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5일 열린 3기 버터나이프 크루 출범식에서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진저티프로젝트
청년 성평등 문화 추진단
“2019년부터 시작된 청년 성평등 문화 추진단은 청년들이 일상에서 당면하는 성평등 의제를 창의적인 방식으로 직접 해결해 우리 사회 전반에 성평등 문화를 확산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은 2021년 5월 25일 버터나이프크루 출범식에서 이렇게 밝혔다. 버터나이프크루는 2030세대 청년이 주도해 성평등 관점의 미래 비전을 만드는 문화 추진단이다. 버터나이프는 버터를 빵에 바르는 칼(나이프)을 의미하며 작고 평범한 버터와 버터나이프가 음식에 달콤한 맛을 더해주듯 평범한 청년들이 모여 성평등을 이뤄가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성평등을 위해 2기에 이어 3기에도 버터나이프크루로 활동하는 서유빈(26) 씨를 만났다. 서 씨가 속한 팀인 아이스티(I-STI)는 2020년 ‘핑크 택스’를 주제로 활동했다. 핑크 택스(Pink tax)는 시장에서 근거 없이 책정되는 성차별 가격을 의미한다. 아이스티는 대학교 친구 4명으로 구성된 팀이다. 그들은 현재 20대 여성 직장인들이 됐다. 서 씨는 “각자 직장인으로서 본업을 하며 추가적인 프로젝트로 버터나이프크루 활동을 하고 있다. 모두 사회생활을 시작해 대학 때처럼 여성 담론에 관해 다채롭게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 게 아쉬워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3기 버터나이프크루 출범식에서 팀 대표들이 교류 시간을 이용해 소통하고 있다.│진저티프로젝트
▶버터나이프크루 3기 출범식에서 아이스티 팀의 대표 서유빈씨가 지난 경험을 나누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아이스티
상품에 담긴 성차별적 요소 분석
대학에서 저마다 미디어와 경영학을 전공한 이들은 소비사회에서 타자화되는 여성들의 현실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디저트, 네일 아트, 생리대 등을 소비하는 일상에서 여성이 합리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서 씨는 “혼자가 아닌 네 명이서 버터나이프크루를 통해 만나는 다수의 구성원과 연대해 소비 관련 성차별 현상인 핑크 택스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여성의 주체적 소비생활을 이루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여성이 소비하는 상품에 담긴 성차별적 요소를 분석해 여성에게 많은 호응을 받았다. ‘물건에도 성차별이 숨어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대학생 때보다 확실히 구매력이 생겼다는 것을 발견했다. 디저트, 네일 아트, 월경 용품, 다이어리 꾸미기 용품 등 여성이 주 소비자인 상품을 소비하면서 과연 가격이 합리적으로 책정된 것인지 여성이 소비에 있어서 타자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면서 “생산과 판매 과정을 살펴보고 어느 요소, 어떤 단계에서 이런 타자화가 나타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고 이 주제에 접근한 이유를 설명했다.
매월 상품을 연구해보면서 ‘이 정도면 합리적이다’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상품 마케팅 측면에서 여성 소비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거나 ‘외모 코르셋’을 권장하는 상품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는 “여성들이 온전한 욕망에 따라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는 세상, 생산자가 여성 소비자의 욕망을 이용하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고 밝혔다. 이어 “여성에게만 비합리적인 판매가 이뤄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여성에게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외모 기준이 잘못된 소비를 부추길 가능성이 높아 핑크 택스가 사회 문제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스포츠, 게임 용품 등 남성이 주 소비자인 물품 또한 값비싼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1기 버터나이프크루 첫 출범식에서 참가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진저티프로젝트
▶2기 버터나이프크루 활동 당시 참가자들이 기획한 공연│ 진저티프로젝트
팟캐스트 방송하고 리포트도 발간
서 씨는 다양한 소비 분야 가운데 한 예로 여성용 사각 팬티를 꼽았다. 힙업이나 뱃살 감추기를 강조하고 섹시한 포즈, 여성스러운 굴곡을 묘사하는 단어를 사용하며 여성 전용 속옷을 판매하는 경우다. 그는 “여성에게 사각 팬티는 좀 더 편하고 남들의 시선에 맞추지 않겠다는 기능적 효용이 큰 데 여전히 ‘외모 코르셋’을 씌우고 보정과 몸매 라인을 강조한 점이 모순된다고 생각했다”고 지적했다.
그가 속한 아이스티 팀은 핑크 택스에 대한 팟캐스트를 방송하고 리포트를 발간한다. 방송과 리포트 발간 이외에도 누리소통망(SNS) 인스타그램으로 청취자, 구독자의 소비 경험을 들으며 소통했다. “내 소비를 되돌아보고 더 나은 소비를 위해 노력하는 계기가 됐다” “소비에 대해 배우고 다시 생각할 기회를 준 ‘아이스티’에 감사하다”는 응원을 받았다.
