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령길 마루에 있는 대전차 장애물
예약 탐방로 ‘우이령길’ 가보니
“여기 우이동 출입구 하고 저쪽 반대편 교현리 출입구 양쪽 모두 6월부터 하루 탐방 인원을 늘렸습니다. 우이령 숲길을 걸어보고 싶다고 찾아오는 시민들이 계속 늘고 있고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도 늘어나고 있잖아요.”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 있는 우이령길 우이탐방지원센터에서 직원이 말했다. 북한산 둘레길 총 21개 구간 중 마지막 21구간인 ‘우이령길’(소귀고개·牛耳嶺)은 탐방 예약제(연중 개방)로 운영된다. 하루 허용 탐방객 정원은 그동안 평일·주말 1000명이었는데 6월부터 1190명으로 늘렸다. 지난 1년 6개월간 오랜 코로나19에 지치고 백신 예방접종에 적극 참여한 시민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탐방로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데다 제법 긴 흙길 내내 완만하고 평탄해서 노인과 어린이도 가족과 함께 걷기 좋다.
우이령길은 서울 강북구 우이동과 경기도 양주시 고현리를 잇는 작은 길로 북쪽 도봉산과 남쪽 북한산을 잇는 경계 지역에 있다. 양쪽 산봉우리 아래에 난 저지대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오래된 산길로 예부터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어 우이동과 송추로 오갔다고 한다. 1968년 ‘1·21사태’ 때 무장공비들이 청와대로 침투할 때 이용한 길로 민간인 출입이 41년간 금지됐다가 2009년 7월부터 예약 탐방로로 개방됐다. 자연 생태가 잘 보존돼 있고 우이령 계곡과 숲을 따라 맨발로 걷기에도 좋다.
햇살과 단풍잎 그늘 한데 뒤섞여
우이동 쪽 입구에서 탐방로에 들어서자 양쪽에 단풍나무들이 죽 늘어선 흙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초여름 햇볕이 초록으로 우거진 단풍나무 잎 사이로 쏟아지자 황톳길에 하얀 햇살과 단풍잎 그늘이 한데 뒤섞였다. 눈이 선명하고 청량해졌다. 단풍나무에 산 계곡 바람이 불어오니 숲길이 흔들렸다. 산벚나무는 아직 남아 있는 검붉은 버찌를 매달고 흔들렸다.
조금 더 걸으니 6월 초에 한창 흰 꽃을 피웠다가 이제 막 지고 있는 국수나무들이 길 양쪽으로 이어졌다. ‘우이령숲 지킴이 국수나무’라고 쓴 안내판이 보인다. 국수나무는 계곡 주변에 무성하게 자라는데 탐방로 울타리 역할도 한다. 계속을 따라 난 탐방로 주변에 많이 자라기 때문에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 국수나무만 따라가면 길을 찾을 수도 있다. 숲 사이 4∼6m 폭으로 경사가 완만한 흙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한 해나 두 해 전에 떨어진 소나무 솔잎이 푹신하게 발아래에 밟힌다.
울창한 숲길을 걷다보면 길 양쪽 곳곳에 ‘군사시설보호구역’ 표지석이 눈에 들어온다. ‘대전차고개’다. 우이령길은 수도권과 경기 북부를 잇는 작은 지름길로 사람들이 걷거나 농산물을 실어 나르는 산길이었다. 6·25전쟁 당시에는 파주·양주에서 남쪽 서울로 이동하는 피난길로 이용했던 길이다. 이후에는 군 차량 통행을 위해 길을 다듬었다고 한다. 우이령 마루에는 당시 남북 대치의 상징인 대전차 장애물이 약 70년 동안 비바람에 깎이고 시커멓게 퇴색된 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유사시에 받침대에 올려 있는 콘크리트 덩어리를 도로로 떨어뜨려 탱크 진입을 막는 군사시설이다. 미군 제36공병단이 1965년 4월 24일 작전도로로 개통시켰다는 표지석이 한쪽에 세워져 있다.
▶우이령길 오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봉산 오봉 다섯 봉우리
북한산 보호 위해 탐방 예약제 유지
소귀고개를 넘어 이제 야트막한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서울 우이동 경계를 벗어나 경기도 양주 교현리 지역으로 들어선다. 몇 분 더 걸으면 도봉산 오봉 전망대가 나온다. 다섯 개 암봉이 나란히 우뚝 서 있는 오봉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 옆에는 1966년 6월~1967년 10월 이곳 우이령길 연장 3.2km에 걸쳐 흙이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사방사업’(흙막이·돌막이 공사 및 나무 2400그루 식재)을 했다는 당시 기념비가 햇볕에 반짝인다. 이 사업에 연인원 3만 4916명이 동원됐다고 한다. 계곡을 끼고 평탄한 흙길을 걷다보면 온몸에 흰 꽃을 피운 산딸나무 한 그루가 길가에 서 있다.
