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시에 위치한 삼성중공업 조선소에서 엘엔지(LNG)선 등이 건조 중이다.│ 한겨레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온 우리나라 조선업이 과거의 영광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월별 선박 수주량이 3개월 연속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고 2021년 상반기 수주량은 1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조선업은 고용유발효과가 크기 때문에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얼어붙은 고용 시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고 경기회복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8월 11일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7월 전 세계 선박 발주량 401만 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 가운데 181만 CGT(45%)를 우리나라가 수주했다. 중국이 177만 CGT(44%)였고 일본은 40만 CGT(10%)로 3위를 차지했다. 6월에도 우리나라는 전 세계 선박 발주량 66만 CGT 가운데 절반인 34만 CGT를 수주했다. 중국은 24만 CGT, 일본은 9만 CGT였다. 우리나라는 5월에 142만 CGT(59%)로 88만 CGT(36%)의 중국을 앞질러 1위에 올랐다. 1~7월 누적 수주 기준으로는 중국이 1348만 CGT(45%)로 1위, 우리나라는 1276만 CGT(43%)로 2위, 일본은 261만 CGT(9%)로 3위다. CGT는 가치환산톤수로 각 선박마다 부가가치가 다르다는 점을 반영해 선종별로 총톤수(GT)에 일정계수를 곱해 산출한다.
2021년 상반기 수주량 13년 만에 최대치
산업통상자원부가 7월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상반기(1~6월) 선박 발주량 2452만 CGT 가운데 1088만 CGT(44%, 267억 1000만 달러)를 우리나라가 수주했다. 이는 2020년 같은 기간 대비 724%, 2019년 동기 대비 183% 증가한 것이다. 조선업 호황기였던 2006~2008년 이후 상반기 최대 실적이다.
우리나라가 선도하고 있는 고부가가치선박(컨테이너선, 원유운반선, LNG운반선) 수주 실적이 큰 기여를 했다. 전 세계 고부가가치선박 발주량 1189만 CGT 중 723만 CGT(61%)를 국내 조선업계가 수주했다. 특히 대형 LNG운반선의 경우 세계 발주량의 100%를 싹쓸이했다.
선가(선박 구입 가격)도 9개월째 상승세다. 선가를 나타내는 클락슨 신조선가지수는 8월 첫주 144.5포인트를 기록해 2011년 9월 140.6포인트 이후 10년 만에 140포인트대를 회복했다. 컨테이너선이 전달 대비 850만 달러 상승한 1억 3850만 달러를 기록하며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LNG운반선은 500만 달러 상승한 1억 9600만 달러, 원유운반선은 350만 달러 상승한 1억 2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조선업계에 혹독한 구조조정 한파가 불어닥친 2016년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해양플랜트 집중 전략으로 잘 버티던 국내 조선업계는 2014년 조선 3사(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의 영업이익이 3조 631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2015년에는 적자폭이 5조 1665억원으로 확대돼 우리 경제의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정부 지원으로 침체기 탈출 계기 마련
정부는 조선업 불황에 대응하기 위해 2016년 조선업을 사상 처음으로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했다. 이는 경기 변동이나 산업구조 변화로 고용 사정이 급격히 악화되는 업종을 지원하는 제도다. 그동안 네 차례 연장돼 2021년 말 종료된다.
또한 조선업 중심지인 ▲울산 동구 ▲경남 창원 진해구 ▲통영 ▲거제 ▲고성 ▲전북 군산 ▲전남 목포·영암 등을 2020년 4월과 5월 고용위기 지역으로 지정해 구직급여 요건을 완화하고 퇴직한 노동자를 다시 채용한 기업에 최대 3000만 원을 지급하는 등 지원을 확대했다. 이런 정책들은 조선업 침체기를 버티는 데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8월 10일 ‘지역 산업위기 대응 및 지역경제 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조선업 등 지역 주력 산업의 위기로 지역경제가 악화할 우려가 있는 경우 국가가 선제적으로 신속하게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의 경기회복은 디지털 등 첨단기술 중심의 ‘고용 없는 성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비대면의 일상화로 고용 유발 효과가 큰 서비스업과 전통 제조업이 큰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용 없는 성장은 빈부격차와 사회 양극화를 더 심화시킬 수 있다. 조선업의 깜짝 호황이 이런 우려를 없애고 ‘고용 있는 성장’의 마중물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