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올림픽 폐막식이 열린 8월 8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폭죽이 터지고 있다.│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2020 도쿄올림픽 폐막
2020 도쿄올림픽이 8월 8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폐회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전대미문의 관중 함성 없이 치러진 대회였다. 애초 2020년 7월로 예정됐던 대회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사상 초유의 대회 연기를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회가 시작됐지만 선수촌에서 환자가 계속 발생하는 등 방역문제가 드러났다. 일본 내 코로나19 감염자수도 급속도로 늘어났다. 대회 기간에도 중단론이 흘러나올 정도였지만 결국엔 17일간의 여정을 모두 치르며 대회를 마무리했다.
벼랑 끝 등불 같던 도쿄올림픽을 선수들은 굵은 땀방울로 채우며 또다른 역사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양궁 대표팀은 쏟아지는 부담감 속에서도 침착한 모습으로 여자 단체전 9연패라는 대업을 썼다. 올림픽 첫 도전에서 3관왕을 기록한 안산(20)은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줬다. 연신 “파이팅”을 외치는 김제덕(17)의 모습에 많은 이들은 힘을 얻었다.
마지막 올림픽 도전에 나선 여자 배구 대표팀 김연경(33)은 연일 기적을 썼다. 대회 내내 “원팀”을 강조했던 대표팀은 4강 진출이라는 신화를 쓰며 하나가 되면 어떤 어려움도 넘을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줬다. 육상에서 감동 드라마를 쓴 우상혁(25)과 우리나라 수영의 가능성을 다시금 보여준 황선우(18)의 활약도 눈에 띄었다. 선수들과 함께 울고 웃는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잠시 코로나19의 엄혹한 현실을 잊었다.
국가 아닌 개인 정체성 찾는 축제로
이번 대회는 우리 사회가 올림픽의 새로운 의미를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메달 여부와 관계없이 선수들이 보여주는 헌신과 투지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비인기 종목 선수들에 대한 관심도 어느 대회 때보다 뜨거웠다. 금메달 개수가 몇 개인지가 중요했던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올림픽을 계기로 직접 스포츠를 즐기겠다는 사람도 늘어났다. 올림픽이 국가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이 아닌 개인의 정체성을 찾는 축제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스포츠의 심장이 힘차게 뛰고 있음을 확인했다. 거리두기가 최고의 선으로 자리 잡은 시대. 이번 대회 되찾아야 할 보통의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감염병 대유행이라는 예외상황은 오히려 올림픽과 스포츠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도 했다. 정치적·경제적 이권을 넘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가감없이 드러냈다.
무엇보다 우리 선수들은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는 이유로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대신 당당하고 의연한 태도로 3년 뒤 2024 파리올림픽에서 승전보를 예고했다. 특히 수영, 육상 높이뛰기 등 기초 종목에서 아시아·한국 신기록을 냈고 사격, 역도, 다이빙, 탁구에서도 희망을 쏘았다. 도쿄올림픽은 선수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확인한 축제였다.
▶코로나19 위협 속에 치러진 2020 도쿄올림픽. 우리에겐 메달보다 진한 감동을 안겨준 4위의 그들이 있었다. 4강 신화를 이룩한 여자 배구(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근대5종에서 자신을 일깨우는 정진화, 배드민턴 여자복식 이소희·신승찬, 한국 신기록으로 4위를 한 높이뛰기 우상혁, 체조 차세대 간판 류성현, 남자 탁구 대표팀, 25m 속사 권총 한대윤, 다이빙 3m 스프링보드 우하람, 역도 이선미│연합
도쿄에서 확인한 파리의 기대주들
‘포스트 장미란’ 이선미(21)와 한명목(30)은 이번 대회 역도 여자 87㎏급과 67㎏급에 출전해 모두 4위에 올랐다. 5㎏ 차이로 동메달을 놓쳤지만 이선미는 경기 뒤 “다음에는 긴장하지 않고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여유를 잃지 않았다. 1㎏ 차이로 시상대에 서지 못한 한명목 또한 다음 올림픽에서 설욕을 다짐하고 있다.
높이뛰기에서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4위에 등극한 우상혁은 경기가 끝난 뒤 “나는 아직 어리고 2m 35를 이미 뛰었기 때문에 이제 그 선수들이 내가 무서워서 은퇴하지 않을까 싶다”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3m 스프링보드 결선에서 4위를 차지해 ‘다이빙 불모지’ 우리나라에 새 역사를 연 우하람(23)은 “메달 딸 때까지 도전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웠고 남자 마루에서 0.533 점수 차로 4위에 오른 ‘체조 샛별’ 류성현(19)은 “앞으로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며 다음을 기약했다.
탁구에서 ‘신예’ 신유빈(17)의 폭발적인 잠재력과 성장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최연소 탁구 국가대표인 신유빈은 개인 단식에선 백전노장 니시아리안(58·룩셈부르크)을 만나 역전승을 거뒀고 중국 출신의 독일 귀화선수 한잉(38)을 단체전에서 만나 분전하며 부족했던 국제대회 경험을 쌓았다. 운동선수로서 기량이 절정을 향해 가는 20세에 파리올림픽에 출전하게 된다면 한층 더 성장한 실력을 선보일 것으로 탁구계는 보고 있다.
수영에서 아시아 신기록을 낸 황선우는 ‘파리 기대주’ 중에서도 0순위로 꼽힌다. 18세인 황선우는 처음 출전한 올림픽 남자 자유형 100m 준결승에서 아시아 신기록(47초 56)을 세웠다. 수영 선수로서는 어린 나이에 근력운동을 체계적으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얻은 성과라 전 세계 이목이 쏠렸다.
스포츠 클라이밍(암벽타기) 서채현(18) 또한 파리올림픽부터 유력한 우승 후보로 거듭날 수 있게 됐다. 이번 대회 스포츠 클라이밍은 스피드(15m 높이인 암벽을 가장 빨리 오르는 선수가 승리하는 경기), 볼더링(주어진 시간 동안 설계된 코스를 완등하는 경기), 리드(일정 시간 동안 15m 암벽을 가장 높이 오르는 자가 이기는 경기) 등 3개 세부종목을 합산해 순위를 매겼는데 파리에서는 스피드 종목이 따로 분리돼 경기가 진행된다. 리드에서 좋은 점수를 얻으며 메달권에 진입했던 서채현은 스피드 종목에서 고전했고 종합 8위에 올랐다.
도쿄패럴림픽 8월 24일 개막
우리나라는 이번 대회 33개 종목 중 29개 종목에 출전해 총 20개의 메달(금6, 은4, 동10)을 획득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금9, 은3, 동9) 보다는 성적이 하락했지만 여러 종목에서 신기록이 쏟아졌고 선수와 시청자 모두 스포츠 자체를 즐기는 성숙한 태도를 보여주는 등 질적인 측면에서 한층 더 성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인화 선수단장은 8월 8일 기자회견에서 “선수들이 은메달을 따고도 ‘금메달을 못 따 죄송하다’던 과거 선배들과 달리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 만족하고 세계적인 선수들과 기량을 겨루는 자체를 즐겼다”며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당당하고 거침없이 기량을 발휘한 10대 선수들을 바라보며 다음 올림픽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수많은 위로와 희망을 남기고 코로나 시대의 올림픽은 그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감동과 환희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8월 24일부터 9월 5일까지 열리는 도쿄패럴림픽이 그 무대다.
이준희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