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7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방탄소년단(BTS)의 앨범 ‘맵 오브 더 솔: 페르소나’(MAP OF THE SOUL: PERSONA) 발매 글로벌 기자간담회가 열려 멤버들이 사진 취재에 응하고 있다.│한겨레
미국서 느끼는 신한류 위상
2020년 한국 대중문화의 가장 큰 소식은 역시 방탄소년단(BTS)의 미국 팝 시장 정복과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오스카상) 수상이었다. 음악과 영화에서 동시에 유사한 성과가 나왔고, 그것도 세계 대중문화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을 무대로 이뤄낸 결과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사건이다. 필자는 지난 13년 동안 미국 시애틀에 머물며 아시아를 넘어선 한류의 가파른 성장과 역동적인 변화 과정을 직접 지켜볼 수 있었다.
한때 ‘한류’에 대한 보도가 민족주의적 자긍심, 다시 말해 ‘국뽕’을 자극하는 ‘클릭유도용’ 기사 정도로 머물던 시대도 있던 게 사실이지만, 이제는 해외 언론이나 학계가 먼저 한류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분석을 내놓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최근 일본에서 등장한 ‘4차 한류’라는 표현도 그 구분법의 타당성을 떠나서 외부에서 규정하는 한류의 정체가 어떤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BTS의 미국 주류 시장 정복은 한류에서 가장 점유율이 큰 K-팝이 그동안 추구해온 하위문화적 특수성을 넘어 보편적인 인기로까지 확대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미국 현지에서 K-팝의 성공은 그동안 한정된 한국문화 팬덤의 소비를 중심으로 외연을 조금씩 넓혀가는 방식이었다. 필자가 처음 미국으로 건너갔던 2007년 K-팝은 한국계 미국인을 중심으로 아시안계 미국인들이 사실상 독점적으로 소비하거나 재생산한 문화였다. 한류라고는 하지만 적어도 북미에서 그 인기는 아시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이를테면 ‘아시안 덕후(마니아)’들의 하위문화에 가까웠던 것이다. 이 흐름에 큰 변화를 몰고 온 것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이었다. K-팝이 ‘아는 사람만 아는’ 음악에서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은 들어본’ 음악으로 그 위치가 격상했으며, <뉴욕타임스>와 같은 주류 로컬 매체들과 학계가 본격적으로 K-팝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도 이 이후다.
BTS 성공이 한국문화 전반의 관심으로 폭발
BTS는 또 한번의 근본적인 혁신을 몰고 왔다. K-팝이 흥미롭긴 하지만 그들만의 리그를 대표하는 독특한 장르일 뿐이라는 현지인들의 편견을 일정 부분 깨뜨린 것이다. BTS는 대중성(상업성)과 음악성이라는 각각의 영역을 대표하는 두 개 지표인 ‘빌보드차트’와 ‘그래미어워드’에 동시에 이름을 올렸다. 빌보드 핫100 차트에선 세 달 동안 무려 세 곡이 1위를 달성해 그 어느 비영어권 아티스트도 세우지 못한 기록을 세웠고, 보수단체로 이름이 높은 레코딩아카데미가 주관하는 그래미어워드에선 아시아권 아티스트로서는 처음으로 주류 대중음악 부문인 ‘팝’ 카테고리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B급문화나 하위문화라는 K-팝에 대한 기존 통념을 깨뜨린 결과라는 것이다. 평범한 미국인들에게 BTS의 음악은 일부 ‘덕후’만 그 매력을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니며, ‘강남스타일’처럼 코믹함과 B급정서를 통해 관심을 끄는 음악도 아니다. 미국 여느 팝 아티스트의 음악처럼 트렌디하고, 세련되며, 그 만듦새가 높은 음악으로서 K-팝이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미국 현지 대중은 BTS의 음악을 과거의 K-팝 성공 사례들과 명백히 구분하기 시작했다. BTS의 성공은 미국 내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 전반으로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 주요 대학의 한국어 및 한국문화 강좌는 가장 인기있는 수업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필자가 있었던 미국 워싱턴대학교는 최근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미국 대중음악’ 수업에 BTS의 음악을 교육과정에 넣기도 했다. 필자는 최근에 미국 공영방송
가 만든 팟캐스트 ‘팝 컬처 해피 아워’(Pop Culture Happy Hour)에 출연했는데, 이 프로그램에서 한국 대중음악을 다룬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대중문화 특수함 넘어 보편적 문화로 인정
영화에서는 <기생충>이 만든 변화도 어느 정도 유사한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영화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 내에 제법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했는데, 외국어 영화라는 한계 때문에 주류로서 지위는 감히 넘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K-팝이나 한류 드라마가 비교적 승승장구하는 가운데서도 영화의 한계는 분명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이 한계를 단 한 번에 극복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국면에서 <기생충>의 열풍은 다른 가능성을 나타낸다. 미국 대중은 영화를 보기 위해 로스앤젤레스(LA)의 코리아타운을 굳이 찾을 필요 없이 다양한 한국 영화를 넷플릭스 등의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즐기기 시작했다.
<기생충>이 가져온 충격이 봉준호 감독이 언급한 ‘1인치’ 자막의 장벽을 조금씩 무너뜨린 것이다. 아직 대세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류 영화나 드라마가 할리우드 대작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평가받고 있으며 그 추세는 가속화하고 있다. 재미동포 정이삭 감독이 연출한 <미나리>가 미국 현지 평단의 예외적인 호평 속에 오스카상 수상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이 같은 큰 흐름의 연장선이라고 봐야 한다. 한국 대중문화가 특수함을 넘어 보편적 문화로 인정받고 이것이 실제 대중적인 성공으로 입증되는 것, 그리고 이것이 다시 다른 한류 콘텐츠를 향한 폭발적인 관심으로 이어지는 것은 이전과 분명히 달라진 새로운 한류 흐름을 전망케 한다.
김영대 음악평론가이자 문화연구자_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K-팝에 대한 연구로 악학(Ethnomusicology)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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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