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광을 받으며 채소가 재배된다. 청분홍빛 LED 불빛에 이끌려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늘고 있다. | 팜에이트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원격 및 자동으로 작물의 생육 환경을 관측하고 최적의 상태로 관리하는 과학 기반의 농업 방식이 스마트팜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로 농업이 위기에 놓인 가운데 생산량 증가는 물론 노동시간 감소를 통해 농업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기술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스마트팜 확산을 한국판 뉴딜의 유망 분야로 선정하고 스마트팜 연구개발(R&D)에 2027년까지 국비 3333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를 바탕으로 농식품부는 전국으로 스마트팜 보급을 확대해 농업의 미래성장 산업화를 가속화한다는 구상이다.
스마트팜 확산을 혁신성장 핵심 선도사업의 하나로 선정하고 2022년까지 ‘스마트팜 혁신밸리’ 4곳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원격제어 및 모니터링을 통한 농장 관리 등 편의성 추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것이 1세대 스마트팜이라면 최근에는 농업 관련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선의 방법을 농장이 스스로 제시하는 2세대 스마트팜의 등장마저 예고되고 있다. 스마트팜 시대에는 지하철에서도 농작물을 키울 수 있다. 메트로팜이다. 청분홍빛 인공광에 이끌려 메트로팜을 찾아오는 손님이 늘고 있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상도역 메트로팜을 찾아 이곳의 24시간을 들여다봤다.
▶어린이들이 상도역 메트로팜을 견학하고 있다. | 팜에이트
서울 지하철 7호선 상도역에서 체험하는 미래 농업
영화 〈마션〉에서는 화성에 고립된 우주비행사 마크 와트니가 모래 폭풍을 만나 홀로 남겨진다. 구조선이 도착할 때까지 500일을 넘게 버텨야 하는 상황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고 온실을 만들어 감자를 재배한다. 비단 영화에서만이 아니다. 남극에서도 채소가 재배된다. 우리나라가 남극에 건설한 연구시설인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 대원들은 일 년 내내 신선한 채소를 먹는다. 와트니가 화성에 만든 것 못지않은 온실을 보유한 덕분이다. 컨테이너 박스 온실에서는 상추와 고추, 토마토, 치커리 등 채소가 자란다. 우주나 남극이라는 공간은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지만 우리가 사는 도시 곳곳에도 식물 공장이 생기고 있다.
지하철에서 인공광으로 식물을 재배하는 곳이 있다. 이른바 메트로팜이다. 재배 베드 위에서 빨강·파랑 발광다이오드(LED)가 조합을 이뤄 빛을 내고 그 아래서 채소가 자란다. 아무도 찾지 않았던 이곳이 스마트팜으로 바뀐 후 청분홍빛 LED 불빛에 이끌려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었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상도역 2번 출입구 계단을 내려가면 오른편으로 메트로팜이 나온다. 사물인터넷, 대량자료(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을 이용해 농장 환경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스마트팜을 지하철역에 설치한 것이다.
▶상도역에 자리한 메트로팜 외관
수경재배 순환식 시스템으로 재배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 농업회사법인 팜에이트가 도시의 생태 감수성을 높이고 도시농업 일자리 창출, 미래 농업 체험을 위해 조성했다. 상도역 메트로팜을 관리하는 팜에이트 관계자는 “서울교통공사와 협력해 도심형 스마트팜의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시민들의 인식 제고와 유휴 공간을 제공하고자 메트로팜을 기획했다. 메트로팜을 점차 확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상도역 메트로팜은 연면적 394㎡ 규모의 재배시설인 ‘버티컬팜’, 로봇이 파종~수확까지 관리하는 ‘오토팜’, 메트로팜에서 당일 수확한 작물로 만든 샐러드를 판매하는 ‘팜카페’, 체험 공간인 ‘팜 아카데미’ 등으로 구성된 복합공간이다.
양산형 재배시설인 버티컬팜은 식물이 필요로 하는 광을 극대화한 인공광으로 식물을 재배한다. 태양 가시광선의 경우 스펙트럼이 빨주노초파남보로 골고루 높게 분포돼 있지만 인공광은 식물이 성장할 때 필요한 광을 극대화하고 식물에 필요하지 않은 나머지 광은 내보낸다.
수경재배 순환식 시스템으로 재배한다. 재배 시설 밑에는 물과 영양분이 흐른다. 이 과정은 보이지 않도록 덮어놨는데 빛과 양액이 만나면 녹조가 생겨 미관상에도 좋지 않고 작물 성장에도 장애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펌프를 통해 물을 각 관에 보낸다. 식물 아래로 흐르는 물은 땅으로 내려와서 원수 탱크로 보내진다. 재사용하는 것이다. 바로 버리면 물 사용량이 많아지기 때문에 대부분 순환하고 2개월에 한 번씩 물청소를 한다.
▶스마트팜을 쉽게 이해하는 교육·체험공간인 팜아카데미 외관. 상도역 메트로팜은 연면적 394㎡ 규모의 재배시설인 ‘버티컬팜’, 로봇이 파종~수확까지 관리하는 ‘오토팜’, 메트로팜에서 당일 수확한 작물로 만든 샐러드를 판매하는 ‘팜카페’ 등으로 구성된 복합공간이다.
노지 대비 생산량 40배 이상 많아
양산형 재배시설보다 한 차원 더 자동화된 스마트팜 형태인 오토팜도 상도역에서 만날 수 있다. 파종부터 수확까지 과정이 전자동화로 이뤄진다. 컨테이너 형식의 오토팜은 자동화가 구축돼 있는 재배시설로 현재 새싹 채소 위주로 재배하고 있다. 양산형 재배시설도 모든 환경 조건이 자동 제어되는 시스템이지만 오토팜은 환경 조건뿐만 아니라 광비율도 조정할 수 있다. 재배 전 과정이 자동화인 것이다.
