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걸린 ‘무색 투명 필름’ 개발 정부 덕에 일본 수출규제 뚫어”

2021.05.24 최신호 보기
▶코오롱인더스트리가 개발한 투명 PI필름인 CPI 필름│코오롱인더스트리

‘소부장 으뜸기업’ 코오롱인더스트리를 가다
“여기 이 기기에 돌돌 말아 걸려 있는 유리처럼 투명한 폴리이미드 필름 롤 제품 하나 가격이 웬만한 수입차 한 대 값에 맞먹는다. 우리가 디스플레이 패널 생산업체에 파는 큰 규격(1200m짜리 롤)으로 치면 서울의 아파트 한 채 값이다.”(송상민 코오롱인더스트리 CPI연구그룹장)
4월 27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서울식물원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코오롱원앤온리타워. 4층으로 올라가니 복도 양쪽으로 여러 실험 연구실이 들어서 있다. 코오롱 미래연구소다. 복도 안쪽 왼편에 자리 잡은 ‘CPI 연구소’는 코팅 필름 소재를 개발하고 품질을 평가하는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연구개발(R&D) 거점이다.
‘무색 투명 폴리이미드’(CPI) 필름은 화면을 접었다가 펴는 이른바 ‘폴더블 휴대전화·노트북’, ‘플렉시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용 패널’에 쓰이는 액정을 만들 때 반드시 필요한 고부가가치 핵심 산업 신소재다. 폴리이미드(PI) 필름은 1960년대 초부터 미국 듀퐁과 일본 가네카화학공업·우베흥산이 다양한 유색 제품을 대량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불소 처리를 통해 열 안정성과 강도 특성을 강화한 유색 폴리이미드(불화 폴리이미드·FPI) 필름은 내열성 고분자로 물성이 우수하지만 성형 편의성과 가공성은 낮은 편이다. 색깔이 없는 투명 디스플레이 액정에 사용하려면 CPI 필름이 최적이다.

CPI 필름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국산화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이 CPI 필름을 사실상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국산화한 업체다. 이 회사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소재로 CPI 필름에 주목하고 일찌감치 2006년에 연구개발에 뛰어들었다. 2016년에 CPI 필름 개발에 최종 성공한 뒤 2017년 말에 경북 구미에 생산 공장을 건설해 2019년 상반기부터 양산 체제에 들어섰다.
회사가 CPI 필름을 막 양산하기 시작한 무렵인 2019년 7월 느닷없이 일본 정부는 FPI 필름에 대해 우리나라로 수출하는 심사를 규제·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일본의 수출규제 3대 품목은 불화수소, 플라스마광원(EUV) 포토레지스트, FPI다.
이 FPI 필름을 거의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해온 우리 디스플레이 패널 업계(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 등)와 그 패널을 최종재로 사용하는 삼성전자·LG전자 등 폴더블 휴대전화·올레드 텔레비전 생산업체들은 큰 혼란에 빠져들었다.
당시 FPI 필름은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가 일본 생산업체와 미국 듀퐁에 의존하는 비중이 90%를 넘었다. 일본과 미국 기업이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첨단 신소재였다. CPI 필름은 그 후 우리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를 극복하고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지난 1년 6개월간 전개해온 ‘소부장 전략’으로 공급 안정화 성과를 이뤄낸 대표 품목이다.

▶2020년 4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이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공장을 방문해 투명 폴리이미드 필름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연합

“새로운 물질 만드는 데 14년 걸릴 줄이야”
코오롱인더스트리 실험실에 들어서니 입구 쪽 벽에 설치된 기기에서는 CPI 필름을 자동으로 20만 번 연속으로 반복해 접었다 펴는 폴딩 테스트가 진행 중이다. 폴더블 휴대전화에 장착되는 필름이다. 그 옆에는 또 내구성 등을 점검하는 슬라이딩 및 롤링 테스트 기기가 자동으로 돌아가고 다른 한쪽에는 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화웨이·레노버 등 필름 수요 고객의 요청에 맞도록 온도·습도 등을 조절하고 테스트하는 기기가 가동되고 있었다.
“코오롱인더스트리에서 CPI 필름을 개발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2006년에 정식 출범했다. 연구원 30여 명으로 시작했는데 실험실 단계를 거쳐 연구개발 성과를 내고 그 뒤 2013년에 본격적인 투자에 나서는 전형적인 연구개발 과정을 밟아온 드문 사례다.”
송 그룹장의 말이다. 연구개발에 나선 뒤 시운전을 끝내고 양산 투자를 결정하고 수요 기업인 디스플레이 업체에 필름 제품을 판매하기까지 무려 14년이 걸렸다. 수십 가지 원료를 섞고 반응시켜 큰 고분자물질을 만들어내는 원료의 적절한 배합 비율을 찾아내야 하고 투명하면서도 물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최적의 물질을 얻어내기 위해 숱한 실험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없는 세계 1등을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향후 디스플레이 방식에서 색깔 없는 투명 필름이 새 흐름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다만 새로운 물질을 잘 디자인해 만들어내는 데 14년이나 걸릴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공장 전경│ 코오롱인더스트리

