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에서 서인화 국악연구실장이 국악의 세계화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개원 70주년 국립국악원 서인화 국악연구실장 인터뷰
2020년 한 국악밴드가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판소리 보컬 4명과 드럼 1명, 베이스 2명 등 독특한 구성의 7인조밴드 ‘이날치’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이 부른 수궁가의 한 대목 ‘범 내려온다’는 세계인의 이목을 잡았다. ‘범 내려온다’가 실린 한국관광공사의 홍보 영상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는 유튜브에서만 3억 뷰, 누리꾼들의 모방댄스까지 포함하면 수십 억 뷰에 달했고 국악을 ‘조선의 팝’으로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날치가 주말드라마의 주제가(OST)도 맡는 등 인기를 끌면서 보전 대상으로만 여겼던 국악이 일반인에게 친숙한 음악이 됐다. 2021년은 ‘국악의 종가’ 국립국악원이 개원 70주년을 맞는 해다. 3월30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에서 서인화 국악연구실장을 만나 국립국악원의 앞으로 역할 등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국립남도국악원의 토요상설공연 '국악이 좋다' 장면
서인화 실장은 “이날치의 인기는 최신 트렌드와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한다는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에 크게 어필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며 “정형화된 형식에서 벗어나 어이없지만 재미있는 콘텐츠를 칭하는 이른바 B급 감성, 중독성 있는 비트에 민족 고유의 정체성을 담고 있지만 신세대에는 이색적으로 들리는 판소리의 음색을 담은 것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국악의 퓨전화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60년대부터 국악의 현대화가 모색됐고 국악에 화성을 입히는 등 서양음악을 흉내내는 시도도 있었다. 서 실장은 “이날치는 판소리의 선율에 비트만 드럼·베이스를 추가해 상대적으로 선율의 왜곡이 없고 음악적으로 불편함이 없다”고 평했다. 국악이 익숙한 사람에게는 식상할 수 있지만 서양음악에 익숙한 젊은층에는 오히려 어떤 음악보다 이색적으로 비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서인화 실장은 “오래 전부터 국악은 ‘블루오션’(경쟁없는 시장)이라는 말을 했는데 요즘은 더욱 ‘오션’도 넓어지고 ‘블루’도 진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립민속국악원의 어린이들을 위한 국악나들이 ‘이야기보따리’│국립국악원
코로나19 충격에도 국악 관심은 늘어
그는 이와 함께 “이날치의 인기가 국립국악원이 잘해서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동안 대중음악의 감성 안에 국악이 녹아들 수 있도록 국악원이 해왔던 노력이 어느 정도 보탬은 됐을 것”이라고 자평했다.
2020년 공연업계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국악원 역시 정부의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자체 공연들이 취소된 경우도 많았고 상당수 공연이 무관중·비대면으로 열렸다. 오프라인 공연 54회, 무관중 공연 113회 등 총 167회 공연에 그쳤다. 연간 공연횟수가 평균 250~300회인 점을 감안하면 평년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든 셈이다.
하지만 공연에 노출된 사람은 늘었다고 분석했다. 2019년 공연 관람객이 3개 소속 국악원까지 포함해 20만 명이 채 안됐다면 2020년 온라인 공연 관람은 100만 뷰에 이른다. 서 실장은 “100만 뷰가 영상 전부를 관람한 것은 아니겠지만 공연을 접한 사람들은 오히려 늘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2007년 시작한 e국악아카데미를 활성화해 방문자수가 급증했는데 특히 2020년 4월 한달 동안은 예년 7500명에서 3만 5000명으로 370%(2만 7500명)가 늘었다. 토요상설공연의 경우 2020년 한국어학당 등의 단체관람은 빠졌지만 30대 개인들의 구매는 많이 늘었다. 20여 년간 유지되고 있는 토요상설공연은 국악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충실히 보여주기 위해 전통의 원형과 그에 바탕을 두고 새롭게 창작된 곡들을 엄선해 무대에 올리고 있다.
서 실장은 “한때 ‘국악원 공연은 무료라도 안본다’는 사람이 있었다면 요즘은 국악원 공연의 90%가 유료관객으로 운영된다”며 “국악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늘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악원 공연의 나머지 10%는 소외계층 나눔이다.
서 실장은 “방탄소년단 슈가의 ‘대취타’ 출연 이후 국립국악원의 대취타 영상 조회수도 100만 뷰에 도달했다. 이날치와 방탄소년단 등 국악을 소재로 한 대중음악이나 퓨전그룹들의 활동이 국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이날치의 인기 이후 국립국악원 공연은 왜 재미없느냐는 말이 나올까 걱정도 했는데 다행이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반응이었다”고 말했다.
