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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를 뜻하는 우리말
무더운 날의 연속입니다. 그야말로 전국이 ‘열돔’(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지붕 안에 갇힌 것처럼 뜨거워지는 현상)에 갇혔는데요. 이번 여름은 2018년, 1994년에 버금가는 위협적인 무더위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당분간 폭염주의보 및 폭염경보가 자주 내려지고 불볕더위로 인한 피해도 늘어날 것이라는 소식인데요.
더위를 표현하는 용어로 열돔(Heat와 Dome의 합성어)이나 폭염(暴炎), 폭서(暴暑) 같은 한자어가 많이 쓰이지만 우리말도 다양합니다. 무더위, 불볕더위, 찜통더위, 가마솥더위 등 저마다 느낌과 의미가 조금씩 다른데요. 오늘은 더위를 뜻하는 우리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무더위와 불볕더위, 뭐가 다를까?
더위를 나타내는 우리말은 습도 유무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요. 습도가 매우 높아 찌는 듯한 더위를 나타내는 말로 ‘무더위’ ‘찜통더위’ ‘가마솥더위’ 등이 있고 습도는 높지 않지만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더위를 나타내는 말로 ‘불볕더위’ ‘불더위’ ‘강더위’ 등이 있습니다.
먼저 무더위를 ‘무척 심한 더위’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무더위는 ‘물’과 ‘더위’가 합쳐진 ‘물더위’가 어원입니다. 일반적인 더위와 달리 물기가 많아 후덥지근하게 와 닿는 더위를 말하는데요. 물더위에서 ㄹ이 탈락해 무더위로 변한 것입니다. 무지개의 ‘무’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지개는 ‘물+지게’, 즉 작은 물방울들이 햇빛에 반사돼 문(지게)처럼 보이는 현상인데요. 물지게에서 ㄹ이 탈락하고 지게는 지개로 바뀌어 무지개가 됐습니다.
찜통더위는 뜨거운 김을 쐬는 것같이 무척 무더운 여름철 기운을 뜻하고 가마솥더위는 가마솥을 달굴 때 아주 뜨거운 기운처럼 몹시 더운 날씨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인데요. 가마솥더위란 용어는 1977년 8월 3일자 신문 기사에 처음 등장했다고 합니다(조항범 충북대 국문과 교수). 그날 대구 지역 온도가 38.8도를 기록해 이를 ‘살인적인 가마솥더위’라고 표현했습니다. 가마솥더위를 무더위, 찜통더위보다 좀 더 센 더위라고 해도 될 것 같네요.
습도는 높지 않지만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불볕더위는 불더위라고도 하는데요. 국립국어원은 폭염이란 한자어 대신 불볕더위를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고 여러 날 볕만 계속 내리쬐는 심한 더위는 강더위입니다. 여기서 ‘강’은 한자어 강(强)이 아니라 ‘마른’ ‘물기가 없는’의 뜻을 지닌 접두어로 강추위(눈도 오지 않고 몹시 매운 추위) 강된장(되직하게 끓인 된장)에서 ‘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더위는 시기에 따라 부르는 말이 다르기도 합니다. 그해 여름 처음으로 맞는 더위는 ‘첫더위’, 여느 때보다 일찍 찾아오는 더위는 ‘일더위’, 여름이 다 가도 이어지는 더위는 ‘늦더위’라고 합니다. 밤낮에 따라선 ‘밤더위’ ‘낮더위’라고 하고요. 또 여름 한창 심한 더위는 ‘한더위’, 초복·중복·말복의 삼복 무렵 더위는 ‘삼복더위’로 ‘복달더위’ ‘복더위’라고도 부릅니다.
일사병·열사병 주의보!
이 같은 무더운 날씨에 온열환자가 늘고 있다는 반갑지 않은 소식도 들리는데요. 온열질환은 열이 몹시 오르는 병으로 일사병과 열사병이 대표적입니다.
일사병은 ‘더위 먹은 병’으로 한여름 뙤약볕에 오래 서 있거나 일을 할 경우 몸이 열을 내보내지 못해 발생합니다. 땀이 많이 나고 어지러움과 두통이 생기며 구토 등의 증상도 함께 나타나지만 서늘한 곳에서 수분을 보충하며 충분히 쉬면 금세 회복되기도 합니다.
열사병은 일사병과 달리 땀이 나지 않습니다. 대신 열이 40도 이상으로 오르고 의식장애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요. 열사병은 장기 손상으로 이어져 사망할 수도 있는 응급질환으로 즉각적인 처치가 필요하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앞으로 불볕더위, 찜통더위, 가마솥더위가 돌아가며 힘들게 할 텐데요. 언젠가 이 더위도 지나가고 곧 선선한 바람이 불겠지요? 짜증내기보다 차분히 견뎌내야겠습니다.
백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