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에 자리한 유엔본부에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회의 중인 서창록 교수│서창록
UN 인권위원이 말하는 ‘코로나 진단 일기’
국제연합(UN) 인권이사회 자문위원으로 수년간 일하다 2020년 한국인 최초로 UN 시민적·정치적권리위원회(자유권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된 서창록 고려대 교수. 그는 2020년 3월 UN 체제학회 참여차 미국으로 출국했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 그는 코로나19 진단 경험이 인권 전문가로서, 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바꿨다고 말한다. 그의 코로나19 진단 일기는 그동안 우리가 잊어버리고 지워버린 인간의 얼굴과 권리를 돌아보게 한다.
서창록 교수가 펴낸 <나는 감염되었다>는 우리가 바이러스를 잡는 데만 몰두하고 감염자들의 동선을 집요하게 쫓느라 놓쳐버린 ‘인간다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코로나19가 시작되던 당시 유엔본부가 있는 미국 뉴욕과 스위스 제네바, 카타르, 다시 미국으로 이동한다. 이동 경로 중에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멸시를 받거나 타인을 경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느낀 인간 본성은 무엇이었을까?
▶서창록 교수가 펴낸 <나는 감염되었다> 표지│문학동네
확실한 근거도 없이 타인을 무시하고 차별
“저는 2020년 2월 UN 인권이사회 자문회의 일로 제네바를 방문했습니다. 당시에는 (코로나19가) 우한 바이러스, 중국 바이러스라고 불릴 때고 우리나라에는 아주 소수의 환자가 있었어요. 대부분 나라에는 환자가 전혀 없던 시절입니다. 자유권위원회에 중국 위원이 있었는데요. 저는 그 위원이 참석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참석한 그에게 여러 질문이 쏟아졌죠. ‘너는 괜찮냐’ ‘가족들은 어떠냐’는 등 중국에 대해 우려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내면에는 다 중국 위원을 두려워하는 심정을 볼 수 있었어요. 그래서 ‘인권 감수성이 높다는 인권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데도 인간의 본성은 다 똑같구나’라는 생각을 했지요.”
중국 위원에게 두려움을 느낀 서 교수는 서울로 귀국하는 과정에서 카타르를 방문한다. 당시 카타르는 중국인을 통제하고 있었는데 한국인인 서 교수마저 갑작스럽게 입국을 불허당한다. “제네바에서 넘어왔고 UN에서 일하고 있다”고 아무리 호소해도 그 순간 그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퍼뜨릴지 모르는 검은 머리 아시아 사람 1인일 뿐이었다.
“입국에 문제가 없다고 해서 탑승했는데 이민국에서 입국을 불허한 거죠. 그날 바로 정책이 바뀌었다는 것인데 충분한 설명도 없이 바로 격리시켰어요. 온갖 멸시와 차별을 당해 고생했는데 ‘한국에 들어오는 난민의 신세가 그런 것이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이후 귀국했다가 3월 다시 뉴욕을 방문합니다. 뉴욕에 도착한 뒤 얼마 안 돼 뉴욕에도 갑자기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뉴욕과 뉴저지가 봉쇄됩니다. 그럼에도 그때까지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이 거의 없었고 낮에는 사람들이 다 자유롭게 돌아다녔습니다. 그때 음식을 사러 식품점에 갔다가 자동차 접촉 사고가 나서 동유럽에서 온 젊은 친구와 한참 동안 실랑이했는데 그 친구한테 코로나19를 옮은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병실에서 저도 확실한 근거 없이 사람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20년 3월 다시 UN 체제학회 참여차 뉴욕에 간 그는 ‘어디선가’ 코로나19에 감염되고 만다. 아직 미국에는 코로나19 검사와 방역수칙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때였다.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이 있다는 뉴욕 현지 의사의 진단과 귀국 권고에 그는 미국에 계신 부모조차 만나지 않고 마스크를 쓴 채 서둘러 귀국해 곧장 국내 선별진료소로 향한다. 그리고 한 번도 상상해보지도 겪어보지도 않은 ‘환자의 삶’이 시작됐다.
▶서창록 교수가 인권이사회 진정실무그룹 의장을 맡았을 당시 자문위 의장과 함께 찍은 사진│서창록
24시간 감시 카메라에 감시되는 음압병실
환자가 된 순간부터 우리나라 인권과 외교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던 서 교수의 세계는 급변한다. 그동안 머리로 연구하고 잘 안다고 믿어왔던 약자와 소수자의 삶, 인권의 개념은 산산이 부서지고 존엄성과 인격이 있는 한 인간이 아닌 ‘보균자’로 치부되고 관리되기 시작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 속에서 그는 때론 분개하고 때론 체념하며 안간힘을 다해 버텨낸다. 그를 완전히 무너뜨리려는 정신질환과도 맞서 싸운다. 벼락을 맞은 듯이 환자가 됐지만 그를 둘러싸고 기묘한 소문이 돈다. 비행기에서 마스크도 쓰지 않고 침을 튀겨가며 떠들고 음식물을 먹으며 조심성 없는 태도로 방만하게 굴었다는 소문이었다.
