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 2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에서 열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2주년 성과 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2018년 최 아무개 씨는 100일도 되지 않은 아이의 유전병 진단을 받고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병명은 시트룰린혈증 2형. 선천적으로 간 효소의 일부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영양소 일부가 분해되지 못해 체내에 독으로 쌓이는 희귀난치성 대사 질환이다. 20대 이후 발현하면 간성 혼수 등으로 생명까지 위협하는 질병이다. 매주 병원에서 채혈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한번 다녀오면 보통 10만 원 이상 들었다. 밝혀진 지 10년밖에 되지 않은 희귀질환과 평생 맞서려니 최 씨 부부는 암담했다. 앞으로 얼마나 벌고 얼마나 아껴야 할까?
아동 입원 진료비 본인부담률 5%로 인하
퇴원할 때 받은 진료비 계산서를 보니 본인부담금은 공단 부담금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건강보험이 아니었다면 한 달 월급보다 많은 금액을 열흘 정도 입원한 병원비로 내야 했다. 입원비가 저렴할 수 있었던 건 2017년 10월부터 시행된 ‘15세 이하 아동 입원 진료비 본인부담률 인하’ 덕분이었다. 그전에는 최고 20%까지 부담했던 진료비를 최 씨는 5%만 부담하면 됐고 아이의 상복부 초음파 검사도 새롭게 건강보험 적용을 받았다.
외래 진료를 간 병원에서 산정특례 등록을 안내했다. “건강보험료 내시죠? 희귀난치성 질환이거나 중증질환처럼 장기 요양을 해야 하는 환자들의 병원비를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제도예요. 앞으로 본인부담금의 10%만 내면 됩니다.”
돌잔치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아이가 온종일 소변을 보지 않아 혈액검사를 했다. 신부전증에 해당하는 수치가 나와 다시 입원했다. 6인실에 자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상급병실을 이용했지만 1년 전과 달리 2~3인실과 비뇨기초음파검사도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생각보다 적은 비용으로 치료 받았다. 현재 아이는 병원을 옮겨 학계 권위자인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있다. 선택진료비가 폐지돼 큰돈이 들지 않았다.
최 씨는 “‘전 국민이 의료비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국민건강보험 혜택을 확대시키겠다’는 대통령 공약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는데 실제로 많은 혜택을 받았다”며 “보장성 강화 제도를 탁상공론하지 않고 실질적이고 점진적으로 확대·개선해 아이가 의료비 부담 없이 건강히 크고 있다”고 말했다.
위기 가정에 ‘재난적 의료비 지원’ 확대
2018년 황 아무개 씨의 아내는 6년 만에 두 번째 폐 이식 수술을 받았다. 폐렴을 앓으면서 폐 기능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지만 오랜 시간 재활훈련을 해야 했다. 면역 거부 반응을 억제하기 위해 면역력을 약화시킨 이식 수술 환자는 외부 감염에 취약해 1인 병실을 이용해야만 한다. 하루 45만 원에 이르는 1인 병실 비용은 비급여 항목이고 본인 부담상한액에 해당하지 않아 환자가 모두 부담해야만 한다.
두 달이 지나도록 아내가 회복되지 않아 황 씨가 속을 끓일 때 병원 사회복지팀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제도가 확대됐다며 재난적 의료비 지원제도를 안내했다. 과도한 의료비로 경제적 부담을 겪는 가구에 정부가 의료비를 지원하는 제도로 2018년 7월부터 제도화해 4대 중증질환에서 모든 질환에 지원하도록 확대됐기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내용이었다. 아내가 6개월의 치료를 마치고 퇴원한 뒤 황 씨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재난적 의료비 지원을 신청했다. 심사를 거쳐 치료비 부담을 상쇄할 만큼 큰 금액을 지원 받았다.
얼마 전 뉴질랜드로 이민 간 황 씨의 후배는 대한민국 국민이었을 때 건강보험제도와 지하철의 효용성과 고마움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자 그동안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혜택을 받았는지 실감했다는 것이다. 황 씨는 “후배 이야기를 들으니 다른 나라에 살았더라면 두 번의 큰 수술과 후속 치료로 파산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을 보호해준 건강보험 보장성 제도가 새삼 고마웠다”고 말했다.
조산아와 저체중 출생아 외래 진료비 경감
새해를 하루 앞둔 2019년 12월 31일 고 아무개 씨는 문자 한 통을 받았다. “2020년 1월 1일부터 조산아 및 저체중 출생아의 외래 진료 경감 혜택이 확대돼 출생일로부터 36개월→60개월까지 외래 진료 시 본인부담률이 10%→5%로 적용됩니다.”