정부 도움으로 일본 수출규제 극복
1960년대 초에 듀퐁이 FPI를 개발해 그동안 약 55년간 전 세계 디스플레이 패널 시장을 장악했고 특히 일본 업체도 경쟁력을 뽐냈다. 이에 후발업체인 코오롱인더스트리와 SKC가 기존에 있던 물질이나 제품을 응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예 세상에 없던 ‘색깔 없는’ 무색 투명 필름을 해보자고 시도에 나선 것이다.
지금은 코오롱인더스트리가 국산화 개발에 성공한 CPI로 대체되고 있다. 경북 구미에 있는 코오롱 공장의 CPI 필름 생산능력은 연산 100만㎡에 이른다. 수요 기업은 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레노버 등으로 이 필름을 받아 코딩하고 잘라내는 후공정 처리를 거쳐 패널을 만든다. 일본은 카네기와 스미토모화학이 현재 CPI 필름 개발을 본격화하고 있지만 아직 양산 제품은 내놓지 못하고 있고 중국 업체들도 4~5년 전부터 뛰어들었으나 품질 좋은 물건은 나오지 않고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의 CPI 필름 국산화는 소재·부품·장비 국책 기술연구과제 분야의 대표적인 성공모델이다. 지난 14년 연구개발 과정에서 정부 예산 수백억 원이 수년간 지속 투입됐다.
“값비싼 원료를 사용해야 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인데 정부 지원으로 버틸 수 있었고 제품 성능 향상에도 큰 도움을 받았다.”
정부 예산뿐만 아니다. CPI 필름 양산 판매를 시작하려던 시점에 터진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사태 직후 정부가 대대적인 ‘소부장 강국 전략’을 마련하면서 국내 수요 기업과 제품 협력·연대가 신속하게 이뤄졌다.
“필름 양산 설비 시운전을 막 끝낸 직후에 수요처인 디스플레이 업체와 제품의 기술적 성능 평가 등 테스트 작업을 거치게 된다. 디스플레이 업체로서는 기존 공정에 이 새 제품을 대체 투입하면 공정 전체를 개편해야 하고 금전적·시간적 비용이 들기 때문에 일단 주저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런데 당시에 정부가 수요 기업과 공급업체 사이에 개입해 테스트 평가 절차를 신속하게 완료하도록 도왔고 수요업체로서도 당시 일본의 수출규제 분위기 속에 서둘러 국산 제품으로 대체했다.”
2021년 1월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소재·부품·장비 으뜸기업’으로 선정됐다.

조계완 기자

소부장 육성·지원 정책에 “해보니 된다” 자신감 얻어
정부는 2019년 7월 일본 수출규제를 기점으로 1년 6개월간 긴밀한 민관 협력을 통해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와 공급망 안정화를 이뤘다. ‘소부장 경쟁력강화 대책’(2019년 8월) 및 ‘소부장 2.0전략’(2020년 7월)을 수립해 정책·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2021년은 소부장 경쟁력 강화 대책 3년 차로 ‘소부장산업 생태계의 연대와 협력’ 정책을 시행 중이다.
정부는 일본을 극복한다는 각오로 대일 의존도가 높은 소재·부품의 국산화에 나섰고 성과는 뚜렷하다. 일본의 수출규제 3대 핵심 품목 모두 정부의 신속한 기술개발 지원과 기업의 대체 소재 투입 등을 통해 국내 생산을 빠르게 확충하고 수급 여건도 안정적으로 유지 중이다.
대일본 수입 100대 품목은 수입처를 유럽연합(EU)·미국 등으로 다변화하고 품목별로 평균적인 재고 수준을 기존 대비 두 배 이상으로 확충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338개+α 품목’을 선정해 7000여 개 기업에 대해 수급 동향을 상시 점검하면서 수급 애로를 해소해주고 있다. 일부 품목에서는 시도조차 어려웠던 벽에 과감히 도전해 성공했고 ‘해보니 된다’라는 자신감도 얻었다.
2020년 4월부터는 ‘소재·부품·장비 특별법’이 시행돼 기술개발, 기반 구축, 자금 등을 지원하고 있다. 2021년에 소부장 경쟁력 강화 특별회계에 투입된 예산은 2020년보다 두 배가량 많은 2조 1000억 원이다. 범부처 기구인 소부장 경쟁력강화위원회는 기업 간 협력모델을 발굴·추진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월 ‘소재·부품·장비 으뜸기업’ 22곳(반도체 3곳, 디스플레이 4곳, 전기전자 4곳, 자동차 3곳, 화학 1곳 등)을 선정해 총 4000억 원을 지원하고 있다. 2024년까지 총 100개의 소부장 으뜸기업을 뽑아 세계적 기업으로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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