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양궁 국가대표 안산(왼쪽부터), 장민희, 강채영이 7월 25일 일본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뒤 시상대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한겨레
‘금- 금- 금- 금- 금- 금- 금- 금- 금.’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대기록이다. 2020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여자양궁 대표팀 선수들이 우리나라 선수단에 두 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1988 서울올림픽 때 양궁 단체전이 시작된 이래 아홉 차례 치러진 올림픽에서 우리 여자양궁은 내리 금메달을 차지했다. 도쿄에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보다도 눈이 부셨다.
여자양궁 대표팀 강채영(25), 장민희(22), 안산(20)은 7월 25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여자 단체전 결승에서 ‘난적’ 러시아올림픽위원회를 세트스코어 6-0(55:53/56:53/54:51)으로 꺾었다. 러시아는 과거 도핑 샘플 조작 문제가 드러나 이번 대회에 러시아올림픽위원회로 참가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여자양궁 단체전 9연패라는 대기록을 이어가게 됐다. 우리나라는 서울올림픽에서 양궁 단체전이 시작된 이래 바르셀로나·애틀랜타·시드니·아테네·베이징·런던·리우데자네이루 대회를 모두 제패한 것에 이어 도쿄에도 태극기를 꽂게 됐다. ‘여자양궁은 무조건 금메달’이라는 부담을 이겨내고 쌓아올린 금자탑이다.
이날 경기에 나선 대표팀은 모두 이번 대회가 첫 올림픽 도전이다. 하지만 올림픽 무대라는 부담감은 전혀 없는 듯 했다. 오히려 경기 내내 웃음꽃이 피어나는 등 분위기가 좋았다. 경기력도 압도적이었다. 대표팀은 8강에서 이탈리아를 6-0으로 완파했고 4강에서는 일본을 꺾고 올라온 벨라루스를 5-1로 꺾었다. 결승전도 6-0 완승이었다.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은 완벽한 승리다. 양궁 단체전은 세트를 따내면 2점, 비기면 1점을 부여한다.
철저한 훈련이 빛을 봤다. 대표팀은 지난 겨울부터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선수촌 내 전용 훈련장에서 매일 같이 특훈을 했다. 지진 등 특수 상황에 대비해 다양한 정신적 훈련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외부 출입은 물론 외부인과 접촉도 완전히 차단할 정도로 필사적이었다.
아직 나이가 어린 데다 실력도 탄탄한 만큼 미래도 기대된다. 특히 신체조건과 힘이 좋은데 류수정 양궁대표팀 감독은 이번 대표팀을 “우리나라 여자양궁 역사상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실제 강채영(171㎝), 장민희(175㎝), 안산(172㎝) 등 세 선수가 모두 신장이 170㎝가 넘는다. 과거 ‘신궁’으로 뽑힌 이들은 기보배(168㎝) 정도를 제외하면 대체로 평균적인 신장이었다.
류 감독은 “키가 큰 만큼 다들 힘도 좋아서 강채영과 장민희 등은 무거운 남성용 활과 화살을 써서 흔들림이 적다”고 설명했는데 특히 이날 경기가 열린 유메노시마는 도쿄만에 조성된 인공섬으로 바닷바람이 강해 이런 대표팀의 강점이 더욱 부각됐다. 남은 여자 개인전도 유메노시마에서 열리는 만큼, 큰 이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유빈이 7월 27일 도쿄체육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탁구 개인전 홍콩 두 호이 켐과 경기에서 백핸드를 하고 있다.│연합
태극전사들의 방탄소년단 사랑
여자양궁 대표팀이 올림픽 9연패라는 초유의 업적을 달성한 순간, 경기가 열린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는 블랙핑크의 <붐바야>가 흘러나왔다. “지금 날 위한 축배를 짠짠짠” 같은 가사를 듣고는 대표팀 선수들이 요청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실제 대표팀이 부탁한 노래는 방탄소년단(BTS)의 노래였다.
이날 대표팀 주장 강채영은 경기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실은 BTS 노래를 부탁했는데 뭔가 착오가 있었는지 블랙핑크 노래가 나왔다. 지금도 아쉽다”고 답하며 웃었다.
태극전사들의 방탄소년단 사랑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앞서 탁구 국가대표 신유빈(17)은 “이번 올림픽에서 들을 노래는 ‘쩔어’로 정했다. 이걸 들으면 정말로 내가 ‘쩔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쩔어’는 ‘대단하다’는 뜻의 요즘 속어다. 우리나라 선수단 최연소 참가자인 수영의 이은지(15)도 “사실 연예인보다는 만화를 좋아하지만 역시 한 명을 뽑는다면 ‘제이홉’(방탄소년단)”이라고 밝혔다.