“초창기 가장 큰 문제는 이 바이러스의 불확실성이었습니다. 서로 겁이 나는 상태에서 자기방어를 하려다 보니 그런 반응들이 나왔던 거 같은데요. 한편으로는 이해됩니다. 다만 피해자 입장이 돼보니 피해자를 공감해주는 태도가 우리에게 너무 부족하고 이것이 우리 사회 전체의 건전성과 발전을 위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비행기에서 마스크를 한 번도 벗지 않고 잠만 잤는데도 근거 없는 소문은 환자에게 매우 힘들죠. 또 저를 바이러스에 감염된 피해자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를 해외에서 가지고 온 ‘나쁜 바이러스’로 인식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환자가 돼 신상 정보가 털리는 것부터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까지 힘든 일이었습니다.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자기 보호를 위해 경계하는 것과 그러한 행동이 타인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음압병실에서 그는 고립감을 느낀다. 견딜 수 없는 어지럼증과 통증, 구토감이 엄습한다. 정말이지 죽을 것 같아서 ‘타이레놀’ 딱 한 알만 먹으면 살겠다는 생각으로 가방 속 오래된 ‘타이레놀’ 한 알을 손을 떨면서 꺼내지만 그때 병실 어디선가 찢어지는 듯한 확성기 소리가 들린다. “환자분! 그거 드시면 안 돼요!”
음압병실은 24시간 감시 카메라에 의해 감시되고 있었던 것이다. 서 교수는 ‘안심밴드’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달긴 했지만 범죄자에게 채우는 전자팔찌와 사실상 다르지 않은 ‘코로나 전용 전자팔찌’의 도입 과정에서 절규하기도 한다.
“음압병실의 24시간 감시는 사실 필요하고 입원할 때 그에 대한 설명도 해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계속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그 자체를 비판한 것은 아니죠.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우리 사회에서 개인정보와 사생활에 대한 감수성이 많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부분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어린이집에 감시 카메라를 다는 것은 어린이의 안전을 위해서이지만 선생님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니까요. 전자팔찌, 손목밴드, 안심밴드 등 다양한 명칭이 있지만 저는 병실에서 그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 정책이 제안됐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더 이해가 안 되는 점은 국민의 대부분이 그것에 찬성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국민 다수가 찬성한다고 해도 인권적 차원에서 문제가 되는 정책은 차단되는 사회적 장치가 필요하지요. 다행히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입장 표명을 하고 그나마 정책이 완화돼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데이터에 의한 통제와 감시 막아야
최근 서울시에서 외국인 근로자들만 의무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한다는 행정명령을 고지했다가 거두어들이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서 교수는 이것도 비슷한 경우라고 말했다. “입장을 바꿔 외국인들이 어떤 심정일지에 대한 생각 없이 방역만을 생각한 정책인데요. 만약 다른 국가에서 우리나라 국민만 코로나19 검사를 의무화한다고 하면 우리 심정이 어떻겠어요. 그나마 그에 대한 비판이 일고 결국 철회했다는 것은 사회에 자정 기능이 있다는 얘기라 다행입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우리의 미래는 지금의 결정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인간 존엄성이 훼손되는 미래를 원하는가. 범죄자도 아닌데 모두가 전자팔찌를 차고 다니는 미래를 원하는가.”(110쪽)
서 교수가 원하는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에 폐쇄회로TV(CCTV)가 설치된 것을 보면 범죄를 예방하고 안전을 보장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개인정보보호가 잘 안 된다고 볼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우리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데요. 다른 한편으로는 그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질 때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렇게 흘러간 정보를 갖고 무서운 통제와 감시를 할 수 있거든요. 디지털 시대에는 데이터의 축적과 전달이 더욱 중요한 일이고 따라서 개인정보에 대한 민감성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UN 인권이사회에서 지난 몇 년간 ‘디지털 기술과 인권’에 대한 연구를 해왔는데요. 그 데이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정부이든 민간기업이든)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데이터에 의해 우리의 행동이 통제되고 자기결정권을 잃게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진다는 것이지요.”
코로나19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동시에 가장 사소하고 소중한 우리의 일상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사람들이 대유행으로 파괴된 일상으로 인한 분노를 엉뚱한 곳에 돌리곤 한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코로나19와 그 후유증으로부터 몸과 마음을 회복했으나 아직 스스로 완치됐다고 말하진 않는다. 여전히 코로나19와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코로나19와 관련된 이들에 대한 낙인과 혐오도 끝나지 않았다.
박유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