양산형 재배 시설인 버티컬팜이 내부 환경 조건인 온도, 습도, 영양분, 광 시간, 이산화탄소, 물 등에 따라 식물에 필요한 최적의 조건으로 제어되는 시스템이라면 오토팜은 내부 환경 조건뿐만 아니라 재배 단계별로 세부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 팜에이트 관계자는 “파종-암실-이식-정식-수확의 과정까지 자동화로 이뤄져 있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마트팜의 가장 큰 장점은 수확량이다. 팜에이트 관계자는 “노지(지붕 등으로 덮거나 가리지 않은 땅) 대비 단위 면적당 생산량은 6단 수직 재배 기준으로 40배 이상 많다. 수직, 수경재배를 하기 때문에 재배 기간이 짧다. 병해충이나 계절적 환경 피해가 없는 점을 종합한 데이터를 토대로 40배 이상의 생산량을 산출한다”고 설명했다. 인공광 재배가 일부 영양 성분을 떨어뜨린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그는 “노지 작물과 인공광 재배 작물의 성분을 분석했지만 노지에서 자란 작물과 큰 차이 없이 비슷한 성분임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농업 신생기업 주요 창업 분야로 부상
메트로팜 중 최대 규모의 상도역 버티컬팜은 일 50㎏, 월 1톤 가량의 채소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이다. 수직 6단의 재배 베드가 놓인 버티컬팜에서는 유럽 엽채류(잎을 식용하는 채소를 통틀어 이르는 말) 7종을 양산하고 있으며 일부 허브류(바질, 레몬밤)과 식용화(채심, 한련화, 팬지 등)도 재배한다. 현재 팜에이트가 수직농장에서 양산한 엽채류는 30~40종이며 허브류는 20~30종에 이른다. 추가로 약용과 식용화 작물도 연구하고 있다.
상도역 메트로팜에서 재배하는 엽채류는 카이피라, 이자트릭스, 이자벨, 버터헤드레터스, 스텔릭스, 에즈라 등이며 겨울철 노지에서 재배하기 힘든 허브류 바질도 일부 재배한다. 이곳에서는 유럽 품종이 주로 생산된다.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수경재배 방식을 개발하고 있고 이에 특화된 품종 또한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산된 신선한 채소들은 바로 앞 팜카페에서 샐러드와 음료 등으로 판매된다. 팜에이트 관계자는 “일부 가공되지 않은 포기 형태로 채소를 판매하기도 한다. 메트로팜에서는 특색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팜엑스 공간과 팜 아카데미 공간을 통해 스마트팜이 어떤 공간인지 어린아이부터 성인까지 눈높이에 맞춰 오감으로 체험하며 배우고 먹어볼 수 있도록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수직농장 방식의 스마트팜은 생산량과 에너지 소비, 품질 면에서 노지 재배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농업 신생기업의 주요 창업 분야로 뜨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대규모 수직농장을 운영하는 농업 신생기업 플렌티는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비전펀드, 구글 지주회사 알파벳 등으로부터 2억 6000만 달러를 투자받았다.
▶메트로팜에서 재배된 야채로 만든 샐러드 등을 판매하는 팜카페
▶파종-암실-이식-정식-수확의 과정까지 자동화로 이뤄지는 오토팜 | 팜에이트
도시인에 정서적 안정 효과도
도시농업의 장점은 치유 농업이라는 점이다. 도시농업은 시민의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 특히 도심 농장은 정서적 안정을 주고 가족·이웃·장애인과 함께 텃밭을 가꾸면 치유와 돌봄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생산지와 소비지가 일치해 포장·운송 과정의 에너지 소비를 줄여 기후위기 시대에 대비할 수 있다.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우리나라에서도 도시 농업이 치유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농촌진흥청 연구결과에 따르면 학교 텃밭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참여하지 않은 학생보다 스트레스가 5% 줄었고 스트레스 저항도와 심장 안정도는 각각 16%, 13% 향상됐다. 메트로팜을 다녀간 이용자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팜에이트 관계자는 “도심에서 푸릇푸릇한 채소들과 알록달록한 LED를 보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지하철에서 채소를 키우는 모습을 보며 신비로움을 느낀다. 바로 수확해 음료와 샐러드를 제공하는 팜 카페를 체험하며 소비자들이 독특하고 신선하다는 얘기를 한다”고 전했다.
농업인이 하던 일을 인공지능이 알아서 하기 때문에 스마트팜으로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팜에이트 관계자는 “농업이 기계화돼도 과채류처럼 신선도와 품질이 최우선인 품목은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며 “불량 모종 선별과 수확 후 작물의 선별 작업은 사람이 해야 하기 때문에 그에 맞는 일자리가 창출되리라 생각한다. 일반 노지에서 재배하는 것보다 노동 강도가 낮기 때문에 퇴직자, 장애우들에게도 일자리 창출의 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팜 아카데미에선 매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성인과 어린이 대상으로 스마트팜 관련 교육과 체험 행사를 진행한다. 특히 어린이들을 위한 ‘보물찾기’, ‘식습관 고치기’ 등 체험행사가 인기 있다. 시간은 총 1시간 정도 걸린다. 수확한 작물도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 네이버 ‘팜에이트 팜 아카데미’에서 예약 신청을 받는다. (문의 02-3280-9116)
박유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