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된 산·학·연·정 소부장 자생력 끌어올렸다

2021.07.26 최신호 보기
▶김용래 특허청장이 7월 14일 일본에서 전량 수입하던 소재 국산화에 성공한 레이크머티리얼즈를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특허청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는 우리나라와 외교 갈등을 경제 수단으로 해결하려는 꼼수다. 일본이 독점적 지위를 가진 품목의 공급을 통제하면 우리나라의 첨단산업 관련 제조업이 급소를 맞아 휘청거릴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는 일본 내에서도 처음부터 오판에서 비롯된 명백한 오류라는 지적이 많았다.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의 대응 능력, 우리 제조업의 달라진 위상과 잠재력을 간과했다. 급소를 맞고 무릎을 꿇을 줄 알았던 우리나라는 민관이 똘똘 뭉쳐 정면으로 대응했다.
우리나라 제조업의 수출 능력이 일본에 많이 의존한 것은 사실이다. 수출 완성품의 제조 공정에 들어가는 소재와 부품, 장비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수입하는 구조 문제를 안고 있다. 우리나라는 완성품 수출을 많이 할수록 일본에서 더 많은 소재와 부품 등을 수입했다. 이 때문에 수출에서 얻은 부가가치의 상당 부분이 일본으로 돌아갔다. 우리나라의 대일 무역역조는 오래된 현실이다.

한일간 교역 불균형 지속해서 개선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와 일본 간 교역 불균형은 개선되는 추세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개선 속도는 더 빨라졌다. 우리나라의 교역 규모와 무역수지 흑자는 안정적으로 증가한 가운데 일본과 수출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타격을 주기에는 우리나라가 만만치 않은 교역 강국이 된 것이다.
이명박정부 5년(2008~2012년) 동안 우리나라의 연평균 전체 수입에서 일본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13.2%였다. 2017년 문재인정부 출범 뒤 2020년까지 4년 동안 비중이 9.9%로 떨어졌다. 2021년 상반기 총수입에서 일본 수입 비중은 9.2%로 더 떨어졌다. 또 이명박정부 때 무역수지는 연평균 367억 달러의 흑자를 달성했는데 대일본 무역수지는 244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전체 무역흑자 대비 대일 무역적자가 66.5%였던 셈이다.
문재인정부 4년 동안에는 연평균 964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달성한 가운데 대일 무역적자는 174억 달러로 줄었다. 대일 무역적자의 절대 규모가 줄었을 뿐 아니라 전체 무역흑자 대비 비중도 18%로 크게 축소됐다. 일본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무역흑자를 낼 수 있는 기반이 확장됐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의 대일 의존도는 일본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한 단계 더 떨어졌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내놓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경쟁력 강화 2년 성과’ 결과를 보면 100대 핵심 품목에서 일본 의존도는 2019년 1~5월 31.4%에서 2021년 1~5월 24.9%로 떨어졌다. 감소 중이던 100대 품목의 일본 의존도는 2019년 일본 수출 규제를 기점으로 세 배 이상 감소 속도가 빨라졌다.
1~5월 누계 기준 2017~2019년에는 2.1%포인트 떨어진 데 견줘 2019~2021년 사이에는 6.5%포인트 하락했다. 소부장 산업 전체의 대일 수입 의존도 또한 2019년 1~5월 16.8%에서 2021년 1~5월 15.9%로 떨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수출규제 3대 품목 수입 크게 줄어
일본 수출규제 3대 핵심 품목의 수입도 크게 줄었다. 일본산 고순도 불화수소 수입액은 2019년 1~5월 2840만 달러에서 2021년 1~5월 460만 달러로 6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불화수소는 반도체 회로를 깎고 불순물을 제거하는 데 쓰는 필수 소재인데 수출규제 이전까지 국내 반도체 제조사들은 이 소재의 조달을 대부분 일본 기업에 의존했다.
그러나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국내 중소기업인 솔브레인이 고순도 불산액 생산량을 대폭 확대하고 SK머티리얼즈가 고순도 불화수소 양산에 성공하며 국산화 기반을 다졌다. 또 반도체 제조사들이 일본산 외에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해 중국, 대만, 미국산 불화수소의 수입 비중을 늘렸다.
디스플레이 에칭(식각) 공정에 들어가는 폴리이미드(PI) 필름은 대일 의존도를 사실상 ‘제로(0)’로 만들었다. 폴리이미드 역시 일본이 전 세계 생산량의 약 70%를 공급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그 이상 일본산 수입품에 의존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에스케이케미컬(SKC)과 코오롱인더스트리가 불화 폴리이미드 제조 기술과 생산 기반을 확보했다. 또 일부 국내 디스플레이 제조사는 스마트폰(지능형 단말기) 디스플레이에 들어가던 폴리이미드 필름을 초박형 강화유리(UTG)로 대체했다.
반도체 제조공정 중 노광 단계에 쓰이는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는 90% 이상이던 일본 제품 의존도를 2년 만에 50% 이하로 줄였다. 벨기에산 수입을 12배 늘리는 등 다변화를 이뤘기 때문이다. 미국 듀폰 등 다국적 기업의 국내 투자 유치에도 성공해 양산을 앞두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부품, 소재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탈 일본’ 움직임을 보이자 일본 기업들이 오히려 국내 투자를 늘리는 경우도 있다. 포토레지스트 감광재 분야의 세계 강자인 일본 도쿄오카공업(TOK)은 인천 송도에 있던 기존 공장에 수십억 엔을 추가로 투자해 생산 능력을 2018년 대비 2배 늘렸다. 불화수소 생산업체인 다이킨공업도 2022년 10월 충남 당진에 불화수소 공장을 짓기로 했다. 다이킨공업은 그동안 불화수소를 중국에서 만들어 삼성전자 등에 공급했는데 생산 기지를 아예 우리나라로 옮기는 것이다.

