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주행사장인 올림픽 메달플라자에서 6월 19일에 진행된 재즈 보컬 나윤선의 무대
방역 돋보인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코로나19 확산세로 전례 없는 ‘무관객 영화제’가 치러지는 요즘이다. 그 가운데 지역의 특색을 충분히 활용해 대안 찾기에 나선 영화제가 관객과 만났다. 6월 18일부터 23일까지 6일간 ‘다시 평화’를 주제로 열린 평창국제평화영화제(PIPFF)다. 대관령의 맑은 공기와 자연 속에서 철저한 방역과 함께 그야말로 ‘평화로운’ 영화제를 치렀다. 영화제 관객들도 지역 주민도, 우연히 들른 여행객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치유의 시간. 세계적 유행(팬데믹) 이후 새로운 일상, 다시 평화를 위한 새로운 영화축제의 현장을 전한다.
▶가장 눈길을 끈 ‘클린강원 패스포트’. QR코드 기반의 전자출입명부 시스템이다.
“2020년에는 모든 영화제가 온라인으로 열려 답답했는데, 평창이 우리 부부에게 휴가를 줬어요.” 영화제 셔틀버스로 평창에 도착한 영화 마니아인 박은경 씨 부부는 너무 즐겁다. 매해 다니던 영화제가 온라인 개최로 바뀌어 우울하던 참에 온 기회였다.
코로나19 불안감에 대해서는 “영화제 누리집에 들어갔더니 ‘클린강원 패스포트’ 방역 시스템이 우선 안심을 시켜주더라고요. 셔틀버스도 거리두기로 한 좌석씩 띄어 앉아 왔어요”라며 영화제 측의 방역 조치에 믿음을 드러냈다.
‘클린강원 패스포트’는 강원도가 도입한 전자 스탬프 방역 시스템이다. 평창국제평화영화제도 클린강원 패스포트를 통해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의 방문 내용과 인적 사항을 기록, 관리한다.
박 씨 부부가 서울에서부터 타고 온 영화제 셔틀버스는 48인승 대형 버스였다. 영화제 측은 좌석의 절반인 24명만 선착순으로 예약을 받았다. “셔틀버스 탑승 내내 마스크 착용도 필수였다”고 박 씨는 덧붙였다.
▶대인 소독기가 영화제 주요 상영관에 비치되어 있다.
전자 스탬프 방역 시스템에 대인 소독기까지
영화제 주 행사장인 올림픽메달플라자를 개막식 몇 시간 전에 미리 방문했다. 평창군의 중심 상권인 횡계로터리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았다. 다섯 갈래 길이 하나로 모이는 로터리 주변으로 도로와 상가들이 말쑥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올림픽메달플라자 입구부터 방역이 철저하다. 기자도 예외는 없었다. 올림픽메달플라자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앞사람과 거리를 두고 줄을 서야 한다. 발열 검사를 하고 나면 본인의 휴대전화로 ‘클린강원 패스포트’를 인증해야 한다. 미리 회원 가입을 해서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만 입력하면 바로 접속됐다. 발열 증상이 없음을 확인한 뒤 휴대전화 속 ‘건강하시네요!’ 버튼을 누르게 한다. 이후 ‘스탬프 적립’ 화면에 영화제 제작진이 스탬프를 찍어준다. 통과인 줄 알았는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바로 이어 대형 소독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마치 공항에서 검색대를 통과하듯 지나가야 한다. 대인 소독기로 들어서는 순간 ‘쏵~’ 하는 소리와 함께 분사되는 물질에 온몸에 들러붙어 있던 균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올림픽메달플라자 안으로 들어가려면 매번 반복해야 하는 과정이다.
조금 복잡하고 깐깐한 방역 절차를 거치고 들어선 올림픽메달플라자는 꽤 넓게 구성되어 있었다. 먼저 개막식 행사를 비롯해 야외 상영과 공연이 펼쳐질 주 행사장답게 대형 스크린과 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그 앞으로 의자들이 떨어져 배치되어 있었다. 일부 좌석은 뒤로 젖히고 앉게끔 피크닉 의자로 되어 있어 편안함을 더했고, 의자 위로 가림막을 쳐서 햇빛과 비에도 대비했다.
▶방역 통과 후 찍어주는 확인 도장
저녁 8시부터 배우 박성웅의 사회로 진행된 개막식은 엄격한 거리두기로 500명의 게스트만 초청됐다. 더불어 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한 해외 영화인들은 관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와 세계적 유행 상황에 대한 위로를 담은 영상을 보내왔다.