서 씨는 이 활동을 통해 연대 의식을 느꼈다.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콘텐츠로 발전시키는 과정 자체가 소중했다. 반복되는 차별 속에서 무기력함을 학습하는 대신 연구하고 소통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변화를 위해 뭐라도 하고 있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아이스티 팀이 지난 2기 활동으로 홍대 단팟 스튜디오에서 게스트와 함께 팟캐스트 녹음을 하고 있다. 팀의 멤버 김예은(왼쪽부터), 게스트인 셜리, 백수연, 서유빈, 유혜주 씨가 카메라를 보며 활짝 웃고 있다. | 아이스티
코로나19로 인한 젊은 여성 문제 다뤄
3기 활동은 다른 주제로 할 예정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여성 실직, 우울증, 자살 등이 주요 주제다. 같은 재난이라도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 집단 가운데 하나가 젊은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높아졌다는 통계를 접하고 무척 슬펐다. 동시에 왜 이렇게 많은 여성이 죽음에 내몰리는지 당사자로서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우리가 처한 현실을 정확히 알아야 그에 대한 논의를 지속할 수 있다”며 각오를 밝혔다.
3기에서는 여성 청년에 대한 각 분야의 통계를 활용해 사회 구조적 맥락을 분석하고 체험과 인터뷰를 기반으로 개인 경험을 나누며 위로하는 미디어 콘텐츠를 만들 예정이다. 2기에 진행했던 ‘핑크 택스 절세 수업’의 경험은 여성의 일상 속 작은 차별을 둘러싼 문화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삶을 돌아볼 중요한 계기가 됐다. 서 씨는 “2030 여성을 나타내는 수치는 많지만 이에 대한 타자화된 평가가 아닌 당사자가 나누는 담론을 한번 이끌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버터나이프크루를 대표하는 문구는 “나의 삶은 달라지고 있고 우리가 변화의 흐름을 만든다”이다. 그는 “성평등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눌 사람과 공간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주저 없이 이 활동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버터나이프크루를 통해 소비 분야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주거 공동체를 위한 정책 제언, 성인지 교육 프로젝트 등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버터나이프크루를 지원하고 싶은 청년들에게 서 씨는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다양한 시도로 프로젝트를 발전시키는 과정 속에서 희망과 효능감을 얻었습니다. 성평등을 향한 변화의 물결에 함께할 분들 어서 오세요!”
박유리 기자
▶1기 버터나이프크루 활동 당시 정책살롱 참가자들이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진저티프로젝트
청년 주도 성평등 미래 만든다
여성가족부는 2030세대 청년이 주도해 성평등 관점의 미래 비전을 만드는 ‘21년 청년 성평등 문화 추진단(버터나이프크루 3기)’ 출범식을 5월 25일 열었다.
추진단은 출범식을 시작으로 마음돌봄, 경력개발, 문화예술·미디어, 지역, 건강, 성인지 교육, 상호소통, 안전, 가족 등 9개 분야에서 청년들이 발굴한 의제를 중심으로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한 콘텐츠 제작 및 인식 개선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여성가족부는 4월 28일부터 2주간 3기 추진단을 공개 모집한 결과 총 51개 팀의 신청을 받아 주제의 적합성, 제안 내용의 창의성 및 타당성, 활동 의지 등을 기준으로 심사해 총 22개 팀을 선정했다.
선정된 22개 팀은 6개 지역(서울·경기 등 수도권, 천안, 대전, 대구, 강릉, 부산) 총 74명이며 주제별로 마음돌봄 7팀, 경력개발 3팀, 문화예술·미디어 3팀, 지역 3팀, 건강 2팀, 상호소통 1팀, 성인지 교육 1팀, 안전 1팀, 가족 1팀이다.
2021년에는 성평등에 대한 남녀 인식 격차와 갈등 해소를 위해 ‘2021년 소통의 공론장’을 새롭게 운영한다. 이 활동에서 전문가가 토론 촉진자로 참여해 청년 남성과 여성들이 상호 소통과 존중 의식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계획이다. 공론장에는 남녀 청년을 동수로 모집해 일자리·주거·상호 존중 등 주제에 대해 6월부터 11월까지 논의하고 타협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콘텐츠로 제작해 확산할 계획이다.
또한 ‘마음돌봄’ 분야(7개 팀)도 2021년 새로 운영해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과 고립감 등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마음을 돌보고 건강한 삶의 습관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추진단은 앞으로 6개월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월별로 활동 내용을 온라인 플랫폼(www.butterknifecrew.kr)에 공개한다. 8월에는 중간 발표회, 11월에는 최종 보고회를 진행하며 12월에는 활동 결과물을 누리소통망(SNS)으로 집중 확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