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책나눔위원회가 매달 일곱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문학 ▲인문예술 ▲사회과학 ▲자연과학 ▲실용 일반 ▲그림책·동화 ▲청소년 분야의 추천 도서는 여러분의 독서 욕구와 지적 호기심을 샘솟게 할 것입니다. <공감>은 책나눔위원회의 추천 도서를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혼자의 넓이
이문재 지음 | 창비
코로나19 대유행 시대를 살면서 어쩌면 이런 시집을 기다려왔던 것도 같다.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여행을 가지 못해도 이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체념이 커질 때. 누군가와 무엇을 같이했던 기억들이 사라지려고 한다. 『혼자의 넓이』는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로 뛰어난 시적 감각을 인정받은 이문재 시인이 칠 년 만에 펴내는 시집이다. “혼자서는 깨닫기 힘든 혼자의 팬데믹”의 세계를 깨끗하고 다정한 시어로 구축해 보여준다. 시집을 다 읽고 나자 이런 바람이 생긴다. 시인이 이제 ‘혼자’가 아닌 ‘우리’라는 명명법으로 시를 써주었으면 좋겠다고. ‘더불어 사는 혼자’에 대한 대화가 필요한 때가 돌아온 듯하니. 이 시집의 맨 끝에는 이런 시가 수록돼 있다. <혼자가 연락했다>. 누구에게든 연락 한번 해야겠다. 혼자 있을 혼자에게. 안부를 묻고 밥이나 한 끼 같이 먹는 게 어떠냐고. 여름에는 시(詩)를 읽는다. 뜨거움과 차가움, 태양과 그늘에 대해 생각하듯이.
조경란(소설가)
무당과 유생의 대결: 조선의 성상파괴와 종교개혁
한승훈 지음 | 사우
이 책은 조선사회의 유교화 과정을 종교사적인 관점에서 우상파괴 및 성상파괴의 기획으로 재해석한 책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이 추구했던 유교화 과정은 실패했던 것일까? 저자는 이에 대해 이 책에서 흥미로운 답변을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유교화는 불교와 도교, 무속신앙을 배제하는 유일한 종교로서의 유교를 구성하려는 기획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기획은 이단적인 다른 종교들의 우상을 파괴하는 과정을 포함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유교 내부의 성상을 파괴하는 작업도 수반했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철저하게 수행될 수 없었다. 많은 대중만이 아니라, 일종의 종교 개혁을 시도하던 유자들 자신이 일상에서 불공을 드리기도 하고 또 무속 의례에 의존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종교사가 유교와 무속의 이중구조를 띤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유교사회로서 조선사회의 복합적인 특성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진태원(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
상징권력과 문화: 부르디외의 이론과 비평
이상길 지음 | 컬처룩
일과 여가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이란 말이 유행어가 됐다. 여가의 시간은 영화관, 미술관, 공연장, 박물관, 도서관 등에서 문화를 향유하는 시간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문화예술에 대한 논의를 쉽게 풀어 냈다. 구별짓기, 문화자본, 아비투스, 상징폭력, 장 이론 등 부르디외가 만들어낸 개념들은 오늘날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있는 교양 대중 사이에 널리 쓰인다. 개인의 몸과 마음에는 문화예술 활동에는 출신 가족, 지역, 학교, 계층 등이 남긴 보이지 않는 흔적이 남아 힘을 발휘한다. 이 책은 ‘있어 보이기’ 위한 과시적 문화예술 활동을 넘어 자기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주체적인 미적 취향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유용한 성찰의 도구다. 이 책은 경제력과 권력의 지배 밑에 숨어있는 문화자본과 상징권력의 부드러운 지배를 폭로하고 세상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들려는 문화예술인들에게 필독서다.
정수복(사회학자·작가)
그것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순간: 일상을 만든 테크놀로지
최형섭 지음 | 이음
과학은 이해를 목적으로 하지만, 기술은 실용을 목적으로 한다. 이 책은 “일상을 만든 테크놀로지”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기술에 대한 책이다. 그 기술은 마스크에서 출발해 백신으로 끝나는데 그 중간에 있는 기술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담배, 우유, 라면, 전기밥솥, 컴퓨터, 스마트폰, 인공지능, 원자폭탄, 챌린저호 폭발, 후쿠시마 원전사고, 세월호 침몰, 유전공학, 전기자동차 등이다. 한마디로 20세기에 우리 한국인의 삶을 바꿔놓은 기술을 대부분 포괄하며 이 기술이 딱딱한 설명이 아니라 저자 개인의 체험이 녹아들어간 기술사의 맥락에서 서술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다. 기술은 과학뿐 아니라 인간의 욕망, 생활, 사회의 구조, 경제 등의 영향을 깊이 받으며 또 역으로 이러한 욕망과 사회생활에 심오한 변화를 촉발하기도 한다. 기술에 대한 이해는 그러므로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이다. 이 책은 과학기술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을 반추하게 한다.
