같은 유적이 많아 제대로 감상하며 돌아보려면 여섯 시간은 잡아야 한다. 감탄사를 터트리며 오르다 보면 조금도 힘든 줄 모르고 고갯길을 넘어갈 수 있다.
출발점인 신라시대 왕들의 무덤인 삼릉(三陵) 주변의 구불거리는 소나무 숲, 삼릉에서 500m쯤 올라가면 처음 만나는 머리가 없는 냉골 석조여래좌상, 그 왼쪽 산등성이에 자리 잡은 ‘미스 신라’로 불리는 마애관음보살상, 널찍한 바위에 선으로 여섯 불상을 새긴 선각육존불, 바위 속에서 부처님이 튀어나오다 멈춘 것 같은 마애석가여래좌상 등 어느 하나 소중하고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경주 남산 산행의 절정은 정상 너머에 있다. 용장계곡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얼마 가지 않아 용장사지 삼층석탑(보물 186호)이 보인다. 하늘과 맞닿은 듯 장엄한 모습에 가슴이 철렁하고 숨이 막힐 지경이다. 석탑 아래는 아찔한 절벽이다. 주변 경관은 장쾌하기 그지없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의 탑 높이는 4.5m에 불과하지만 해발 380m의 산을 기단으로 삼은 모습이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 할 수 있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은 서라벌(경주)을 “절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총총하고(寺寺星張) 탑들은 기러기처럼 줄지어 늘어섰다(塔塔雁行)”고 묘사했다. 남산의 모습이 그랬다. 산 자체가 온통 절과 탑들로 채워져 있으니 틀린 말도 아니다. 산모퉁이를 돌면 인자한 모습의 불상이 반기고 언덕을 오르고 내리면 장엄한 석탑이 기다린다. 그리하여 5~6시간 만에 천 년의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신비로운 곳이 바로 경주 남산이다.
글·사진 정영주 여행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