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월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21년 제2회 추가경정 예산안 관련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기획재정부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에서 돈을 뿌린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여기에서 파생된 ‘헬리콥터 머니’는 경기 부양 수단 가운데 하나로 대접받는다. ‘헬리콥터 드롭’으로도 불리는 이 정책은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1969년 처음 언급했다.
경기가 가라앉았을 때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 전 국민에게 일정 금액씩 나눠주면 소비가 진작돼 물가가 상승하고 기업의 생산도 늘어나면서 경기가 살아난다는 논리다. 특히 기준금리가 0%에 가까울 정도로 저금리 상태일 때는 금리 인하 정책은 효과가 없다. 이럴 땐 사람들의 지갑에 직접 돈을 넣어줘야 소비를 유도할 수 있다. 당장 먹고사는 게 절박한 저소득층일수록 효과가 크다.
프리드먼이 이론으로 소개한 헬리콥터 머니를 정책으로 실행하자고 주장한 대표 인물이 2006~2014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을 지낸 벤 버냉키다. 그는 2002년 연준 이사 시절 ‘경제가 디플레이션일 때는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서라도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 어마어마한 달러를 찍어내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그가 사용한 정책은 은행 등 금융기관의 대출을 통해 자금시장에 돈을 공급한 양적완화였다. 이는 신용도가 낮은 저소득층에게 대출 이자 부담을 지우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빈부격차만 더 키웠다는 비판을 받았다.
현금 지급 정책의 경제 효과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 우고 젠틸리니(브루킹스 기고문 2020년 3월 13일)에 따르면 헬리콥터 머니 정책을 실행한 사례에서 대출을 통한 자금 공급보다 추가경정예산(추경) 등을 활용한 현금 지급 정책의 경제 효과가 더 컸다. 아프리카 케냐의 경우 1달러를 주민에게 주면 1.27~2.60달러의 경제 효과를 냈다(2014~2017년 총 세 차례 현금 지급). 미국에서는 현금 지급과 비슷한 바우처 프로그램에서 1달러 당 1.79달러의 경제적 효과를 냈다. 유럽연합(EU)도 10년 전 유로존 위기 때 1유로 당 85센트의 경제 효과를 거뒀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각국 정부가 현금 지급을 주요 정책으로 채택하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 가장 큰 것은 인플레이션 리스크(위험요소)다. 젠틸리니는 “일회성 현금 지급을 한 호주와 쿠웨이트 등에서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다. 상품과 서비스 공급이 시장과 정부에 의해 원활하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유행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했다. 대유행으로 시장이 교란되지 않도록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금융과 온라인 상거래 시스템은 필수다. 전면 봉쇄나 격리 등으로 사람들의 이동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의 소통 능력도 중요하다. 현금 지급에 대한 과도한 기대나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소통 전략을 잘 짜야 한다.
코로나19 피해 지원과 방역을 위한 33조 원 규모의 추경안이 7월 1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소득 하위 80%인 1800만 가구에 1인당 25만 원씩(상생 국민지원금),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 113만 명에게 최대 900만 원의 지원금을 주는 역대 최대 규모다. 국민지원금의 지급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4인 가구 월소득 878만 원(세전 기준) 선이 유력하다. 20억 원 이상 부동산 소유자 등 자산가들은 배제된다.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지원금은 8월 하순부터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
인플레 우려 없애고 코로나19 피해 극복을
이번 추경은 인플레이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하는 과제도 안게 됐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6월 24일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시행한 재정 부양책과 대규모 유동성 공급이 빠른 경기회복과 맞물려 물가상승 압력을 더욱 확대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는 요인이 적지 않게 잠재해 있다”고도 했다. 지나치게 부풀려진 자산 가격이 금융 불균형을 키우고 있다는 경고로 해석됐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진화에 나섰다. 홍 부총리는 7월 1일 누리소통망(SNS)에 글을 올려 “30조 원 넘는 추경이 이뤄지더라도 물가 영향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했다. 그는 “상생 소비지원금으로 약 11조 원의 민간소비 진작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데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0.03%포인트 정도로 추계된다”며 구체적인 수치로 반박했다. 이번 추경은 ‘코로나19 피해 극복’과 ‘인플레 우려 불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분명 지금의 위기는 과거 수차례 겪은 금융위기와 다른 성격의 측면이 있다. 본질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직접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거기서 조금 비켜나 있는 사람들 사이의 소비와 소득 순환이 잘 안 되는 게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를 본 이들이 기존의 소비를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한 곳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그 돈의 규모가 상당히 커야 한다. 인플레이션 우려 해소나 재정건전성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지원 규모가 더 중요한 이유다.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