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책나눔위원회가 매달 일곱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문학 ▲인문예술 ▲사회과학 ▲자연과학 ▲실용 일반 ▲그림책·동화 ▲청소년 분야의 추천 도서는 여러분의 독서 욕구와 지적 호기심을 샘솟게 할 것입니다. <공감>은 책나눔위원회의 추천 도서를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니클의 소년들 (문학)
콜슨 화이트헤드 저 | 김승욱 역 | 은행나무
<니클의 소년들>은 미국 플로리다 주의 한 남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허구의 장편소설이다. 차별과 폭력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무너지며, 무너진 그 삶을 어떤 힘으로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 혹은 존엄과 구원에 관한 이야기로. 어쩌면 니클이라는 감화원에서 만난 소년들, 엘우드와 터너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 틈에 어? 하고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게 되는 순간이 생긴다. 이 책의 진가는 사실 그때부터다. 이름으로 인물의 특징과 변별성을 만들어내는 명명법, 플롯, 반전, 그리고 주제까지 소설에서 중요한 거의 모든 요소가 이 장편소설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에 이야기는 많고 소설도 그렇다. 그러나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 정말 유용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고 쓰는 작가는 그만큼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콜슨 화이트헤드는 회피하고 숨겨버리고 싶은 과거의 그늘을 여기 고스란히 펼쳐 놓는다.
조경란(소설가)
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 (인문예술)
권내현 지음 | 너머북스
<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은 16세기 대구 지방을 배경으로 가출했던 유유라는 사람이 아버지가 사망한 뒤 집으로 돌아오면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 집으로 돌아온 유유는 진짜 유유가 아니라 채응규라는 가짜 인물이었다. 종친이자 집안의 사위였던 이지가 유유의 동생인 유연에게 처음으로 그의 형이 생존해 있음을 알리면서 본격적인 사건이 전개된다. 이 책의 장점은 이 사건을 소재로 조선시대 상속 제도의 변화와 종법 질서의 확립 과정을 면밀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17세기 이전까지 조선 사회에서는 아들과 딸이 균등하게 재산을 분배받았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장자를 중심으로 가문의 영속성을 확립하려는 종법 질서가 강화되면서 출가한 딸과 사위는 상속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 책은 탄탄한 구성과 면밀한 자료 분석, 풍부한 문제의식이 어우러진 흥미롭고 뛰어난 작품이다.
진태원(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팽창문명에서 내장문명으로 (사회과학)
김상준 지음 | 아카넷
이 책은 도광양회(韜光養晦), 화평굴기(和平?起), 일대일로(一帶一路)를 내세우며 전 지구적 차원에서 영향력을 높여가는 중국의 미래를 생각해보려는 독자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중국은 서구 제국주의의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인류 문명을 창조할 것인가? 미국을 대신하는 또 하나의 패권 국가로 자리 잡을 것인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장기적 전망과 거시적 관점을 취하고 있는 이 책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작은 이야기들’에 묻혀 있던 ‘거대 서사’의 부활을 예고한다. 길게 보면 500년, 짧게는 지난 200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서구 중심의 팽창 문명과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내장 문명을 대비시키고 있는 이 책은 눈앞의 사적 이해 관심을 벗어나 지구적 차원의 기후위기와 범유행, 불평등 심화와 폭력의 증가로 대파국이 예상되는 인류공동체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한다.
정수복(사회학자·작가)
실험실의 진화: 연금술에서 시민과학까지 (자연과학)
홍성욱 지음 | 김영사
과학이 태어나는 곳은 실험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실험실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른다. 그저 흰 가운을 입은 약간은 치우친 천재들이 자기들끼리 아는 말로 중얼거리며 신기하고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장소라고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과학의 역사는 실험의 역사이며, 실험의 역사는 곧 실험실의 역사이다. 인간이 자연을 “고문”해 자연의 진리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실험실은 과학과 뗄 수 없는 장소가 됐다. 그곳은 초창기에는 부엌, 작업장, 혹은 서재에서 출발했을지도 모르나 이제는 한 도시를 차지하는 입자가속기와 같은 실험실, 또는 우주정거장의 실험실까지 매우 다양한 모습을 띤다. 이 책의 미덕은 바로 그런 실험실의 역사를 보여주면서 현대의 과학기술이 하루아침에 어떤 천재의 머리에서 바로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고민과 땀과 시행착오와 실수로부터 빚어진 것임을 알려주는 데 있다.
