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경제 3법’ 의미와 향후 전망
2021년 주요 기업의 주주총회에서는 예년과는 크게 다른 풍경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정기국회에서 통과된, 이른바 ‘공정경제 3법’의 영향을 받는 첫 주총이기 때문이다. 공정경제 3법은 상법 일부개정안,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 금융복합기업집단 감독법(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등으로 구성된다. 공정경제 3법은 정부가 지향하는 ‘혁신적 포용국가’의 길로 가는 제도적 발판이며,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대선공약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2020년 12월 17일 열린 확대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공정경제 3법은 상생과 포용을 위한 힘찬 발걸음이자 선도형 경제를 향한 도약의 토대가 될 것”이라며, 경제계 인사들에게 “공정경제 3법이 기업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해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라는 긍정적 인식을 가져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건전하고 합리적인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 투자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다짐이다.
▶정경제 전략회의에서 인사말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청와대사진기자단
상법_ 기업의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 개선
상법 개정의 핵심은 다중대표소송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도입이다. 주식회사에서 주주는 회사의 이사(경영진)에 대해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법적 권리인 주주대표소송권을 보장받고 있다. 경영을 담당하는 이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 위반 행위를 하거나 임무를 게을리해 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주대표소송이다. 다중대표소송제도는 주주의 대표소송 대상을 출자회사(자회사)의 이사로까지 확대한 개념이다. 모회사는 자회사의 주주이므로 자회사 이사의 위법행위로 인한 자회사의 손해는 모회사의 손해가 되고, 이는 결국 모회사 이익까지 침해하므로 모회사 주주에게도 자회사 이사에 대한 대표소송권을 인정하자는 것이 도입 취지다.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면, 예컨대 삼성전자의 주주는 삼성전자가 50% 이상의 지분을 가진 자회사의 이사에게도 손해배상책임을 추궁할 법적 권리를 갖게 된다. 다만 소송을 제기하려면 일정 수 이상의 주식을 단독 또는 공동으로 보유해야 한다. 개정 상법은 일반 주식회사의 경우 총 발행주식의 1% 이상, 상장회사는 0.5% 이상의 주식을 6개월 이상 보유해야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의 이사를 상대로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더라도 손해배상액은 자회사에 귀속된다. 따라서 다중대표소송의 남발에 따른 자회사의 경영권 위축의 우려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다중대표소송제는 기업집단(재벌) 내 주력 회사의 소수주주에게 경영감독 대상 범위를 넓혀주는 법적 장치다. 이를 통해 자회사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대주주의 사익 추구 행위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정부는 기대한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는, 주총에서 감사위원회의 위원이 될 최소 1인 이상의 이사를 다른 이사들과 분리해 선임하는 절차를 밟도록 하는 것이다. 감사위원회는 ‘이사회 내의 이사회’로, 경영진의 활동과 회사의 주요 의결 사항을 감시하는 기구다. 상법의 상장회사 특례 규정에 따르면 자산총액 2조 원 이상의 상장회사는 적어도 사외이사 1명 이상이 참여하는 감사위원회를 반드시 구성해야 하며, 모든 감사위원의 선임과 해임은 주총 결의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대주주나 경영진으로부터 독립된 감사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실제 대기업 감사위원은 선임 단계에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주주가 계열사나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활용해 감사위원 선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기존 상법에 따르면,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회사는 감사위원 선임 때 먼저 사외이사를 선임한 뒤 그중에서 적어도 1명 이상을 다른 이사들과 분리해 감사위원회의 위원이 되는 이사로 선출해야 한다. 개정 상법은 이처럼 사외이사인 동시에 감사위원으로 활동할 이사를 주총에서 선임 또는 해임하는 투표를 할 때 모든 주주에게 일률적으로 3%를 초과하는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도록 하고 있다. 사외이사가 아닌 감사위원의 경우 최대주주는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합산해 3%, 일반주주는 3% 초과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한다.
개정 상법이 2021년 주총에서부터 적용되면, 사외이사가 아닌 감사위원은 외부 주주의 의사에 따라 선출될 여지가 커진다. 또 감사위원회의 독립적인 활동이 보장되면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건전성을 제고할 수 있다. 개정 상법은 감사위원 선임에 대한 주총 결의 요건도 완화했다. 지금까지는 ‘참석 주주 의결권의 과반수와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 1 이상’이 주총 결의 요건이었는데, 개정안에서는 전자투표제를 도입할 경우 참석 주주의 과반수 의결로 일원화했다.
공정거래법_ 공정경쟁질서에 대한 시대 요구 반영
공정거래법 개정은 대기업집단의 경제력 남용과 편법적인 지배력 확대를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먼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키고 중소기업의 공정한 경쟁 기반을 훼손하는 부당내부거래를 근절하기 위해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규제 대상을 확대한다. 재벌 계열사가 내부거래를 통해 총수와 그 가족에게 사적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는 기존 공정거래법에서도 규제하고 있다. 총수 일가가 보유한 지분이 상장회사의 경우 30% 이상, 비상장회사는 20% 이상일 경우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 대상이다.
