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숙원사업 공공주도 모델로 ‘물꼬’ 주민들 “빠른 사업 추진과 투명성 기대”

2021.05.31 최신호 보기
▶5월 18일 오전 서울 은평구 ‘증산4구역 3080+ 추진위원회’ 사무실이 있는 빌라 앞에서 박홍대 추진위원이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에 대한 주민동의서 접수를 안내하는 현수막을 가리키고 있다.

공공주택 복합사업 1호 증산4구역 가보니
‘증산4구역 공공주도 3080+사업 선도구역 선정 확정.’
5월 18일 오전 서울 은평구 증산동의 한 빌라에 도착하자 큼지막한 현수막이 입구에 붙어 있었다. 옛 ‘증산4재정비촉진구역(증산4구역)’은 정부가 2월 4일 발표한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대책(3080+ 대책)’ 가운데 신규 사업 모델인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의 1차 후보지로 3월 말 선정됐다. 그로부터 불과 7주 만에 토지 등 소유자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어 2·4 대책 사업 후보지 가운데 처음으로 지구 지정 요건을 확보했다.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은 역세권, 준공업지역, 저층주거지 등 기존 민간사업으로는 개발이 어려워 노후화된 지역을 공공이 주도해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사업이다.

▶집이 무너져 공터로 방치된 터

한 달 만에 주민 동의율 67% 훌쩍 넘겨
빌라 1층에 있는 ‘증산4구역 3080+ 추진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박홍대 추진위원은 “4월 8일부터 동의서를 걷었는데 소유자 1735명 가운데 10%를 첫날 걷어 예정지구 지정 요건을 충족시켰고 한 달 만인 5월 9일에 지구 지정 요건인 동의율 67%를 넘길 정도로 주민의 호응이 뜨겁다”고 전했다.
지하철 6호선 증산역과 가까운 증산4구역은 총면적 16만 6022㎡ 규모의 부지로 지금까지 발표된 3080+ 대책 사업 후보지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건물 노후도는 89.0%이며 용도지역은 제1·2·3종 일반주거지역이다. 소유자가 많음에도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던 건 재개발이 증산4구역 주민의 20년 숙원 사업이기 때문이다.
박홍대 추진위원은 “누수가 돼 천막으로 지붕을 씌운 집도 있고 아예 무너진 집도 있다. 곳곳에 빈집이 늘고 있다. 이 빌라도 지은 지 33년이 지났는데 수도에서 녹물이 나오고 집마다 천장 색깔이 다르다. 계속 뜯어고치며 겨우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장마철에는 비가 새고 하수구가 막히는 환경이라 이번엔 꼭 정비사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증산4구역은 20년 동안 수차례 재개발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2012년 7월 단독주택재건축예정구역에서 재정비촉진구역(뉴타운)으로 변경되면서 조합을 설립했다. 은평구 수색·증산뉴타운에서 규모가 가장 커 알짜 재개발 사업지로 꼽혔지만 일부 주민의 반대 등으로 진척이 없어 2019년 6월 ‘정비구역 일몰제’에 따라 정비구역에서 해제됐다. 일몰제는 정비구역 지정일로부터 2년 안에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지 못하거나 추진위원회가 승인된 뒤 2년 안에 조합설립인가 신청이 이뤄지지 않을 때 적용된다.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직후 주민들은 새로운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역세권 공공임대 주택사업을 추진했다. 2020년 9월 동의율 75.5%까지 받았지만 서울시가 “정비구역 해제 지역은 사업 대상지에서 제외한다”고 선을 그으면서 무산됐다. 대안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 재개발로 2021년 초 바꿨지만 노후도 등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때마침 정부가 발표한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으로 방향을 틀어 본격 사업을 앞두게 됐다.



“정부 3080+ 대책과 코드가 딱 맞아”
빌라 앞에서 만난 주민 홍태혁 씨는 “여기가 너무나 낙후돼 있고 재개발을 하려고 오랜 기간을 기다렸다. 몇 번 재개발을 시도했다가 계속 무산됐는데 이번에는 잘될 것 같아 기분이 좋다”며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에 찬성한 이유는 빠른 진행과 정부 주도로 하니까 불합리한 부조리가 없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홍대 추진위원은 “추진위원회가 그동안 추구해온 게 빠른 사업 추진과 투명성이었는데 3080+ 대책과 코드가 딱 맞았다”며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4월 26일 은평구청에서 ‘은평구 3080+ 선도사업 후보지 주민설명회’를 열었는데 조합설립과 관리처분인가 없이 패스트트랙(신속 처리)을 적용해 입주까지 5~6년 안에 해준다고 했다. 민간 주도로 한다면 그렇게 빠른 입주는 불가능하다. 그 밖에도 주민 분담금을 낮추고 사업 수익률을 더 높게 보장하는 등 여러 가지 인센티브를 제시했다. 우리 생에 이런 좋은 조건은 다시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공공이 주도하는 재개발 방식을 놓고 주민 사이에 반감이 없었던 건 아니다. 특히 LH가 사업 주체라는 소식이 알려지자 “주공아파트가 들어오는 거 아니냐”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주민설명회에서 “시공사와 브랜드는 주민이 선택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은 뒤에 해소됐다.



