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사람이지만 가끔은 붓글씨를 쓴다. 주로 시화작품을 만들 때 쓰는 글씨다. 화선지에 짧은 시 한 편을 붓으로 쓰고 날짜와 내 이름을 적는다. 이름 아래에는 다른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도장을 찍는다. 이른바 낙관이다. 이게 다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이다.
그런데 이 낙관이라는 게 여간 신경 쓰이고 까다로운 게 아니다. 우선 도장 찍을 자리를 잘 잡아야 하고 도장의 방향이 똑발라야 하며 찍힌 도장의 인주 색깔이 선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도장에 인주를 먹일 때 세심하게 고르게 먹여야 한다. 도장을 찍을 때도 중앙 부분에 힘이 가도록 조심해서 눌러야 한다.
정작 그림을 잘 그리고 글씨를 제대로 써놓고도 낙관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시화작품이 망쳐지고 만다. 후회막급이다. 도장 하나가 지금까지의 수고를 헛것으로 돌리고 마는 것이다. 인생이든 세상일이든 처음이나 중간도 중요하지만 마지막 부분,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말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한번인가는 세 사람이 공동으로 시화작품을 만드는 기회가 있었다. 내가 쓴 글에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서예가가 나의 글을 써넣는 방식이었다. 순서대로 화가의 바탕 그림이 완성되어 그것을 서예가에게 보내어 나의 글을 적어넣도록 했다. 며칠 뒤에 서예가가 글씨를 써서 보내왔다. 작품 위에는 화가와 서예가와 내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이미 서예가의 이름 아래에는 낙관이 찍혀 있었다.
이제 내가 내 이름 아래에 낙관을 하고 화가에게 작품을 보내어 화가의 낙관을 받으면 되는 순서였다. 나는 제법 정성을 들여 그 낙관이란 걸 했다. 그런데 종이에서 도장을 떼었을 때 아차 하는 느낌이 왔다. 한쪽 구석이 흐릿하게 찍힌 거였다. 어쩌지? 망설임 끝에 한 번 더 도장에 인주를 고루 먹인 다음 그 위에 다시 낙관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것은 더욱 큰 잘못을 불러왔다. 아주 정확하게 자리를 맞추어 찍는다 싶게 도장을 찍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두 번 찍힌 도장이 미세하게 어긋나 번진 것처럼 보이고 말았다. 더욱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번 한 실수를 덮으려다가 더 큰 실수를 불러온 꼴이다. 여기서 나는 큰 교훈을 얻었다. 하려면 처음부터 잘해야 한다는 것! 결코 두 번은 없다는 것!
이 세상 모든 일에는 두 번이란 것이 없다. 모두가 한 번뿐인 것들이다. 연습으로 해보는 일이라 해도 그것은 한 번인 것으로 유일본인 것이다. 폴란드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쉼보르스카란 시인은 <두 번은 없다>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최성은 교수 번역). 정신 차려서 살 일이다.
나태주 시인_ 풀꽃 시인. 한국시인협회장. 100여 권의 문학 서적을 발간했으며 충남 공주에서 풀꽃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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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