2020년 1월 1일부터 이른둥이 외래 진료비 경감 혜택이 만 5세로 확대되고 본인부담률도 더욱 내려간다는 내용이었다. 덕분에 진료비 경감 혜택이 끝났던 첫째는 올여름까지 기간이 연장됐고 둘째도 만 5세까지 외래 진료비가 경감돼 병원비 걱정 없이 진료 받을 수 있었다.
2015년 32주 만에 세상에 나온 첫째는 1.1㎏의 몸으로 곧바로 신생아 중환자실 인큐베이터로 들어갔다. 꼬박 한 달을 버텨 1.79㎏이 됐을 때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비는 고 씨 월급의 몇 배나 나왔다. 이른둥이는 취약한 RS바이러스를 예방하기 위해 시나지스 주사를 4차례 접종해야 하는데 한 번밖에 못 맞혔다. 당시 보험급여에 해당하지 않아 한 번 접종에 100만 원이 넘어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2018년 둘째마저 36주 만에 이른둥이로 태어났다. 경제 사정으로 6인실에서 견뎌야 했던 첫째 때와 달리 2~3인실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돼 아내는 3인실에 입원했다. “여보 세상 참 좋아졌다. 그렇지?” 둘째는 다행히 인큐베이터 신세를 지지 않았고 아내와 함께 퇴원해 집으로 돌아왔다. 첫째 때와 달라진 점이 또 있다. 2018년부터 선택진료비가 폐지돼 출산 이후에도 수없이 대학병원 외래 진료를 받아야 하는 이른둥이 가족에게 경제 부담을 덜어줬다.
고 씨는 “제도 개선으로 이른둥이를 둔 가정이 얻는 경제 혜택도 크지만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우리 사회가 함께 보듬어준다는 마음의 위안을 받았다”며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 건강보험 보장성을 반드시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낙연 기자
‘문재인케어’로 국민 의료비 4조 원 경감
정부는 2017년 ‘문재인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발표한 뒤 노인·아동·여성 등 취약계층의 부담 경감을 위한 과제를 계획대로 추진했다. 국민 부담이 큰 선택진료비 폐지, 상급병실 급여화는 차질 없이 완료했고, 자기공명영상(MRI)·초음파 등 의학적 필요성이 큰 비급여 항목들은 단계적으로 급여화를 진행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이 2020년 말 분석한 결과 2019년 말까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으로 약 5000만 명의 국민이 4조 원의 의료비 경감 혜택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이나 노인 등 의료 취약계층의 본인부담비 1조 4000억 원이 경감됐고, 환자가 전액 부담하던 비급여를 급여로 전환하면서 2조 6000억 원의 의료비 부담이 줄어들었다.
지속적 보장성 강화정책 추진으로 2019년 건강보험 보장률은 64.2%로 전년 대비 0.4%포인트 증가했고, 비급여 본인부담률은 전년 대비 0.5%포인트 감소한 16.1%로 나타났다. 특히 의료비 부담이 큰 중증질환의 보장성 강화로 상급종합병원의 보장률은 69.5%, 병원급 이상의 보장률은 전년 대비 1.6%포인트 증가한 64.7%였다.
의원의 보장률은 통증·영양주사 등 주사료, 재활·물리치료 등 비급여 증가로 보장률이 하락했고, 요양병원은 투약 및 조제료, 주사료, 재활 및 물리치료 등 비급여 증가로 보장률이 떨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공공의료 기관 보장률은 71.4%로 민간의료기관의 66.0%보다 높았고 증가율도 공공의료 기관이 민간의료 기관보다 높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중증고액진료비 질환의 보장률은 지속해서 증가했다. 백혈병, 림프암, 췌장암 등 1인당 중증고액진료비 상위 30개 질환 보장률은 81.3%로, 30개 질환 가운데 치매, 패혈증, 호흡기 결핵 등을 포함한 상위 50개 질환 보장률은 78.9%로 나타났다.
서남규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 의료보장연구실장은 “이와 함께 중증고액진료비 질환을 제외한 보장률을 분석한 결과 2017년 이후 꾸준히 개선된 것으로 확인했다”며 “이는 의료비 경감정책의 효과가 중증질환과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주요 인구·사회학적 특성별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전 연령 구간에서 보장률은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의료 취약계층인 5세 이하와 65세 이상의 보장률은 다른 연령보다 높았다. 2019년 1세 미만 영유아의 외래 본인부담 경감제도 시행으로 1세 미만의 보장률은 전년 대비 5.2%포인트 증가한 79.4%로 나타났다.
직장 및 지역가입자의 소득분위별 보장률은 하위 소득분위가 상위 소득분위보다 높게 나타났으며 본인부담상한제 정책 효과 또한 하위 소득분위에서 큰 효과를 나타낸 것으로 파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