권복규(이화여자대학교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세상과 나를 바꾸는 지도, 커뮤니티매핑 (실용일반)
임완수 지음 | 빨간소금
커뮤니티매핑(Community Mapping),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공동체 지도 만들기’다.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 임완수 교수(미국 메해리 의대)는 2005년 말, 가족과 뉴욕에 갔다가 화장실을 찾는 데 애를 먹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뉴욕의 화장실’ 웹페이지(nyrestroom.com)를 만들었다. 한 달 동안 홈페이지를 공개하니 뉴욕 시민들이 각자 아는 공중화장실 위치를 자발적으로 표시해 지도가 완성됐다. 임 교수는 2013년 우리나라에 커뮤니티매핑센터를 설립해 독립운동 순례길, 코로나19 마스크 지도, 폭설 및 지진 지도 등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책에서 임 교수는 커뮤니티매핑 사례와 함께 커뮤니티매핑의 정의, 작동 원리 등을 설명한다. 특히 ‘함께’라는 가치가 중요하고 매핑 과정을 조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함께 행동해 지역 문제를 풀어나가고 사회·공동체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인 것이다. 커뮤니티매핑을 기획하고 만들어보고 싶은 의욕을 자극하는 책이다.
표정훈(평론가)
긴긴밤 (그림책, 동화)
루리 글·그림 | 문학동네어린이
밀렵꾼에게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은 노든과 동물원에서 나고 자란 펭귄 치쿠는 어느 날 우연히 함께 동물원을 탈출한다. 알 수 없는 폭격(전쟁)으로 아수라장이 된 통에 함께 길을 가게 된 뿔이 잘릴 코뿔소 노든과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펭귄 치쿠. 둘에게는 각자 해야 할 일이 있다. 노든은 아내와 딸과의 행복한 시간을 빼앗아간 밀렵꾼에게 복수해야 하고, 치쿠는 동물원에서 단짝 친구 윔보와 함께 정성스럽게 품어온 알에서 새끼 펭귄을 무사히 세상에 내보내야 했다. 그렇게 길동무가 된 둘은 바다를 향해 간다. 생명이 위태로운 펭귄을 위해 노든은 일단 복수를 접었다. 이렇게 시작된 이들의 긴긴밤. 노든은 매일 악몽에 시달리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치쿠는 새끼 펭귄을 부화시켜 바다로 보낼 수 있을지 전전긍긍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악몽 같은 밤을 견뎌나간다. 그리고 결국 알에서 나온 아기 펭귄은 바다를 향해 선다.
최현미(문화일보 문화부장)
소년, 어른이 되다 (청소년)
설흔 지음 | 위즈덤하우스
예나 지금이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한 인간의 성숙은 아픔과 고통을 수반한다.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사람들의 면면을 떠올려보자. 그들을 ‘롤모델’로 삼아 자신을 가다듬는 사람들이 많지만 개인사에 얽힌 고뇌와 유년 시절의 아픔까지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우리는 이들의 ‘소년’ 시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점, 마음에 상처와 아픔이 수없이 많았다는 점, 갈등과 고뇌의 순간마다 선택의 갈림길에 있었다는 점 등을 떠올리면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진다. 최치원, 이규보, 이황, 이이, 허균, 박제가, 박지원. 일곱 명의 위인이 소년 시절에 어떤 경험과 생각이 쌓여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는지 살펴보자. 청소년들은 역사 속 인물을 인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며 자신의 혼란스러운 생각과 감정 그리고 현재 자기 삶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류대성(<읽기의 미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