“젊은층에 공감 코드 심는 일이 중요”
서 실장은 2020년 8월 국악박물관에서 북한음악전시회를 열었지만 코로나19 탓에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토로했다. 남북교류사업은 국립국악원의 주요활동 중 하나다. 남북한 당사자들이 직접 만나 교류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북한지역의 민속음악 역시 보존 및 연구대상이다. 1990년대부터 해외동포 국악연수로 해당지역이나 북한에서 성악·춤을 배운 사람들이 한국에서 보존해온 정통성 있는 음악과 춤을 배우도록하고 있다. 북한 공연예술자료는 지금까지 1만 5000점을 모았으며 2016년 특수자료실을 열어 대중에게 공개하고 있다.
국악원은 남북 한민족공연예술자료를 중심으로 재중동포·재일동포·고려인 등 세계 한민족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 공연예술 자료들까지 모아 한민족음악자료관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 서 실장은 “한민족음악자료관 건립 예산은 계속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지속적으로 해야할 사업”이라고 말했다.
어느 분야든 미래를 위해서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서 실장은 “우선 젊은층에 공감 코드를 심는 일이 중요하다”며 “민간예술인을 대상으로 영상콘텐츠 제작을 지원하는 ‘Gugak in(人)’과 창작공간 지원을 위한 ‘국악아티스트 LAP랩’ 등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재 발굴을 위해서는 1981년부터 매년 경연대회를 해왔다. 봄에는 ‘온나라 국악경연대회’, 가을에는 ‘온나라 전통춤 경연대회’ 등을 통해 인재를 발굴하고 있다.
국악으로 한국문화 위상 세계에 알릴 것
국립국악원은 70주년을 맞은 2021년 70년사를 제작해 지난 국악원의 활동을 성찰하고 국악의 미래를 조망했다. 가무악을 총망라한 국악사전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돼 2021년 10년 사업계획의 ‘멀티미디어 국악사전’ 편찬의 첫삽을 떴다.
이와 함께 “국악을 세계의 마당으로”라는 기치 아래 활발한 국제교류도 계획하고 있다. 대만전통예술센터와 상호 교류 공연, 한·러수교 30주년 기념 러시아 가브로쉬 축제 초청공연, 프랑스 한국문화원 재개관 기념 축하공연이 계획돼 있다.
서인화 실장은 “국립국악원은 국립중앙극장·국립무형유산원·아르코예술기록원 등 관련 단체들과 연계해 더 큰 성과를 올리는 일에 좀더 집중할 것”이라며 “민간 국악계와 함께 신한류의 자원인 국악의 정수를 가지고 한국문화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찬영 기자
▶국립국악원 전경
천년의 전통과 역사 계승하는 한국 전통 공연예술의 총본산
국립국악원은?
국립국악원은 한국 전통 공연예술의 총본산이다. 신라시대의 음성서, 고려시대의 대악서, 조선시대의 장악원 등으로 이어지는 전통을 계승해 천년의 전통과 역사를 가진 국립예술기관이다.
1951년 설립된 국립국악원은 민족음악의 보전과 창조적 전승, 교육과 연구를 통한 진흥, 국제교류를 통한 국가 이미지 제고 등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공연 활동뿐 아니라, 음향 영상기록화, 악보 발간, 고악보와 악서 영인 그리고 국악박물관 운영 및 자료 관리를 하고 있으며 2006년에는 악기연구소가 문을 열어 음원 개발 등 대국민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소속기관인 국립국악원에는 국악연구실·기획운영단과 함께 정악단·민속악단·무용단·창작악단 등 4개의 국악연주단이 있다. 정악단은 옛 왕조의 궁중음악 전통을 잇고 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제례악을 비롯해 수제천·영산회상 등 궁중 연례악과 풍류 음악 그리고 우리 고유의 창법과 양식을 지닌 성악곡 가곡·시조 등을 주로 연주한다. 민속악단은 우리 선조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민간의 음악을 전승한다.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판소리와 민요, 남사당놀이 등 16세기 이후 새로운 양식으로 등장한 민속 기악과 성악, 각종 연희들을 아우르는 연주단이다. 무용단은 궁중 춤은 물론 민속 춤, 창작에 이르기까지 전통춤의 보전과 보급뿐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춤을 개발하는 일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창작악단은 국악관현악, 실내악 등 전통에 기반을 둔 창작 국악의 개발과 연주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전통 예술을 재해석하고 새로 창작하며 동시대와 호흡하는 무대를 만들어간다.
국립국악원은 서울 서초동의 본원 외에도 전북 남원의 국립민속국악원, 전남 진도의 국립남도국악원, 부산광역시의 국립부산국악원 등의 지방 국악원을 운영하고 있다. 국립민속국악원은 판소리를 비롯해 민속음악 예술의 보존 및 전승을 목적으로 설립됐고 국립남도국악원은 진도 지역의 굿 음악, 상·장례 음악 등 향토 예술문화 자원을 발굴하고 지역 특성에 알맞은 교육과 공연 개발을 목적으로 한다. 국립부산국악원은 우리나라 동남권역의 전통문화 계승과 보급이 목적이다.
글·사진 이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