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따라 멋 따라 눈부신 우리 옷

2021.05.10 최신호 보기
▶1950년대 말 여성 사진. 배상하(1922~1965) | 대구사진문화연구소

한복 변천사
우리 고유의  한복. 시대가 흐르면서 한복의 형태도 조금씩 달라졌다. 하지만 치마, 저고리, 바지라는 한복의 기본 구성은 오랫동안 변치 않고 지속되고 있다. 윗옷과 아래옷으로 나뉜 점이 일본의 기모노나 중국의 한푸 등 다른 국가의 전통 복식과 다른 특징이다. 이 같은 한복의 기본 구조는 멀리 고구려시대의 고분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복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각 시대의 사회적 특성에 따라서 독특한 양식을 가지고 변화와 발전을 거듭했다. 현재도 한복은 계속해서 변화 중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일부 변형되긴 했지만 한복은 치마, 저고리, 바지의 기본 구성을 그대로 유지해온 우리 고유의 문화이자 역사다. 개화기 이후부터 우리 옷의 변화를 살펴봤다.

▶1910년 즈음 여성들이 장옷 대신 우산을 쓰기 시작했다(왼쪽). 독립만세운동 당시 입었던 여학생 한복 교복(가운데). 1930년대 고름대신 단추나 브로치를, 버선 대신 양말과 구두를 신기 시작했다(오른쪽). │국립대구박물관

1900~1920년대: 간소화와 어깨허리
1900년대 들어 한복은 간소하게 변한다. 저고리의 길이는 짧아지고 겨드랑이 아래의 선은 길어졌으며 깃머리는 둥글게 변했다. 한복의 형태 변화와 함께 흰색 옷을 금지하고 색깔 있는 옷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의복 간소화는 이화학당의 외국인 교사들이 먼저 시도했다. 가슴을 조여 입어야 하는 띠허리 대신 활동이 자유로운 어깨허리를 치마에 달았고 이후 독립만세운동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확산했다.
“만세운동 때 치마가 흘러내리지 않게 하기 위해, 혹시 일본 경찰에 잡혀 모욕당할지 모르니 치마허리 대신 반드시 어깨허리를 만들어 준비해야 해.” 이때를 기억하는 대구 신명여학교 졸업생 김학진 여사의 회고다. 만세를 부를 때 활동성을 높이고 옷고름이 풀렸을 때를 대비하기 위한 이 아이디어는 근대 한복 역사에서 중요한 기점이 됐다.
또 여성들이 외출할 때 의무처럼 머리에 덮어썼던 장옷을 벗을 때가 왔다. 1910년 즈음 장옷 대신 우산을 쓰기 시작했다. 우산이나 양산은 처음에는 얼굴을 보이지 않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했지만 점차 신여성의 상징으로 보편화됐다.

▶어깨허리 치마│의료선교박물관

1930~1940년대: 새 소재와 실용화
신문물의 유입과 생각의 전환은 의복의 간소화와 더불어 실용화 경향을 이어갔다. 저고리 길이가 허리선까지 길어지고 품도 여유 있게 커졌으며 소매의 진동과 소매통이 둥글고 넓게 변화하면서 편안해졌다. 고름이 짧아지거나 단추나 브로치가 고름을 대체하기도 했다. 치마는 하나의 통으로 만들었고 길이가 짧아졌다. 또 버선 대신 양말과 구두를 신기 시작했다. 한복의 변화는 옷감 소재에도 적용됐다. 주로 면, 마, 견직물을 사용하다가 조젯과 같은 양장지로 저고리와 치마를 만들었고 모슬린이나 서지 같은 모직물과 인견 등 수입 직물을 즐겨 사용하면서 유행을 이끌어갔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신여성과 모던 걸이 있었다. 신여성은 1920~1930년대 신교육을 받은 젊은 여성을 뜻한다. 이들은 흔히 단발머리와 짧은 통치마라는 파격적인 외형으로 무장했다. 긴 머리가 갖는 예속적인 삶을 싹둑 잘라내는 결단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모단(毛短, 毛斷) 걸, 모던 걸(Modern Girl)이라고도 불렀다. 당시에는 서구 대중문화에 빠진 허영된 존재로 묘사됐지만 한복에 구두를 신고 핸드백을 드는 변화의 흐름은 피할 수 없었다.