비리·부풀리기 없을 공공주도 “놓치면 안 돼”
국토부와 LH 등은 증산4구역에 4139가구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우선공급 1836가구, 일반분양 1059가구, 공공자가 622가구, 공공임대 622가구 등이다. 서울에서 추진하는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2726가구 건설을 추진했던 뉴타운 시절보다 사업 규모가 커졌다. 이 사업계획은 지구 여건 등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
박홍대 추진위원은 “서울시와 종·용적률 상향에 대한 협의가 끝나지 않아 가구 수는 아직 결정 나지 않았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이 6~7월 통과하면 11월에 구역 지정되고 2022년 상반기에는 시공사 선정이 마무리될 것 같다. 2022년 말이나 2023년 초부터 이주하고 2024년 착공해 2026년 말까지 입주하는 게 우리 계획이자 바람”이라고 말했다.
3080+ 대책의 법적 근거와 절차를 마련하기 위해 발의된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야당 반대에 부딪혀 처리가 지연됐다. 정부는 입법이 다소 미뤄지더라도 연내 지구 지정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법이 통과되는 즉시 요건을 갖춘 곳들은 예정지구로 지정하고 영향평가 등을 최대한 빨리 진행해 조속히 지구로 지정하겠다”며 “증산4구역은 이미 동의율 요건을 갖췄기 때문에 법이 시행되면 바로 예정지구로 지정하고 도시계획 심의와 행정절차 등을 거쳐 2021년 안에 지구로 지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은평구에 후보지가 많은데 증산4구역에서 공공 주도 사업이 모범적으로 진행되면 주거환경 개선을 바라는 다른 지역 주민에게도 영향을 미쳐 연쇄적으로 개발을 촉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른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증산4구역 주민들은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는 분위기라 한마음으로 뭉치고 있다”고 전했다.
박홍대 추진위원은 다른 후보지에 “공공이 주도하기 때문에 조합 비리나 시공사의 부풀리기가 없을 텐데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 재개발은 추진 주체의 평생직장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 보금자리를 만드는 게 목적이다. 정말 사심 없이 일할 계획이라면 이 사업을 놓치면 절대 안 된다”고 권했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

신속 인허가에 과감한 인센티브 개발이익 재투자로 부작용 완화
정부가 3차까지 발표한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후보지는 모두 38곳으로 4만 8700가구에 달하는 규모다. 이 가운데 예정지구 지정 요건인 토지 등 소유자 동의율 10%를 채운 곳은 8곳이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은 5월 18일 열린 주택공급기관 간담회에서 증산4구역에 이어 은평구 수색14구역도 지구 지정 요건인 동의율 3분의 2를 충족했다고 밝혔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계자는 “사업계획(안)을 마련해 주민에게 사업 내용과 효과 등을 상세히 설명하는 2단계 설명회를 5월 말부터 사업구역별로 진행할 예정”이라며 “2단계 설명회에 따라 동의율이 빠른 속도로 올라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은 낙후하고 저밀 개발된 역세권과 준공업지역, 저층주거지 등 도심을 고밀 개발해 신규 주택을 신속하게 공급하는 사업이다. 공공기관이 개발을 주도하는 대신 ▲용도지역 1단계 종 상향 ▲법적 상한 용적률의 120% 상향 적용 ▲기부채납 최소화 ▲건축규제 완화 등으로 주민이 자체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때보다 10~30%포인트 높은 수익률을 보장한다. 가장 큰 장점은 빠른 사업 추진이다. 정부는 조합총회나 관리처분인가 등 절차를 생략해 민간이라면 13년 이상 걸릴 재건축·재개발을 5년 이내로 단축할 것으로 예상한다.
토지 등 소유자에게 적정한 수익을 보장하고 남은 개발이익은 세입자 보호, 공공임대·공공자가 공급,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사업성 낮은 구역 등에 재투자한다. 정비사업은 도시계획·주거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성이 강한 사업이지만 소유자 중심의 조합 방식으로 개발이익이 사유화되면서 투자 대상으로 활용됐다. 규제를 완화하면 투기수요가 유입되지만 개발이익을 환수할 수단을 마련하지 못해 20년 동안 근본적인 공급확대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정부는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처럼 공공이 직접 시행하는 새로운 모델이 적용되면 투기 수요가 유입되는 것을 억제할 수 있다”며 “세입자·상인의 내몰림 등 기존 정비사업의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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