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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괴로운 이들이 찾아오는 곳이라 그런지 정신과 상담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어요?”라고 물으면 “행복해지고 싶어요!”라는 대답을 가장 많이 듣는다. “무엇 때문에 괴로운 거냐?”라는 질문에도 “행복하지 않아서요”라는 답이 많다. 이런 말들을 주고받다 보면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인가요?”라고 묻게 된다. 나의 환자들은 “우울증이 나아야 행복해진다, 불안이 없어져야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당연하다. 우울장애와 불안장애를 끌어안고 살기는 어려우니 제대로 진료받고 관리해서 이런 병이 나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 하지만 증상이 없어진다고 저절로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게다가 정상적인 우울과 불안까지 없애버릴 수는 없다. 이별하면 슬픈 게 정상이고 시험을 앞둔 수험생은 초조할 수밖에 없다. 우리 인간은 아무 이유 없이 울적한 기분에 빠져들기도 한다. 새로운 자극이 없으면 공허해지는 게 당연하다. 부정적 감정 없이 긍정적 감정만 느끼고 사는 게 정상일 리 없는데도 이런 상태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을 종종 본다. 이런 상태가 바로 행복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핀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다. 2017~2019년 행복도 조사에서 연속 1등을 차지했다. 그러면 이 나라 국민은 매일매일 기분이 좋을까? 매 순간을 짜릿하게 느끼며 살까? 그렇지 않다. 가장 행복한 나라지만 우울증에 시달리는 환자도 많다.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니라 우울증 유병률 세계 랭킹 9위다(2017년 세계보건기구). 다양한 긍정적 감정에 대해 “어제 그것을 경험했나요?”라는 질문을 토대로 조사기관 갤럽은 138개국의 긍정정서경험 점수(Positive Experience Index Score)를 산출했다. 그 결과 파라과이가 1등, 파나마와 과테말라가 각각 2등, 3등이었다. 핀란드는 28등을 기록했다. 행복도 1위 국가 국민이라면 하루하루가 즐거워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것이다.
행복과 긍정적 감정을 동일시하면 안 된다. 우울증이 있다고 “나는 불행한 사람이야!”라고 하거나 정상적인 우울을 느끼는 자신을 향해 “난 왜 행복하지 않지?”라며 비정상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
행복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복합적 개념이다. 행복도 조사에는 국민소득과 사회적 지지체계, 건강 수명, 자기 삶을 결정할 수 있다는 자유, 관용성, 그리고 사회의 부정부패 정도까지 포함된다. 개인의 정신 승리만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유명인이나 멘토(지도자)라는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해라. 행복해야 잘사는 것이다”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몰아가면 사람들은 더 불행해진다. 어찌할 수 없는 불운이 닥쳤을 때 우리를 더 큰 고통에 빠뜨린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자신이 잘못 살고 있다는 죄책감마저 느끼게 된다. 행복하면 좋지만 삶이 언제나 행복일 수는 없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을 모두 끌어 담는 단 하나의 기준은 없다. 5000만 명이 모여 사는 대한민국에는 5000만 가지의 서로 다른 행복이 있으니 “저 사람은 나보다 더 행복해 보여!”라는 환상에 속아서는 안 된다.
김병수 의사_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몇 권의 책을 쓴 저자.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했고, 지금은 교대역 작은 의원에서 사람들의 상처 난 마음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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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