이번 대회는 우리나라 체육계에 있어서 세대교체를 의미한다. 김연경(33) 등 이른바 ‘88둥이’들이 은퇴하고 이른바 Z세대가 등장하는 시기다. 양궁에서 메달을 따낸 강채영, 장민희, 안산, 김제덕(17)을 비롯해 신유빈, 이은지 등 10대 선수들도 즐비하다. 올림픽 메달을 따낸 뒤 경기장에서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이 흘러나오길 바라는 모습은 ‘국위선양’을 전면에 내세웠던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새롭게 등장한 세대가, 새로운 올림픽 풍경을 만들고 있다.
▶남자펜싱 사브르 대표팀 선수들이 7월 28일 지바 마쿠하리 메세 B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에서 이탈리아를 꺾은 뒤 기뻐하고 있다.│연합
‘디펜딩 챔프’의 품격… 사브르의 모든 것 보여줘
여자양궁 대표팀 못지않게 남자펜싱 사브르팀 역시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정상에 우뚝 섰다. 구본길(32), 김정환(38), 오상욱(25), 김준호(27·후보)로 구성된 남자펜싱 사브르팀은 7월 28일 지바 마쿠하리 메세 B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단체전 결승에서 이탈리아를 45-26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날 승리로 우리나라는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9년에 걸쳐 일군 금자탑이다. 2012 런던올림픽 때 단체전 금메달을 딴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 디펜딩 챔피언으로 참가했다. 2016 리우올림픽 땐 종목 로테이션 때문에 남자 사브르 단체전이 열리지 않았다.
남자펜싱 사브르팀이 금메달 획득 비결은 서로 간의 믿음과 철저한 준비였다. 이들은 결승에서 이탈리아를 꺾은 뒤 기자들과 만나 “코로나19로 인해 도쿄올림픽이 연기되면서 정말 힘들었다. 팀 동료들을 믿고 의지해서 지금까지 왔고 목표했던 금메달을 이루게 돼 정말 기쁘다”고 밝혔다.
이날 대표팀은 서로를 믿고 경기에 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경기 도중 “너의 경기력을 의심하지 마”라고 외치는 장면이 텔레비전 중계에 잡히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정환은 “어느 선수가 경기 능력이 언제 막힐지 모르기 때문에 서로의 정신력을 잡아주기 위해 그런 말을 해주고 해결방안을 제삼자 입장에서 말해주는 훈련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준비된 작전이었다는 것이다.
한편 한국 수영의 희망 황선우(18)는 7월 27일 경영 남자 자유형 200m 결승에서 1분45초26의 기록으로 8명 중 7위를 차지했다.
황선우는 이날 빠른 출발 반응(0.57초)에 이어 50m(23초 95), 100m(49초 78), 150m(76초 56) 지점에서 모두 선두를 달렸다. 하지만 막판 50m(28초 70) 구간에서 속도가 크게 떨어졌다. 1위 톰 딘(영국)과는 1초 04 차이가 났다. 황선우는 경기 뒤 “150m까지는 좋았는데 마지막 50m가 조금 아까웠다. 마지막 50m는 너무 힘들어서 정신없이 했다. 아쉽지만 괜찮다”고 말했다. 또 100m까지 진행 속도를 취재진이 알려주자 “49초요? 정말 오버 페이스였네”라고 말했다.
이준희 <한겨레> 기자
▶도쿄올림픽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의 식사를 책임지는 급식센터 조리사들이 선수촌에 배달할 도시락을 만들고 있다.│급식센터
매 끼니 선수들에 도시락 배달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7월 24일 도쿄의 우리나라 선수단 급식센터를 방문해 더운 날씨에도 선수들에게 건강하고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영양사와 조리사들을 격려했다. 황 장관은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서 펼쳐지는 올림픽이니만큼 평소보다 더욱 많은 분들이 고생해주신 것 같아 너무 감사드린다”라며 “이번 대회가 코로나19로 지친 우리 선수들과 국민 모두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는 도쿄의 한 호텔 전체를 빌려 급식센터를 만들었다. 영양사와 조리사 등 16명이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수백 개의 도시락을 만든다. 아침 식사 담당은 오전 4시 이전부터 도시락을 준비해 오전 6시 30분에 배송을 시작한다. 선수들의 입맛과 영양, 칼로리 등을 모두 고려해 대회 전부터 영양사들이 20일치 메뉴를 미리 짜서 준비했다.
도시락은 매 끼니마다 선수촌으로 배달된다. 일반 도시락 외에 체중감량이 필요한 체급 종목 선수들을 위한 죽 도시락도 준비됐다. 급식센터 관계자는 “배구 대표팀의 김연경 선수가 영양사님들께 너무 맛있게 잘 먹고 있다, 도시락 때문에 힘이 난다고 전했다”며 “그런 말 들을 때 여기 있는 모두들 힘이 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