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동화작가 고정욱과 일러스트레이터 미긍주혜. 먼저 줌을 접한 고 작가가 캠프에 미긍 작가를 초대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강사들의 대처법
# 학교, 기업, 문화센터 등지에서 주로 인문학 강의를 하는 이 선생은 시쳇말로 백수가 되었다. 2월, 3월, 4월에 개강하기로 일정이 잡혀 있던 문화 강좌가 졸지에 폐강되거나 연기되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대학은 물론 초·중·고등학교까지 정상적인 등교수업을 못하고 있다. 나와 같은 인문학 강사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사람이 모여야 강의를 하지. 수강생들이 모이지 못하는데 무슨 강의가 이뤄지겠는가.”
# 경기 성남에 사는 50대 후반의 교육 강사 김 씨는 최근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을 신청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강의가 뚝 끊겨 소득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8월에 지역 평생학습관에서 강의가 잡혀 있다. 수강생 모집 공고까지 났다. 하지만 강의가 정말 시작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줌(Zoom)’ 플랫폼을 활용한 실시간 쌍방향 강연 장면. 준비한 강연 자료를 화면에 띄워 참여자들과 공유할 수 있다.│박용기
대면 강연을 주된 경제활동으로 해온 주변 사람들의 코로나19 이후 생활상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있는 문화센터, 평생학습관, 복지관, 도서관 등 공공 다중이용시설은 대부분 휴관 상태다. 넘쳐나던 인문학 강의는 전멸이다. 강의를 기획하고 강사를 관리했던 기획사들은 파업 직전이다. 6월 27일 서울 당산동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가 북적거린 이유도 이들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말인데도 아침부터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 2층 학습장에는 3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전국 강사 화상 강연 및 수업을 위한 원데이 캠프’다. 이날 캠프는 ‘줌(Zoom)’ 플랫폼 심화학습 시간이다.
“5월에 기본교육을 진행했다. 그 뒤 강연 요청이 쇄도해 오늘 두 번째로 심화학습 시간을 마련했다.” 소아마비 장애를 딛고 국내 대표적인 아동문학가로 우뚝 선 고정욱 작가의 말이다. 고 작가는 정은상 맥아더스쿨 교장과 모바일 화가 정병길 씨, 김원배 장충중학교 교사와 함께 오늘 학습을 주최했다. 현장에서 아이를 가르치고, 장애인식개선 교육을 하고, 창직을 지도하고, 모바일 그림을 가르치는 이들이다. 먼저 줌을 접한 4인방은 ‘줌 유격대’가 되었다.
학습 현장에 모인 사람들은 다양했다. 의사, 목사, 교사, 출판사 대표, 삽화가, 도형심리 교사, 비트코인 가상화폐 전문가 등에 장애인과 비장애인도 섞였다. 나이와 직업, 신체적 여건도 다르지만 이들에겐 공통된 고민이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 열린 이른바 ‘비대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다. 참여자 상당수가 강연과 교육을 경제활동으로 하는 사람들인 만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생존법’ 찾기는 절실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김원배 장충중학교 교사(왼쪽)는 학교에서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면서 터득한 줌 사용법을 캠프에 참석한 강사들에게 아낌없이 공개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생존법 찾기
“충북 영동 지역의 초등학교와 ‘1인 1책 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었다. 책 안에 자신의 생각을 담는 책 쓰기 활동을 통한 일종의 통합교육 방식이다. 기존 교육환경이 멈춘 지금, 대안의 첫걸음으로 선택했다.” <책 만들며 크는 학교> 시리즈를 20년째 발간하고 있는 도서출판 아이북의 권성자 대표가 오늘 줌 학습 현장을 찾은 가장 큰 이유다.
시각장애 일러스트레이터 미긍주혜 작가도 마찬가지다. “변화에 맞춰 나를 바꿀 시기다. 해오던 장애이해 교육과 미술 심리치료를 비대면 강연으로 해보려고” 왔단다.
사실 오늘 학습장을 주최한 ‘줌 유격대’ 4인방도 같은 고민에서 출발했다. “1년에 350회 정도 강연한다. 문학과 고난 극복을 주제로 20년간 정말 바쁘게 독자들을 만났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지고 상반기가 지났지만 10회 남짓 강연을 했다.” 인기 강사인 고정욱 작가 사정도 팍팍하긴 매한가지. “그러던 어느 날 부산의 동항초등학교에서 장애인식개선 교육을 줌으로 해보자고 연락이 왔다. 그다음에는 부산 중앙여고에서 구글 클래스룸을 사용해 온라인 강의를 제안했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며 진행했던 현장학습 방식에서 온라인으로 비대면 강연을 치른 e학습터는 고 작가에게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쉽고 편리했다. 공유 기능도 뛰어나 준비한 강의 문서나 영상을 공유하기도 수월했다.”
