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도, 나라도 전세계서 신뢰 정말로 닮고 싶은 모범국이 됐다

2021.07.26 최신호 보기
유무형적 이익과 외교·경제적 책임
7월 2일 개발도상국의 산업화와 국제무역 참여를 증진하기 위해 1964년 설립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개도국들의 모임인 ‘그룹 A’(아시아·아프리카)에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이 포함된 ‘그룹 B’로 우리나라의 지위를 바꾸는 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1964년 UNCTAD 설립 이래 첫 사례다. 특히 이번 가결은 우리 정부가 직접 선진국으로 지위 변경을 신청해서 이뤄졌다고 한다. 국제사회의 요구에 책임을 다할 준비가 됐다는 선언이자 국제사회를 향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 내부에는 개도국으로 누렸던 혜택을 못 받을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사실 선진국과 개도국을 구분 짓는 명확한 기준은 없다. 세계은행은 1인당 국민총소득(GNI, 명목)을 기준으로 저소득, 중하소득, 중상소득, 고소득 국가로 분류한다. 1인당 소득은 자국 국민의 삶의 질을 간접적으로 대변할지는 몰라도 한 국가의 국제사회에서 역할을 나타내주지는 못한다. 또한 미국의 군사력평가기관 글로벌파이어파워(GFP)가 내놓은 2021년 국가별 군사력 순위에서 중국과 인도가 군사력 세계 3위와 4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이들 국가를 선진국으로 부르지 않는다. 군사력과 경제력만 강하다고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모범 국가
선진국은 부(富)하고 강(强)한 나라이기보다는 앞서가는 나라 가운데 정말 닮고 싶은 모범 국가를 의미한다. 투명성, 공정, 평등과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의 소중함을 인정하고 국제사회의 책임을 나누는 신뢰받는 국가가 선진국이다. 특히 기후변화, 보건위기, 난민, 국가 간 개발 격차 등 국제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함께 풀어가는 모습을 보여야 선진국으로서 신뢰받을 수 있고 그 국민도 어느 나라를 가든 합당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 
2020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 명목) 규모를 보면 우리나라(3만 2860달러)는 주요 7개국(G7)의 일원인 이탈리아(3만 2200달러)를 처음으로 추월했고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는 미국 빌보드 차트를 석권했다. 10월 누리호 발사에 성공하면 세계 일곱 번째로 자체 우주 발사체를 개발한 나라가 된다. 그리고 코로나19 대유행 속에 K-방역은 세계의 모범이 됐다. 우리나라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자긍심을 가지기에 충분히 성장한 국가로 변모했다.
2019년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우리나라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 것도 이러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우리만의 근면성과 개도국들을 국제자유무역 질서 내로 편입시키기 위해 제공됐던 우대 조치 덕분에 우리나라는 국제자유무역 질서 내로 편입할 수 있었다. WTO라는 국제자유무역 질서 속에서 우리나라는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성장한 유일한 국가로 개도국들의 모범이 됐다. 또한 기존 국제 질서 속에서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는 점에서 미국을 위시한 서구 선진국들과 국제사회는 우리나라를 기꺼이 선진국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비록 우리 내부에 아직 우리나라를 선진국이라 칭하는데 망설이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우리 역량을 낮춰보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선진국이 됐으니 그에 합당한 ‘비용 청구서’가 날아올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은 우리 국민이라면 당연한 걱정이다.
다만 국제사회의 당면 과제에 자발적 책임을 지는 것을 타의로 강제 납부하는 비용 청구서로 볼 이유가 없다. 선진국으로서 국제사회가 직면한 당면 과제에 책임을 다하는 것은 다른 나라의 이익을 위한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결국 우리 국익에도 도움이 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이후 우리나라 시장을 급격히 개방했을 때 우리 기업들이 경쟁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었지만 오히려 우리 기업들은 이를 경쟁력을 배양하는 계기로 활용했던 것과 같은 이치다.

선진국으로서 국제사회 어떻게 기여할지 고민해야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로부터 선진국으로 인정받은 것에 도취되기 보다 선진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기여할지 고민해야 한다. 먼저 국제사회를 바라보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우리 대외정책의 시야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와 그 주변으로 국한하지 말고 폭과 깊이를 넓혀야 한다. 그리고 기후변화, 디지털 격차, 보건위기, 글로벌가치사슬공급망(GVC) 재편 등 국제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집단적 책임’을 이끌어낼 수 있는 조정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국제사회가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참할 때 다른 국가의 눈치를 보기보다 투명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자체적으로 수립하고 일관되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말과 행동을 바꾼다면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얻기 어렵다. 국익을 중시하는 실용주의 노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인류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명확한 내부 기준 수립과 이를 준수하는 행동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는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진정한 세계 평화를 실현할 수 있는 국가가 돼야 한다. 백범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 ‘나의 소원’ 마지막 부분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서 “문화(文化)의 힘을 통해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까지도 행복하게 해주는 나라”가 되길 바랐다.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아니라 타국에 모범과 목표가 됨과 동시에 세계 평화에 진정으로 기여하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

곽성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동남아대양주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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