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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야 할 장애인 비하 표현
겨울 추위가 매섭습니다. ‘겨울’ 하면 여러분은 무엇이 떠오르나요? 눈, 고드름, 새해, 겨울 바다…. 무엇보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는 흰 눈이 떠오를 겁니다. 특히 요즘처럼 힘들고 고달픈 시기엔 하염없이 떨어지는 흰 눈을 보며 시름을 잠시 달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폭설이라면 사정이 조금 달라집니다. 1월 6일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에 많은 눈이 내리면서 퇴근길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습니다. 어렵사리 집에 도착해 텔레비전을 켜니 뉴스에서 제설 장면이 나오더군요. 그때 현장 기자의 말이 귓전을 때렸습니다. “일부 시민들은 벙어리장갑을 끼고 나와 직접 눈치우기에 동참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문득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엄지손가락과 나머지 네 개 손가락을 따로 넣을 수 있는 장갑인데 왜 벙어리장갑일까.’ ‘언어장애인을 비하하는 벙어리와 장갑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벙어리장갑의 어원을 살펴보면 벙어리에는 ‘푼돈을 넣어 모으는 질그릇’이라는 사전적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벙어리장갑 모양이 질그릇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라는 말이 전해집니다. 또 하나는 ‘언어장애자는 성대와 혀가 붙어 있다’고 믿은 옛날 사람들이 네 개 손가락이 붙어 있는 형태의 장갑을 보고 벙어리장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주장으로 꽤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청각·언어장애인에게 큰 상처가 되겠죠. 이렇게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인데도 우리는 별 의심 없이 사용하는 현실입니다.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한 듯 일부에서 벙어리장갑의 새로운 이름을 지어달라는 캠페인을 진행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인데요. 남을 비하하는 말 말고 본연의 기능인 ‘착용의 간편함과 추위를 막는 데 도움이 되는 장갑’으로 부르자는 취지입니다. 이름 후보로는 ‘엄지장갑’ ‘주머니장갑’ ‘손모아장갑’ 등이 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최근 일부 언론은 정부의 정책을 깎아내리며 ‘절름발이 경제정책’이나 ‘절름발이 교육정책’ 등의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절름발이를 ‘한쪽 다리가 짧거나 다치거나 하여 걷거나 뛸 때 몸이 한쪽으로 자꾸 거볍게(무게가 적게) 기우뚱거리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정의합니다. 즉 절름발이는 한쪽 다리가 온전치 못하거나 다쳐 보행이 편하지 못한 지체장애인이나 환자를 낮잡아 비하하는 표현입니다.
벙어리장갑이나 절름발이처럼 일상 속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장애인 비하 표현으로는 ‘장님’, ‘귀머거리’ 등이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장님을 시각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정의합니다. 또 귀머거리는 청각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합니다.
지금은 쓰지 말아야 할 표현으로 간주되지만, 과거에는 공공연하게 쓰였던 장애인 비하 속담도 적지 않습니다. ‘벙어리 냉가슴’ ‘꿀먹은 벙어리’ ‘눈뜬 장님’ ‘장님 코끼리 만지기’ ‘눈 먼 돈’ 등이 그 예입니다. 그 수가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된 9604개의 속담 중 257개(2.7%)에 달한다고 합니다. 속담에 쓰일 만큼 일상적으로 널리 사용됐다는 뜻이지요.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관련 표현 사용을 지양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에 벙어리 대신 언어장애인으로 사용하자고 권장했습니다. 아울러 장님 대신 시각장애인, 절름발이 대신 지체장애인 등의 올바른 표현을 써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장애와 관련된 관행적 표현은 공적 영역에서 더욱 신중히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2006년 제61차 유엔(UN)총회에서 채택되고, 우리나라가 2008년 비준한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 8조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 편견 및 유해한 관행을 근절할 것”이라고 권고합니다.
이에 발맞춰 인권위도 “과거로부터 답습해오던 부정적 용어와 표현행위로 불특정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과 편견을 심화할 수 있어 인간 고유의 인격과 가치에 대해 낮게 평가할 수 있다”며 공적 영역에서 장애와 관련된 속담 등 관행적 표현을 자제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아무렇지 않게 습관처럼 쓰는 단어들이 누군가에게는 비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나마 장애인을 낮잡아 말하는 잘못된 언어를 개선해나가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들도 모욕받지 않을 권리, 행복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죠. 이번 겨울엔 벙어리장갑 말고 엄지장갑을 끼고 눈사람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백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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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