▶5월 26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21 부산국제기계대전에서 반도체 장비분야 산업용 로봇이 전시돼 있다. | 연합

산업 생태계 내 대·중소기업 연대 확산
정부는 민관 합동으로 소부장 산업 경쟁력 강화 대책을 마련해 지난 2년 동안 시행한 결과 소부장 산업 생태계 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연대와 협력 사례가 확산된 점을 의미 있는 성과로 꼽았다. 수요·공급 기업 간 공동 연구개발(R&D), 지분투자, 합작 법인 등에 자금·세제·인력·규제 특례 등 맞춤형으로 패키지(묶음) 지원을 해주는 과제 34건이 승인을 받아 140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수요 대기업은 그동안 개방을 꺼렸던 생산라인을 중소·중견 소부장 기업에 개방해 새로운 기술을 검증받게 하고 시험을 통과한 기술은 과감히 제품 양산에 적용하고 있다. 소부장 분야 수요 대기업의 설비 개방 건수는 2018년까지 단 한 건도 없었다가 2019년 17건, 2020년에는 74건으로 급증했다. 아울러 수요·공급 기업이 함께 참여한 정부 R&D 과제 사업으로 2020년 말까지 1280건의 특허를 출원했고 4451억 원의 투자와 3291명의 고용, 3306억 원의 신규 매출도 발생한 것으로 산업부는 파악했다.
기술과 인력, 장비를 보유한 공공 연구기관과 대학도 소부장 산업의 기술 경쟁력 향상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을 비롯한 37개 공공 연구기관이 총 2만 6000대의 장비와 1만 명 이상의 인력을 활용해 소부장 기업의 기술 애로 해소를 지원하고 있으며 주요 제조 기술을 보유한 12개 대학은 자문단을 구성해 소부장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지원한다.
소부장 분야 중소·중견기업의 사업 여건도 한층 개선됐다. 기술 개발과 사업화에 통상 6년이 걸리는데 핵심 R&D 과제에 대한 정부의 전주기적 지원이 강화되면서 18개월 만에 매출을 발생하는 등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또 소부장 기업 투자를 주목적으로 하는 정책펀드 조성액은 2021년 6월 말 현재 1조 원을 돌파했다. 이는 일본 수출규제 전 20년 동안 조성된 소부장 투자 전용 펀드의 조성액을 모두 합친 것보다 2배 가까이 많은 규모다. 사업 환경과 투자 여건의 개선에 힘입어 소부장 관련 상장 기업의 총 매출은 2021년 1분기에 2019년 같은 기간보다 20.1% 늘어 상장기업 전체 평균 매출 증가율(12.7%)을 크게 웃돌았다. 아울러 시가총액 1조 원 이상 소부장 중소·중견 기업 수는 2019년 7월 13개에서 2021년 6월 현재 31개로 늘었다.

“위기 극복의 성공 공식 찾았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대응 성과는 기업과 국민이 함께 달성한 것으로 평가하고 앞으로 소부장 산업에서 많은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사업화 성과도 도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7월 2일 한국무역협회 주관으로 열린 ‘소재·부품·장비 산업 성과 간담회’에서 “기습 공격하듯이 시작된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가 우리 경제에 큰 충격이 되리라는 우려가 많았지만 우리 기업과 국민이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해냈다”며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상생과 협력으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향해 전진했고 위기 극복의 성공 공식을 찾았다”고 평가했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은 일본 수출규제에 대한 대응 성과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다.
“국내 소부장 산업 생태계에 혁신적인 변화의 싹이 텄고 관련 중견·중소기업이 크게 성장하는 계기도 마련됐다. 우리 소부장 산업이 국내 공급망의 안정을 넘어 세계로 진출하는 토대를 다졌다.”
문 장관은 “2년 동안 위기 극복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을 주도하면서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첨단산업의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박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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