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누구와 무엇을 할까

2020.12.21 최신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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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뭘 입지? 끼니때가 되면 오늘 뭘 먹지? 고민한다. 여가 시간이 생길 때도 오늘 뭘 하지? 생각하곤 한다.
선택이 어려운 것은 선택이 수많은 가능성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김치찌개를 먹으려면 된장찌개를 포기해야 하고 양복을 선택하는 순간 청바지는 선택에서 제외된다. 어쩌면 우리는 김치찌개와 양복을 선택하는 것보다 된장찌개와 청바지를 포기해야 하는 것 때문에 갈등하는지도 모른다.
이 선택에 대한 고민은 요즘 같은 때 아이와 함께 지내는 동안 더 깊어진다.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이고 아직 혼자서 집에 오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하교 시간에 맞춰 교문 앞에서 기다려야 한다. 하교 시간 10여 분 전부터 교문 앞은 1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로 붐빈다. 아이를 데리러 나온 엄마들도 있고 손자를 마중 나온 할아버지 할머니도 있고 나처럼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걸치고 나와 아이를 기다리는 아빠들의 모습도 보인다.
여름에는 그늘진 곳에 모여 서서 교문 쪽을 바라보던 학부모들은 겨울이 되자 햇볕이 드는 곳에 모여 교문 쪽을 바라본다.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오늘 아이와 뭘 하면서 지낼까’에 대해 생각한다.
동네 놀이터를 돌아다니는 것은 어떨까? 예전에는 몇 번 간 놀이터에서도 즐거워했는데 이제는 여덟 살이 되었다고 좀 지루해한다. 몇 번 타본 그네와 시소에 아이를 다시 태우는 것은 그렇게 좋은 선택이 아니다. 연을 날릴까도 생각했지만 연을 날릴 만큼 바람이 불지 않는다. 산에는 갔다 온 지 얼마 안 돼서 아이가 힘들어할지 모른다. 집 안에서 칼싸움이나 총싸움을 할 수도 있다. 퍼즐을 같이 맞추거나 풍선을 불어 배구를 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그동안 아이와 무엇을 하면서 놀았나 싶다.
이틀 전에는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담아서 아이와 무작정 돌아다녔다. 힘들면 양지바른 곳에 앉아 쉬다가 몸이 식으면 아이가 가고 싶은 길을 따라 걸었다. 놀이터가 있으면 한동안 그곳에서 놀았고 편의점에 들어가 군것질거리도 샀다. 그러다 근처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평일인데도 학생들이 거의 없었고 아이와 나는 조용하고 넓은 캠퍼스를 걸으며 이것저것 구경했다. 아이는 학교 안에 기숙사 건물이 왜 있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가 아는 학교는 그렇게 넓지도 않고 운동장이 몇 개나 되지도 않았다. 우리는 해가 잘 드는 농구장에서 깡통을 차며 놀았다. 벤치에 앉아서 가방에 넣어온 과자를 꺼내 먹었고 그런 다음 소나무가 있는 언덕에 올라갔다.
바닥은 그냥 흙이었다. 우리는 흙바닥에 주저앉아 준비해온 차를 마셨다. 어디나 햇살이 좋은 날이었다. 가끔씩 사람들이 지나다녔고 어디선가 나무를 태우는 냄새가 났다. 그냥 그게 다였다. 우리는 그곳에 10분쯤 앉아 차를 마셨고 종이접기에 대한 이야기와 학교급식 이야기를 했다. 그런 다음 언덕을 내려와 집으로 갔다.
시간이 되면 교문에서 아이들이 걸어 나온다. 혼자 나오거나 친구와 함께 나오는 아이는 고학년이다. 1학년들은 담임선생님의 인솔 아래 줄을 서서 나온다. 아이를 발견한 학부형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아이를 맞는다. 내 아들의 모습도 보인다. 나를 보면서 손을 흔들고 있다.
생각해보면 뭘 하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중요하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와 같이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소나무가 있는 언덕에 앉아서 차를 마시는 동안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 아들과 이곳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행복하다고.
가방을 멘 아이가 나에게 달려와 매달린다. 오늘은 학교에서 무엇을 했고 급식에 어떤 음식이 나왔고 체육 시간에는 어떤 놀이를 했다고 얘기한다. 그 얘기를 들으며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오늘은 아빠랑 뭐 하며 지낼까?”

강태식_ 소설가. 2012년 한겨레문학상 수상. 소설 <굿바이 동물원> <두 얼굴의 사나이> <리의 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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