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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당신의 하루를 영화처럼 감상해보세요.” 종종 환자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무의식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이 더 궁금하다. 값비싼 심리검사나 뇌 자기공명영상장치(MRI) 촬영보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잘 때까지의 모습을 당신이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영화처럼 보면서 이야기해주세요”라고 물었을 때 돌아오는 정보가 더 귀중하다.
“요즘은 기쁨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50대 주부가 들려준 일상은 이랬다. “일어나서 세수하고, 식구들 밥 챙겨주고, 설거지하고 집 정리하고 나면 침대에 다시 누워요. 그러다 점심때 일어나서 온라인 수업하는 둘째 아이 밥 챙겨주고 나서 다시 침대에 누워서 라디오를 틀어놔요. 늦은 오후에 장보러 잠깐 나갔다가 저녁 차려서 먹고, 잠시 남편이랑 텔레비전 같이 보다가 다시 침대로 돌아가서 누워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아, 이 사람, 참 우울하겠다’라는 느낌이 든다. “당신의 삶을 영화처럼 보면 어떤 느낌이 드세요”라고 물으니 그녀의 대답도 나의 감상과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기분 좋은 감정이 저절로 생길 거라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다. 흥미, 기쁨, 낙관, 사랑 같은 긍정적 정서는 의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좋아, 지금부터 기분 좋아질 거야!”라고 결심한다고 그렇게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일상의 자극들이 정서를 구축한다. 돈을 벌고, 사탕을 먹고, 기획서가 통과되고, 옛 추억이 떠오르는 사진을 보고, 연인이 해주는 “사랑해”라는 말을 들어야 ‘아, 기분 좋다’라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렇게 만들어진 긍정적 정서는 20분 정도 유지되다 사라져버린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좋은 기분을 20분 이상 지속될 수 있게 행동한다. 좋은 느낌을 전해주는 사람을 더 자주 보고, 기쁜 일을 더 자주 함으로써 긍정적 정서가 오래 지속되도록 만든다. 하지만 우울한 이들은 자신이 무엇에 기쁨을 느끼는지 잘 모른다. 막연히 아는 것도 실천을 안 한다. 기쁨이 찾아와도 마음껏 누리기보다는 그것을 억누른다.
인생에서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는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걸 알아내려고 우리는 새롭고 낯선 체험에 몸을 던져 넣는 것이리라. 그냥 생각만 하고 있어서는 알 수 없다. 마찰을 일으켜야 불꽃이 피어오르는 성냥처럼, 몸소 체험할 때 비로소 ‘아, 내가 좋아하는 게 바로 이거구나!’ 하고 깨닫는다.
‘나는 무엇에 기쁨을 느끼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그것을 쭉 적어보자.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것으로 착각하면서 살았다면 적을 게 별로 없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 적을수록 자아의 힘도 약해진다. 나라는 사람에 대한 감각도 흐려진다. 확신에 찬 선택도 못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헤맨다.
나라는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정체성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모여 특정한 방향성을 가질 때 형성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그것을 반복해서 실천할 때 자존감도 높아진다. 자아는 이렇게 완성된다.
김병수 의사_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몇 권의 책을 쓴 저자.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했고, 지금은 교대역 작은 의원에서 사람들의 상처 난 마음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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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