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빛을 만지는 스태프들의 모습│윤진서
작가 헤르만 헤세가 쓴 정원에 관한 글을 읽으며 나는 이런 위대한 작가도 정원을 가꿨다는 사실에 매료됐다. 어쩌면 그것을 핑계로 정원을 가꾸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좇아 몇 년간 마음을 놓고 정원을 만끽했는지도 모른다. 특히 그중에서도 봄을 즐기던 나는 올해 촬영 일정으로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정원사(?)가 되기 전 일상으로 돌아왔다. 때마침 한창 봄이었다.
봄이 왔지만 현실에 부딪혔다. 몇 년간 시골에 살며 다져온 평화로움도 도시의 매연 속으로 사라졌다. 캐모마일 대신 눈앞엔 배달을 시켜 먹고 남긴 봉지가 즐비했고 아침이면 눈뜨기가 바쁘게 다시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 속으로 몸을 던져야 했다. 미세먼지로 뒤덮인 회색빛 도시가 내 눈앞에 있었다.
도시의 삶을 살던 중 석양빛을 만지는 스태프들의 분주함을 보는 순간이 있었다. 조명과 석양의 조화로움을 논하며 크레인이 올라가고 내가 있던 곳을 비춰주던 어느 날, 분주하게 움직이는 촬영장 스태프들 속에서 무언가 싹트는 것을 봤다. 그것은 인간이 예술을 추구할 때 만들어내는 어떤 것 혹은 많은 사람이 한마음으로 집중할 때 생기는 점 자체일 것이다. 제주에서 잡초를 뽑으며 촬영 현장을 그리워했던 시간도 문득 스쳤다.
석양과 조명은 잘 어우러져 빛 자체만으로 우리 심장에 말을 거는 장면이 연출됐다. 그 모습을 한강 둔치에 앉아 바라봤다.
아름다움이란 여러 가지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자연 풍경 속 아름다움, 싱그러운 음식이 머금은 아름다움, 흐린 날 다시 올라오는 태양의 아름다움, 자신의 몫을 잘 해내려는 인간의 책임감이 주는 아름다움, 도시의 분주한 일상 속 에너지의 아름다움 그 외에도 수천만 가지의 아름다움이 있다.
어떤 날에는 바쁜 일상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하루가 반복될 수도 있다. 또 어떤 날은 그 아름다움조차 거부하고 싶은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묵묵히 내게 주어진 일을 하다 보면 문득 피어나는 어떤 것이 보인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마음의 봄이 시작됐다.
윤진서 배우_ 2003년 영화 <올드보이>로 데뷔 후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으며, 책 <비브르 사비> 등을 썼다. 최근 유튜브 채널 ‘어거스트 진’을 개설했다. 자연 친화적인 삶을 지향하며 제주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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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