하지만 재벌 계열사의 수가 갈수록 늘어나 규제 기준에 못 미치는 회사의 내부거래 비중이 커지면서 규제의 실효성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따라 개정 공정거래법은 규제 대상 기준을 상장·비상장 구분 없이 ‘총수 일가의 지분 20% 이상인 회사’로 일원화하고, 동시에 이들 회사가 50%를 초과하는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인 기업집단의 계열사 가운데 내부거래 공시 의무와 규제를 적용받는 회사 수는 2020년 5월 기준 210개다. 개정 공정법을 발효하면 대상 회사가 388개 더 늘어 모두 598개사에 이를 것으로 공정위는 예상한다.
새로 지주회사를 설립하거나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기업집단에 대해서는 자회사 및 손자회사의 의무 지분율 요건을 강화한다. 지주회사가 적은 자본으로 과도하게 지배력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고, 지주회사 체제에서 자회사 및 손자회사 지배에 대한 책임을 높이자는 취지다.
기존 공정거래법에서는 지주회사 자·손자회사에 대한 의무 지분율 요건이 상장회사는 20%, 비상장은 40%였다. 개정 공정거래법은 신규 설립 또는 전환된 지주회사이거나, 기존 지주회사가 자·손자회사를 신규 편입하는 경우 상장사와 비상장사 모두 10%포인트씩 의무 지분율 요건을 높였다.
재벌이 공익법인을 설립해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며 편법 경영권 세습에 활용하는 것도 일정한 제약이 가해진다.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소속된 공익법인은 보유한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이 개정 공정거래법에 담겼다. 다만 상장 계열사에 대해서는 외부 세력의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응할 수 있도록 특수관계인 지분과 합산해 15% 한도 안에서 공익법인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예외를 허용한다.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제한도 강화된다. 지금까지 금융·보험사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에 대한 의결권은 원칙적으로 금지되나 적대적 인수·합병(M&A)방어 등 일부 필요한 경우에 한해 의결권이 예외적으로 인정되었다. 하지만 개정법은 예외적으로 인정되던 사유 가운데 적대적 M&A와 무관한 계열사 간 합병 및 영업 양도에 대한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행사를 금지한다. 재벌이 금융·보험사의 고객 자산을 활용해 편법적인 지배력 확대에 악용하는 여지를 줄이자는 취지다.
개정 공정거래법에는 대기업의 벤처투자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들어 있다. 대기업 지주회사가 산하에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둘 수 있게 된다. 대기업 집단의 지주회사에 대해서는 그동안 금산분리의 원칙에 따라 CVC 보유가 금지됐다. 하지만 대기업 내 풍부한 유보자금을 생산적인 부문으로 유인하고, 전략적 유망산업의 벤처 육성과 벤처 생태계의 혁신을 촉진하자는 의도로 제한적 허용 방안을 마련했다. 공정위는 대기업 일반 지주회사의 CVC 보유를 허용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관계 부처와 업계 의견을 수렴해 CVC의 펀드 조성 과정에 계열사 자금 또는 외부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통로도 열어주기로 했다.
다만 CVC가 재벌의 과도한 지배력 확대나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등에 악용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일반 벤처캐피털은 자기자본의 1000%까지 외부자금 차입이 가능하지만, 지주회사가 설립한 CVC는 200% 이내로 차입이 제한된다. 또 펀드 조성 시 총수 일가나 계열회사 금융회사의 출자를 받을 수 없으며, 계열사나 총수 일가 관련 기업에 대한 CVC 투자도 금지된다. CVC 관련 행위 금지 조항을 어겼을 경우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2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형벌 규정도 새로 마련했다. 개정된 공정거래법은 공포일로부터 1년 후 시행된다. 다만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은 공포일로부터 2년이 지난 시점부터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의결권 행사 한도가 단계적으로 줄어든다.
금융그룹감독법_ 규제 사각지대 해소하고 금융소비자 보호
이번에 제정된 금융그룹감독법은 지주회사 없이 여러 금융회사를 거느리고 있는 기업집단에 대한 건전성 감독을 강화하기 위한 법률이다. 그동안 지주회사 형태의 금융그룹에 대해서는 금융지주회사법을 통해, 개별 금융회사는 개별 업법에 따라 금융당국이 감독해왔으나 비지주 금융그룹은 종합적인 건전성 감독과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이에 따라 동일 기업집단에 속한 금융회사들의 업종이 둘 이상인 경우이고, 소속 금융회사의 자산총액이 5조 원 이상이면 ‘금융복합기업집단’으로 지정해 한꺼번에 감독하겠다는 게 금융그룹감독법의 제정 이유다.
2020년 12월 기준으로 삼성, 한화, 교보, 현대차, DB 등 6개 그룹이 새 법의 적용을 받는다. 금융복합기업으로 지정된 기업집단은 대표 금융회사를 자율적으로 선정한 다음 전체 금융계열사의 내부 통제 및 위험 관리, 건전성 관리, 기타 필요한 공시와 보고 사항을 총괄적으로 취합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제출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이들 금융그룹의 자본 건전성과 위험 관리 실태를 주기적으로 평가해, 일정 기준에 미달할 경우 개선 계획의 수립과 수정·보완·이행·강제 등을 권고하거나 명령할 수 있다.
박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