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2일 박진규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이 안동 동물세포실증 지원센터를 방문했다.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를 가다
“코로나19 백신 생산에 꼭 필요한 세포 배양기입니다. 바이러스가 생존하려면 일종의 숙주 역할을 하는 동물·곤충 세포가 필요한데 저 동물세포 배양 장비가 있어야 바이러스를 대량 증식하고 성장시켜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 수 있습니다.”
6월 7일 경북 안동시 풍산읍에 자리 잡은 경북 바이오산업단지. 넓은 단지 안에 들어서니 준공·입주한 지 1년도 채 안 되는 새 건물이 눈에 띈다. 동물세포와 바이러스를 이용해 백신을 생산하는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비영리법인)다. 센터의 이재원 기획관리부 팀장이 세포배양실 복도 창문 안쪽으로 보통 사람 신장의 두 배가량 되는 원통형 바이러스 세포배양기를 가리키며 짧게 설명했다.
동물세포 배양 장비는 세포를 증식시킬 때 그 먹이(영양분)로 쓰이는 이른바 ‘배지’ 기기다. 이때 동물세포는 곤충 세포나 인체 세포를 활용한다. 곤충 세포에 바이러스를 감염시키면 바이러스가 수백 수천 개로 증식·배양되는데 이때 바이러스가 숙주 역할을 한 세포를 뚫고 나오면 항원만 별도로 뽑아 분리하고 사멸시켜 백신을 만들어낸다. 즉, 백신은 기본적으로 질병을 일으키는 바로 그 병원체(코로나바이러스의 표면항원 유전자)를 병에 걸리지 않을 정도의 적은 양만 정상인의 몸속에 투여해 면역 항체 형성 반응을 유도함으로써 실제 감염을 예방하는 방식이다.
▶안동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 | 조계완
국내 첫 코로나19 백신 임상 시료 생산
코로나19 백신 등 백신 의약품을 다루는 백신 세포배양 제조 구역이라 멸균·청정 상태 유지가 모든 출입자의 제1행동수칙이다. 복도를 따라 걷는 관람객도 반도체 공장에 출입할 때처럼 머리에서 발끝까지 헤어캡에 위생신발, 위생복을 입어야 하고 제조시설 방 안에 직접 들어가는 작업자는 손 씻기는 물론 옷을 벗고 에어샤워까지 해야 한다. 여러 제조 구역은 이른바 ‘차압’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방 안에 압력을 걸어 높고 낮은 압력 차이에 따라 먼지 등 외부 불순물이 빨려 들어가게 돼 있어요. 외부 오염물 침투를 막아주는 겁니다.”
코로나19 백신이라 보안도 삼엄하다. 고병원성 바이러스를 생산하는 구역이라서 실증센터 직원이어도 제조시설 안에는 보안카드를 발급받은 사람만 출입할 수 있다.
앞서 6월 초 산업통상자원부는 ㈜셀리드사로부터 위탁받아 센터에서 최초로 코로나19 백신 임상 시료(임상시험용 백신)를 생산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2020년도 10월부터 센터에서 다양한 국내 기업의 동물세포 기반 백신 공정개발과 임상 시료 생산을 지원해 코로나19 백신 임상 시료를 생산한 것이다. 셀리드는 2006년 말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내 연구실에서 설립된 세포 기반 면역치료백신 및 감염성질환 예방백신 개발 전문 바이오벤처기업이다.
셀리드가 개발 중인 백신은 1회 접종하는 백신(얀센백신과 동일한 플랫폼인 바이러스벡터 방식)으로 현재 임상 ‘1상 및 2a상’ 단계 개발이 진행 중이다. 센터에서 위탁받아 생산한 백신은 셀리드의 임상 ‘2b-3상’을 신속하게 진행하는 데 사용할 임상 시료다.
6월 2일 이 센터를 방문한 박진규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정부는 백신산업 육성과 국내 기업의 백신 임상 시료 생산 지원을 위해 2017년부터 선제적으로 안동과 화순에 국제 규격의 시설을 갖춘 백신 생산 위탁대행시설 및 장비를 구축해왔다”며 “국제 수준의 ‘우수의약품 제조품질관리 기준’(GMP)을 갖춘 이 센터 공정시설을 통해 자체 설비 구축이 어려운 국내 (중소·바이오벤처) 기업들의 백신 개발과 생산을 지원하고 국내 백신산업 생태계를 조기에 조성하는 등 우리나라를 글로벌 백신 허브로 육성하는 데 센터가 중추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앞으로 이 센터의 기능을 더욱 높여 국내 기업의 백신 개발·생산에 유용하게 활용하도록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안동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에 갖춰진 세포배양기 장비 |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
바이오벤처·신생기업 지원에 초점
이 센터는 현재 총 181종 344대(408억 원)의 시설·장비를 갖추고 있다. 생산동에는 백신 원액 생산라인(3개), 완제품 생산라인, 품질분석 및 공정개발 시설장비가, 동물실험동에는 동물시험 효능·평가 장비가 있다. 이 중에 원액 1개 라인과 일부 완제품 생산라인은 2021년 말 구축 완료될 예정이다.
