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으로 국가 간 이동이나 직접적인 교류가 힘들어졌다. 그렇지만 지구촌은 여전히 커다란 ‘하나의 사회’다. 정보통신기술 발전에 따라 음악, 미술, 영화, 웹툰, 게임, 출판물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국경을 넘나들며 향유·소비되고 있다.
문화 콘텐츠에는 필수불가결하게 소비자 맞춤형 언어가 내포돼 있다. 동영상 자막을 번역하거나 영화를 더빙하는 등 우리의 문화 콘텐츠에 상대방의 언어가 제대로 입혀져야 비로소 다른 나라 소비자들에게 활용되거나 소비된다. 다양한 콘텐츠 향유와 소비는 타자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문화 다양성 증진에 도움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다른 문화 요소에 대한 정확한 번역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우리 것을 제대로 잘 알리려면 각 개체에 대한 일관된 표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를 ‘공공 용어 번역’이라고 부르고 그 노력의 일환으로 7월에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 및 표기 지침’을 제정했다. 공공 용어의 번역 및 표기 대상은 자연 지명(한강 Hangang River), 인공 지명(김포공항 Gimpo Airport), 문화재명(숭례문 Sungnyemun Gate), 음식명(막걸리 Makgeolli/Unrefined Rice Wine) 등 우리 고유의 문화 요소들이다.
김치 중국어 번역이 ‘신치’인 이유
영어·중국어·일어 번역 및 표기 기준이 실린 이 지침의 원칙은 우리 고유의 정체성을 살리면서도 덜 알려진 것들은 외국인이 대상의 속성에 대해 알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한강’처럼 음역에 속성 의미역을 덧붙이거나 음식명은 음역과 의미역을 병기하도록 했다.
다만 외국인에게 덜 알려져 있다고 해서 의미역만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국악’을 ‘Korean Traditional Music’이라고 하거나 단색화를 ‘Korean Monochrome’이라 칭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진 우리나라의 국제 위상에 걸맞게 보편적으로 각각 ‘Gugak’ ‘Dansaekhwa’로 표기한다. 마치 프랑스 대중음악이 샹송(Chanson)이고 이탈리아의 가곡이 칸초네(Canzone)이듯이 말이다. 이러한 예들은 우리의 문화적 독자성과 깊이 연관되고 또 김치(Kimchi)나 불고기(Bulgogi)처럼 알리려는 노력에 따라 쉽게 정착할 수 있는 용어라는 점에서 앞서 말한 속성 정보 없이 우리말 소리를 살리는 음역으로 보급해야 할 것들이다.
그런데 완벽한 번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용어 번역은 쉽지 않다. 제주도의 섭지코지 같은 향토 지명의 경우 영·중·일 언어로 음역 혹은 속성 의미를 추가해 각각 ‘Seopjikoji Cape’, ‘涉地可支’(서디커즈), ‘ソプチコジ’(소푸치코지)로, 문화용어 중 강강술래는 ‘Ganggangsullae’, ‘羌羌水越來’(창창수이웨라이), ‘カンガンスルレ’(강강수루레)로 표기한다.
그러나 모든 고유어를 이렇게 우리말 소리로 살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 각 언어마다 소리 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진 ‘김치’의 중국어 번역이 단적인 예다. 이미 정착된 용어이지만 영어나 일본어에서는 각각의 원어민들이 인식하는 ‘Kimchi’와 ‘キムチ(기무치)’로 적으면 되는데 중국어에는 소리 [김]을 나타낼 글자가 없다 보니 차선책으로 ‘辛奇(신치)’가 선택된 것이다. 이런 문제는 우리 고유의 문화 요소를 한국어와 소리 체계가 다른 러시아어, 스페인어 등 여러 외국어로 번역할 때에도 맞닥뜨린다. 따라서 이런 과제는 학계나 현장 전문가들이 앞으로 정부와 협력해 해결해나가야 한다.
고유문화 올바르고 일관되게 번역·표기해야
사실 공공 용어 번역은 다양한 분야에 파급력이 있다. 우선 한류 열풍으로 고조된 한국어 학습 열기를 한층 더 높이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 외국인의 한국어 학습 초·중급 단계에서는 모국어로 한국어를 배우기 때문에 올바른 용어 번역과 표기는 그들의 학습과 이해에 도움이 되고 우리 문화를 더욱 즐기고 사랑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외국인의 한국어 학습을 위해 국립국어원이 발간한 ‘한국어-외국어 학습사전’이 그 예다.
또한, 공공 용어 번역은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와 함께 발전 중인 기계 번역에도 도움이 된다. 공공 용어 분야 중 우리의 고유문화 요소를 올바르고 일관되게 번역하고 표기하면 인간의 번역 결과물을 학습해 구축되는 한국어-외국어 간 기계 번역의 품질도 향상되기 때문이다. 이는 디지털 소통 시대에 우리의 유무형 콘텐츠와 제품의 수출 및 유통을 촉진하는 데도 도움이 돼 궁극적으로 우리 문화 발전과 영향력 강화에 기여할 것이다.
더 나아가 올바른 공공 용어 번역과 표기는 우리 고유의 정체성 유지와 창조적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아울러 국외 투자 및 해외에 진출해 있고 수많은 현지인을 고용한 우리나라 기업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자신의 꿈을 키우고 있는 외국 유학생 및 관광객과 다국적 기업 그리고 다양한 국제기구에서 통용되는 공공 용어로서 활용되거나 전파될 것이다.
우리 문화 요소를 적절히 번역하고 사회 구성원이 그것을 공유하는 일은 지구촌 개방 시대에 매우 중요하다. 혹자는 우리 문화 요소의 외국어 번역은 해당 언어권에서 스스로 할 일이지 않느냐, 굳이 정부가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에 자국의 체계적인 문화 수출은 필수불가결한 활동이다. 한류가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끌고 있는 이때 정부와 번역 전문가들이 합심해 좋은 공공 용어 번역안을 만들어 보급하고 국민과 국제사회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국력을 드높이고 궁극적으로 문화강국의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것이다.
이진식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정책관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