이날 참석한 박용기 한국가상화폐연구소 소장도 비대면 e학습터의 가능성에 공감했다. “경영 컨설팅을 제공해주는데 지방 출장이 잦은 편이다. 줌을 활용한 화상회의로 진행하니까 아주 편하다. 이동의 효율성이 탁월하다. 무엇보다 쌍방 의사소통이 되니 자료도 공유하고 장점이 많다. 요즘 공저로 책을 쓰고 있는데, 각자 원고를 화면에 띄워 논의한다.”
사상 처음 실시하는 온라인 개학 속에서 ‘비대면 교육’에 직면한 교사들은 어떤가? 김원배 장충중학교 교사는 “출석 체크, 토의, 토론부터 궁금한 점을 바로 질문하고 답변을 받을 수 있다. 화이트보드를 띄워 체크나 밑줄 첨삭도 가능하다”며 줌을 활용한 실시간 쌍방향 수업의 장점을 꼽았다. 그러면서 “학교 현장에서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아이들도 교사들도 온라인 교육환경에 익숙하지 않았다. 게다가 인터넷 환경과 장비 등도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지 않다”며 고충과 문제점도 함께 언급했다. 김원배 교사는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면서 터득한 줌 사용법을 이날 강사들에게 아낌없이 공개했다.
▶‘전국 강사 화상 강연 및 수업을 위한 원데이 캠프’를 찾은 참석자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생존법을 찾기 위해 모였다.│박용기
비대면 교육에 대비하라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우리가 지금 경험한 작고 큰 변화들은 위기 대응을 위한 땜질식 처방으로 그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강사와 학습자 모두에게 현장 강의는 이제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설 학원 등은 예외일 순 있겠지만, 시민 평생교육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에서 강의했던 강사들은 인식을 바꿔야 할 시점이다. 코로나19 이후의 교육환경은 거의 비대면으로 갈 것이라고 이미 전문가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진단했다.
정부도 코로나19 사태가 몰고 온 교육환경의 변화에 빠르게 대비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비 교육 분야 한국판 뉴딜 추진을 위한 2020년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이 7월 3일 국회를 통과했다. 초·중등학교 디지털 교육 인프라 구축, 대학 비대면 교육 긴급 지원, 대학원격교육지원센터 및 국립대학 정보통신기술(ICT) 고도화 등 디지털·그린 뉴딜 사업에 4260억 원을 투자한다. 2025년 세계 에듀테크 시장 규모는 3420억 달러로 예상, 2018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교육과 기술의 합성어인 에듀테크는 한마디로 정보기술과 교육의 화학적 결합을 의미한다.
의도치 않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대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디지털 세상에서 대면해야 하는 시대가 성큼 도래했다. “창작은 수강생들이 쓴 작품을 읽고 토론하면서 스스로 깨치는 작업이다. 강사는 방향을 일러주고 마무리 정리를 하며 다시 쓸 수 있도록 이끌면 된다. 그것이 인터넷으로, 흔히 말하는 사이버 강좌로 가능할까.” 일부 풀리지 않는 고민 속에서도 프리랜서 강사들이 줌이나 구글 행아웃 등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실시간 쌍방향 강연에 주목하는 배경이다.
코로나19로 내몰린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지금 당신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오히려 강의의 영역은 확장되고, 교육 콘텐츠와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능력만 있다면 일하고 싶을 때까지 어디서든 할 수 있다”는 기회를 프리랜서 강사들은 ‘비대면 강의’에서 찾고 있다.
심은하 기자
줌, 행아웃, 팀스가 뭐지?
줌(Zoom), 구글 행아웃(Google Hangout·Hangout Meet), MS 팀스(Microsoft Teams), 시스코 웹엑스(Cisco Webex) 등은 영상회의를 가능하게 하는 해결책(솔루션)이다.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은 세계 1위로, 일간 사용자가 3억 명에 이르는 ‘줌’이다. 줌이 다른 솔루션과 차별되는 강점은 간단하게 영상 대화(채팅)방을 만들 수 있고 채팅방 주소를 공유하기도 편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용 비용도 동시접속 인원이 100명 안에서 최대 80분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줌의 대항마로 구글의 영상회의 솔루션 ‘미트’가 있다. 100명이 동시에 접속할 수 있으며, 인공지능(AI)이 대화 내용을 받아쓰기해 준다. 특히 강력한 보안기술이 자랑이다. 사용 비용은 무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