오봉을 바라보며 걷다 교현리 부근에 가까워지면 이제 석굴암 삼거리다. 군부대 유격훈련장이 있는 널찍한 삼거리로 부근에 있는 작은 호수에 앉아 잠시 쉬어간다. 여기서 교현리 방향으로 난 탐방로에서 잠시 벗어나 오른쪽으로 꺾어 오봉 쪽으로 700m가량 오르막길을 타면 오봉산 석굴암 사찰이다. 암자로 오르는 다소 가파른 언덕길에서 숨이 점점 차오를 무렵 까악 까악 오봉 쪽에서 한낮에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암자의 맨 뒤편 삼성각 마루에 앉으면 뒤로는 도봉산 오봉과 여성봉이 앞으로는 멀리 탁 트인 북한산 영봉이 한눈에 보인다. 상쾌하다. 백운대·인수봉 비경은 영봉 뒤로 숨어 있다.
우이탐방지원센터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우이령길 탐방객 정원 제한과 예약제를 이제 그만 폐지하고 전면 개방해달라는 요구가 들어오곤 합니다. 하지만 탐방 예약제를 하는 건 우이령길뿐 아니라 북한산·도봉산 전체를 보존하기 위한 겁니다. 전면 개방하면 이 산길을 걷는 듯하다가 갑자기 출입 통제를 벗어나 북한산 영봉·백운대 쪽으로, 도봉산 오봉·여성봉 쪽으로 샛길을 타고 몰래 등산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겁니다. 지금도 그런 일이 종종 있어요. 동물들이 다니는 길을 따라 사람들이 샛길 등산로로 이용하면 산은 금방 망가집니다.”
▶우이령길에 서 있는 국수나무 안내판
▶우이령길 길가에 산딸나무가 흰 꽃을 매달고 있다.
숲과 흙길에 퍼지는 여름 풀내음
유격장 삼거리를 지나면 길가에 개망초 흰꽃이 흐드러지는가 싶더니 초록 질경이 한 무리가 황톳길에 시원하다. 어느새 연분홍 꽃을 피운 싸리나무길로 들어선다. 오른쪽으로 계곡물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할 무렵 ‘우이령 숲에 나타난 물오리나무’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현재 우이령길 일대의 숲은 대부분 1960년대 중반 노변 사방사업 때 식재된 아까시나무, 물오리나무 등과 자연림이 뒤섞인 상태다. 오리나무는 옛날 사람들이 거리를 나타내는 표식으로 오리(약 2km)마다 한 루씩 심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물오리나무는 산사태로 흙이 씻겨 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심은 수종으로 척박하고 건조한 산지에서도 적응력이 강해 잘 자란다. 흙길 곳곳에는 오리나무 검은 열매가 떨어져 있다.
산길에 백구 한 마리가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었다. 들개는 아닌 듯했다. “한동안 안 보이더니 어디 갔었니? 너 찾는 사람들 많더라.” 중년의 한 탐방객이 백구에게 말을 붙였다. 멀리 송추 쪽 마른하늘에서 갑자기 천둥소리가 이따금 들려왔다. 좀 더 걸으니 소나기가 후두둑 내리기 시작했다. 여름 풀내음이 숲과 흙길 사방에 진동하며 퍼졌다.
글·사진 조계완 기자
하루 1190명 예약 탐방 가능
우이령길 가는 길
북한산 둘레길은 북한산·도봉산 가장자리를 빙 둘러 기존 샛길과 물길을 연결하고 다듬어 조성한 산책로다. 수평으로 완만한 전체 71.5km 숲길로 총 21개 구간인데 우이령길만 예약제로 운영되는 탐방로다. 우이령길은 북한산국립공원 내 탐방로 97곳(총 217km) 가운데 자연 생태가 가장 잘 보존된 지역이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탐방로 중에서 일정한 하루 탐방 정원을 두고 예약(인터넷 및 현장)으로만 가능한 탐방로는 지리산 노고단과 북한산 우이령길 등 총 23곳이다.
우이령길은 하루에 우이동과 교현리 양쪽 출입구에서 각각 595명씩 총 1190명(평일·주말 동일)이 탐방(입장은 오전 9시부터)할 수 있다. 예약 마감과 입장 마감시간은 오후 4시(3~10월·겨울철은 오후 3시)다. 양주 구간 3.7km, 서울 구간 3.1km씩 총 6.8km 구간인데 탐방예약제 적용 구간은 4.5km(우이탐방지원센터~오봉전망대~교현탐방지원센터)다. 주차장이 없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우이령길 입구는 서울 지하철 수유역 3번 출구에서 버스(120·153번)를 타고 우이동 버스 차고지 종점에서 내리거나 지하철 북한산우이역 2번 출구로 나와 우이동먹거리마을을 지나면 탐방지원센터에 닿는다. 교현 우이령길 입구는 지하철 구파발역 1번 출구에서 내려 버스(704·34번)를 타고 석굴암 입구에서 내려 교현지원센터로 가면 된다. 예약은 국립공원공단예약시스템(reservation.knps.or.kr)을 이용하거나 전화(교현탐방지원센터 031-855-6559/ 우이탐방지원센터 02-998-8365)로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