권복규(이화여자대학교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
김혜진 지음 | 원더박스
2012년 7월, 국어교사 김혜진 씨는 시리아 청년 압둘와합을 만났다. ‘한국 생활 적응을 도와달라’는 은사의 부탁을 받았던 것. 와합은 시리아에서 명문대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던 엘리트. 시리아와 한국을 잇는 역할을 하고 싶어 한국에 왔지만 모국은 민주화 혁명에 이은 전쟁으로 혼란에 빠졌고 가족은 난민이 될 처지가 됐다. 와합은 시리아 난민을 돕기 위한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제대로 하려면 단체가 필요하다는 김혜진 씨의 조언에 와합은 ‘헬프 시리아’ 단체를 만든다. 책 각 장 끝에는 시리아인의 관점에서 시리아 역사·전쟁·문화 등을 설명하는 ‘압둘와합이 들려주는 시리아 이야기’가 실려 있다. 우리에게 시리아는 여전히 낯설다. 이슬람, 전쟁, 난민, 독재 등등 단편적인 인상만 갖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시리아를 좀 더 가깝게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와 다른 타자(他者)에 대한 관심과 배려, 환대가 왜 필요한지 자연스럽게 깨닫도록 한다.
표정훈(평론가)
내 마음 ㅅㅅㅎ
김지영 지음 | 사계절
ㅅㅅㅎ이라는 한글 자음으로 얼마나 많은 단어를 만들 수 있을까? 첫 장을 열면 모든 것이 다 시시한 아이가 등장해 ‘시시해’라고 말한다. 이어 아이는 무얼 해도 마음이 ‘싱숭해’지고 누군가 자기 마음에 무슨 짓을 했는지 ‘수상해’하고,모두 자신만 빼고 노는 것 같아 ‘섭섭해’하고 아무도 자기 마음을 몰라줘 ‘속상해’한다. 이렇게 속상한 아이의 마음이 ‘ㅅㅅㅎ’ 글자 놀이와 맞물려 절묘하게 풀려나간다. 말을 못해 ‘소심해’하고 혼자 노니 ‘심심해’하고 심심하고 섭섭하고 소심하던 아이는 ‘ㅅㅅㅎ’를 ‘상상해’로 바꾸면서 전혀 다른 단계로 올라간다. 아이는 넓은 상상의 세계에서 ‘소소해’로 시작해 ‘신선해’를 거치더니 이어 ‘씩씩해’지고 결국 ‘쌩쌩해’에 이른다. 그림책은 아이들이 글자 놀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스스로 자기 마음을 보고 표현하게 한다. 어쩌면 아이들이 그림책 주인공처럼 힘을 내 쌩쌩해져야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최현미(문화일보 문화부장)
자본주의 할래? 사회주의 할래?
임승수 지음 | 우리학교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부딪치는 문제는 크게 ‘개인’과 ‘사회’로 나눌 수 있다. 서로 다른 성격과 상황, 공동체 운영 방식과 구성원들의 갈등 등이 그렇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가장 큰 걱정거리는 경제 문제다. ‘돈’과 관련된 고민과 걱정은 ‘개인’과 ‘사회’를 막론하고 중요하고 심각하다. 욕망이 충돌하고 이해가 상충하며 갈등이 증폭될 때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해결책을 찾는다. 더 나은 미래, 더 행복한 삶을 위해 경제 제도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알기 쉽게 비교한다. 가상 인물인 나소유와 오평등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장단점을 설명한다. 어느 한쪽 편을 들거나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열띤 토론과 논쟁을 지켜보며 정리하고 안내하는 역할을 맡는다. 의심하고 질문하고 관찰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조금 더 나은 삶,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간다. 가장 본질적이면서 현실적인 고민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시스템을 이해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류대성(<읽기의 미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