▶1950~1970년대는 패턴이 있는 직물이나 레이스 등의 합성 직물을 사용한 한복이 많았다(왼쪽). 6·25전쟁 때 크게 유행했던 벨벳 한복. 고무신도 대중화됐다(가운데). 저고리 고름을 리본형으로 만든 아리랑 치마저고리(오른쪽) | 국립대구박물관

▶핸드백 | 국립민속박물관

1950~1960년대: 서양 스타일과 브로치
서구 문물의 영향으로 한복에 서양 스타일이 더해졌다. 길어졌던 저고리의 길이가 조금 짧아졌고 앞뒤 길이에 차이를 뒀다. 저고리의 도련과 소매의 곡선은 더 둥글게 변화했고 깃 너비도 넓어졌다. 저고리의 고름은 리본처럼 묶기도 하고 브로치로 여밈을 대신했다. 신발도 전통적인 운혜 외에 구두를 즐겨 신기 시작했다. 특히 고무신은 가죽신보다 경제적이고 편리해 대중화됐다. 한복 주머니 대신 들기 시작한 가방은 1960년대에 이르러 클러치백(어깨끈이나 손잡이가 없는 작은 손가방)의 형태로 유행했다.
6·25전쟁 당시에는 비로드(벨벳) 한복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는 시대의 어려움 속에서도 사라져버릴 수 없는 멋과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었다. 이 세 글자 속에 담긴 여성의 잠재적 욕망은 1950년대 벨벳 밀수 기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고급 벨벳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음에도 남색과 자줏빛 비로드로 만든 치마와 저고리를 소유하는 게 큰 자랑거리였다. 결혼식은 신식 스타일로 변했지만 혼례복은 한복을 입었다. 웨딩 한복은 1950~1960년대 전성기를 맞았다. 1970년대 초부터 예식장 문화가 발달하면서 서양식 웨딩드레스가 대체하게 된다.

▶레이스 저고리(위), 비로드 저고리(아래) | 국립대구박물관, 경운박물관

▶아리랑 저고리 | 국립민속박물관

1970년대: 나들이용 격식 맞춰 장식
1970년대부터 한복의 예복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일상생활에서 한복을 입는 여성이 점점 줄었다. 한복은 나들이 갈 때나 격식을 갖추는 자리에서만 입었고 저고리에 브로치를 하고 같은 옷감으로 저고리와 치마를 맞춘 한복을 선호했다. 실용성보다 장식적 성격이 강해져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고 고름은 넓고 길어졌다. 치마 길이는 길어지고 폭은 에이라인(알파벳 A자 모양을 닮은 실루엣으로 상부가 좁고 하단으로 내려갈수록 퍼지는 형)에 가까워졌다. 이때 유행한 아리랑 치마저고리는 저고리 고름을 리본형으로 만들고 서양의 드레스처럼 새롭게 디자인한 것이다.

▶일상에서 입기 편한 소재와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생활한복│질경이우리옷

1980~1990년대: 생활한복의 등장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르면서 우리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겨났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전개된 ‘우리옷 입기 운동’에서 출발한 (주)질경이우리옷이 일상복으로 입기 편한 한복을 내놨다. 1990년대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란 사회적 분위기는 수많은 개량 한복 브랜드들을 출현시켰고 명칭 또한 생활한복으로 바뀌었다. 생활한복의 산업화가 열리면서 다양한 가격대와 스타일을 선보이며 패션아이템으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초기 생활한복에서 남성복은 저고리와 바지, 여성복은 저고리와 치마 등 전통 한복의 기본 구조와 양식을 유지하면서 깃, 고름, 소매 등 복식의 각 부분에 변화를 줬다. 저고리를 여미기 위해 사용된 옷고름이나 대님 대신 단추, 스냅(똑딱단추), 지퍼 등으로 교체하거나 치마허리 대신 스커트 형식으로 디자인된 치마 등도 나타났다.

▶1900년대가 배경인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속 한복| tvN

▶방탄소년단 지민이 ‘2018 멜론 뮤직어워드’에서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추고 있는 모습 | 유튜브

2000년대 이후: K-패션의 중심으로
21세기를 전후해 생활한복도 디자인이 점차 캐주얼화되고 있으며 현대적 감각을 살린 생활한복이 계속 나오고 있다. 저고리는 볼레로 형태로, 마고자는 재킷 형태로 재해석되는가 하면 양장이나 양복 소재들도 생활한복에 사용된다. 다양해진 생활한복은 2030 젊은 세대들에게 새로운 유형의 패션 품목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 K-팝 가수들과 K-무비, K-드라마에서 선보인 한복은 국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심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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