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연이 8월 31일 일본 시즈오카현 후지국제스피드웨이에서 열린 2020 도쿄패럴림픽 도로사이클 여자 도로독주(H4-5) 경기를 앞두고 출발선에 서 있다.│패럴림픽공동취재단
도로사이클 ‘엄마 선수’ 이도연
이도연(49)의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 1991년 낙상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뒤 16년간 세상을 등지고 살던 그가 마음의 문을 연 것은 2007년. 탁구를 통해 장애인 체육과 인연을 맺으면서다. 스포츠는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놨다. 특유의 근성을 바탕으로 손대는 종목마다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2012년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는 창, 원반, 포환던지기 3관왕을 차지하며 국내 정상에 올랐다.
이도연은 만족하는 대신 세계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기반 환경이 열악한 장애인체육계에서 그를 세계적 수준으로 이끌 지도자를 찾기 힘들었다. 그때 만난 것이 류민호 장애인사이클 국가대표 감독이다. 이도연은 장애인사이클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2014년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패럴림픽에선 은메달을 따며 세계 무대 경쟁력도 증명했다.
이도연의 도전은 멈출 줄 몰랐다. 그는 동계패럴림픽에 도전했다. 마침 다음 대회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이었다. 이도연은 노르딕스키 최고령 선수로 평창 대회에 참가했다. 비록 메달 획득에 실패했지만 완주에 성공한 뒤 “자신과 싸움에서 이겨서 기쁘다”고 말하며 웃었다. 사람들이 그를 ‘철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패럴림픽 사이클 대표팀 이도연(왼쪽)이 “보물”이라고 말하는 딸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이도연은 몸이 불편한 데도 어린 아이들과 주말마다 도서관을 찾았다.│대한장애인체육회
“엄마로서 뭔가 보여주고 싶어요”
2020 도쿄패럴림픽은 새로운 도전이다. 어느덧 40대 후반. 그가 가장 아낀다는 세 딸은 엄마의 출전을 원하지 않았지만 “마음 같아선 2022 베이징동계패럴림픽도 나가고 싶다”는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가장 든든한 지원군인 가족의 응원을 받으며 맹훈련에 돌입했다. 코로나19로 대회가 연기됐지만 그것마저 더 훈련할 기회라고 여겼다.
우여곡절 끝에 출전한 도쿄패럴림픽. 이도연의 첫 레이스는 다소 아쉽게 끝났다. 이도연은 8월 31일 일본 시즈오카현 후지국제스피드웨이에서 열린 도로사이클 여자 도로독주(H4-5)에서 55분 42초 91의 기록으로 12명 가운데 10위를 차지했다. 항상 긍정 에너지를 보여주던 이도연이지만 이날 경기 뒤에는 눈물을 흘렸다.
이도연은 눈물의 의미를 묻자 “죽음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에…. 달리면서 정말 죽음까지 갈 정도로 힘들었어요. 달리면서 아버지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아버지가 이 자전거 풀세트를 해주셨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힘겹게 입을 연 그는 “도쿄 메달을 기대하다가 2020년에 돌아가셨는데 같이 있진 못하지만 아버지께 기쁨을 드리고 싶었어요. 만화 <달려라 하니> 아시죠. 엄마 생각하면서 힘껏 달리는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알겠어요”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를 다시 웃게 한 것은 전북 무주에서 펜션을 빌려 응원하고 있는 딸들 이야기였다. 이도연은 “우리 딸들, 저를 달리게 하는 힘이죠. 언제 어디에 있든 정말 사랑하고 우리 딸들 응원 영상 보니까 내일은 정말 뭐라도 값진 것 하나 갖고 가고 싶어요. 우리 딸들 위해서라도. 물론 메달 못 가져가도 우리 딸들이니까 실망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엄마로서 열심히 해서 뭔가 보여주고 싶어요.”
이준희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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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