고동규 기획관리부장은 “우리 센터는 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중인 여러 국내 기업과 업무협약을 맺고 임상 직전의 동물시험 단계 및 임상 단계에서의 임상 시료 생산을 지원하고 있다”며 “교수 등이 대학 실험실에서 또 작은 백신 기업들이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을 개발해낸 뒤에 임상 테스트에 쓸 임상 시료 생산을 우리 센터에 의뢰해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이나 민간 기업이 실험실 수준에서 연구개발로 백신 후보물질을 만든 뒤에 이 센터에 보내오면 센터는 그 물질을 기초로 쥐 등 동물을 대상으로 주입·시험해 효능과 독성 여부를 시험한다. 그 후에 임상에 쓸 시료 백신을 만든다. 백신 임상 시료 생산장비를 구축하려면 500억 원 이상 큰돈이 든다. 또 임상시험 백신 시료는 보건당국으로부터 우수의약품 제조품질관리 기준을 갖췄다고 인증·허가받은 시설에서만 생산할 수 있다.
“세균 항생제는 일반 환자에게 투여하는 것이지만 백신은 멀쩡한 사람에게 병원체 바이러스를 주입해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라서 백신 제조·생산시설은 원료 구입부터 제조, 품질·위생관리, 출하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엄격한 조건과 인증이 부과됩니다.”
즉 규모가 작은 바이오벤처·신생기업(스타트업)들은 자체 공장 구축에 엄두 내기 어렵고 이런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센터를 세운 것이다.
▶안동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의 코로나19 원액 완제품 생산과정을 보여주는 동영상 화면 갈무리 |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
실험실 단계 넘어 ‘공정개발’ 역할도
백신 상품에 특유하게 수반되는 불안정성과 수익성 위험도 대규모 생산시설 구축에 나서기 어려운 까닭 중 하나다. 고 부장은 “백신은 임상 전 단계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 1~3 단계까지 다 통과해 당국의 승인을 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성이 있고 개발·생산해서 시장에 내놓더라도 감염병이 그 사이에 소멸해버리면 수익성도 위험이 큰 편”이라며 “센터는 시중에 소규모로 판매하는 상업용 단계까지 백신 기업을 도와준다”고 말했다.
다만 임상시험 백신 시료를 위탁 생산해주는 대가로 위탁업체로부터 운영비 명목의 소액을 받을 뿐이다. 현재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을 하겠다고 질병관리청에 신청한 뒤 승인받아 임상 시험에 돌입한 기업이 다섯 곳(SK바이오사이언스·셀리드·제넥신·유바이오로직스·진원생명과학)이다. 셀리드 외에 다른 기업들은 자체 생산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센터 직원 중에는 녹십자·얀센 등에서 백신 개발 생산 경력을 거친 전문가들이 상당수다.
그런데 화이자·아스트라제네카 등 외국산 코로나19 백신을 들여와 대규모 접종이 이뤄지고 있는데도 국내 백신 업체들이 시장 판매 기회를 탐색하면서 국산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 “이번 코로나19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변이가 계속 생기고 독감백신처럼 향후에도 매년마다 계속 맞아야 하는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고 부장의 말이다.
센터는 실험실 단계를 넘어 대규모 생산체계에 들어갔을 때도 백신 품질이 일정하게 관리될 수 있도록 하는 최적 생산기술을 찾는 이른바 ‘공정개발’ 역할도 한다. 세포배양 탱크 안의 온도를 몇 도로 할지 며칠 동안 세포를 키울지 어떤 숙주를 활용할지 등이 중요한 공정 기술이다.
고 부장은 “어느 기업이 우리 센터에 어떤 백신 후보물질과 공정을 위탁했는지 외부에 발설하지 않도록 비밀유지 협약을 맺는다”며 “작은 백신 기업을 우리가 지원하고 돕는 과정에서 생산 공정과 관련해 국가 차원의 기술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감염병 비상사태 대처 위해 백신산업 육성과 생산 지원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는 2000년대 들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신종플루,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등이 창궐하면서 우리나라에 신종 감염병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즉각 대처할 시설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부터 구축됐다. 2010년 말 경상북도·안동시가 국립백신연구원 설립을 제안했고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기획재정부가 국가 백신산업클러스터 조성에 나서면서 비영리법인 (재)백신글로벌산업화기반구축사업단이 2017년 1월 설립됐다. 백신산업 육성과 국내 기업의 백신 임상 시료 생산 지원을 위해 선제적으로 나선 것이다.
사업단 발기인으로는 산업통상자원부·질병관리청·경북도·안동시·백신전문가·민간 기업 등 민관이 함께 참여했다. 이 사업단 안에 총 2300억 원(전액 국비)을 들여 2017년 4월부터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안동·2020년 7월 준공)와 미생물실증지원센터(화순·2020년 4월 준공)가 동시에 구축됐다. 국제 규격과 수준의 시설·장비를 갖춘 임상용·상업용 백신생산 위탁대행 ‘실증지원시스템’이다. 두 센터 모두 구축 사업 기간은 당초 2021년 12월까지 돼 있으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앞당겨졌다.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는 부지 4만5621㎡, 건물 1만6120㎡로 지상 2층, 3개동으로 돼 있다. 독감·수두·코로나19 백신 등의 장비를 구축했다. 미생물실증지원센터는 폐렴·장티푸스·콜레라 등 세균성 질환 백신과 자궁경부암·코로나19 백신 장비를 갖췄다.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 생산라인을 보면 백신 원액제조시설은 200ℓ짜리 2개, 1000ℓ짜리 1개가, 생산한 백신 원액을 유리병에 넣는 ‘완제 공정’은 바이알(유리병) 충전 시스템 1개가 구축돼 있다. 2021년 말까지 원액 라인은 200ℓ짜리 1개(바이오 안전레벨 3단계)가, 완제공정은 생산 원액을 주사기에 넣는 프리필드 시린지 충전시스템 1개가 추가 구축된다. 어린아이부터 성인까지 국제적으로 ‘필수 예방 백신’으로 지정된 건 28개인데 이 중에 한국이 자립화를 이룬 건 약 30%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