세계적 유행 상황에서 처음 열린 오프라인 영화제인 만큼 철저한 방역은 평창국제평화영화제의 가장 큰 화두다. 여섯 곳의 상영관은 거리두기를 반영해 적은 인원만 입장할 수 있는 좌석으로 조성됐다. 상영관을 비롯해 행사장, 게스트 라운지, 프레스센터 등 영화제 모든 공간은 정부의 방역 지침을 철저히 지키는 가운데 운영됐으며, 각 상영관과 행사 공간에서는 매일 방역과 상영관 입장 전 손 소독 및 체온 측정이 진행됐다. 대인 소독기도 주요 행사장 곳곳에 설치되었다. 그물망 같은 방역체계로 입장 시간이 조금 지연되긴 했지만 관객들은 “오히려 안심”이라며 질서 있게 따랐다.
▶개막식 채비로 분주한 영화제 주 행사장인 올림픽메달플라자
‘일상의 평화’를 담은 프로그램
코로나19 시대, 평창국제평화영화제는 야외 상영 공간의 다변화를 꾀했다. 월정사, 바위공원, 올림픽메달플라자, 용평리조트 등 평창의 쾌적한 공기와 탁 트인 자연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곳을 상영 공간으로 정하고, 그곳과 어울리는 프로그램을 짰다. “2020년 영화제를 개최할 수 있었던 것은 강원도였기 때문”이라는 방은진 집행위원장의 말처럼 영화와 자연, 음악이 어우러진 ‘치유(힐링)’ 프로그램을 영화제는 다양하게 준비했다.
특히 오대산 월정사는 행사 오전부터 북새통을 이뤘다. 선재길 걷기 명상에 이어 하림, 바비 킴, 웅산이 선사하는 힐링 콘서트와 올 상반기 히트작 <찬실이는 복도 많지> 상영까지. 월정사를 찾은 관객들은 갑작스러운 소나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혜의 자연을 배경으로 한 축제를 온몸으로 즐겼다.
두 아이와 함께 월정사를 찾은 김경민 씨 가족은 “영화제인 줄 모르고 왔는데,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자연 속에서 즐기는 문화 체험이 아이들에게 큰 교육이 되었다”며 “2021년에도 영화제 기간에 또 오고 싶다”면서 평창국제평화영화제를 응원했다.
123개의 기암괴석이 전시된 바위공원에서는 거리 공연(버스킹)과 강원 출신 이순원 작가와 함께하는 토크 프로그램, 영화 상영이 진행됐다. 용평리조트 야외무대에서는 돗자리와 텐트, 간식 등을 지참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는 피크닉 시네마를 진행했다.
주 행사장인 올림픽메달플라자에서는 재즈보컬 나윤선과 아카펠라 그룹 ‘엑시트’, 한국전통 타악그룹 ‘태극’, ‘마린보이’의 공연과 영화가 상영되는 PIPFF 페스티벌이 매일 밤 진행됐으며, 낮에는 ‘팔로우P’ 거리 공연이 이어졌다.
영화제를 즐기러 서울에서 내려온 김민 씨는 “평창영화제에서 보낸 하루하루가 치유(힐링)의 시간이에요. 정말 행복합니다”라며 오랜만에 느끼는 평화로운 일상에 감사했다.
▶평창 지역의 특색을 살린 상영관들. 위쪽부터 월정사, 포테이토 클럽 하우스. 영화제 기간 마련된 여섯 곳의 상영관은 거리두기를 반영해 적은 인원만 입장할 수 있다.
지역민과 어우러진 축제의 장
제2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는 지역과 함께 어우러진 축제의 장으로도 발전했다. 2019년 평창올림픽스타디움 야외에서 개최된 개막식은 2020년 횡계리 올림픽메달플라자 광장으로 옮겨왔다.
광장 인근에서 감자와플 가게를 운영하는 청년상인은 “2019년에는 영화제를 하는 줄도 몰랐는데, 2020년엔 광장에서 하니까 체감이 됩니다”라며 영화제를 반겼다. 매출에도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메뉴 중 소시지가 품절됐어요. 여유 있게 준비한다고 했는데, 영화제에 온 분들이 많이 와주셨어요”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만화가 허영만이 방송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오삼불고기집도 “영화제 개막 이후로 손님들이 늘었다”는 반응이다.
횡계리 주변 상점에는 포스터와 홍보 책자가 비치됐으며, 지역 상인들의 응원 현수막도 걸려 있다. 지역민과 다양한 이벤트 협력도 진행됐다. 파트너를 맺은 가게들은 찾아온 관객들에게 도장을 찍어주며 영화제 스탬프 투어 이벤트에 동참했고, 주 행사장인 올림픽메달플라자에서는 대관령 올림픽로드 프리마켓이 열렸다. 영화제 기간 문성근 이사장과 방은진 집행위원장 등이 함께한 가운데 강원도 파프리카 판매 이벤트도 진행돼 100세트 물량을 30분 만에 전부 판매했다. 그 밖에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유료 티켓을 구입한 관객들에게 강원상품권을 증정했고, ‘야놀자’ 애플리케이션(앱)과 연계해 영화제 기간 강원도 숙소를 예약한 고객들에게는 영화제 티켓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발열검사, 객석 띄어 앉기 등 알펜시아 시네마 상영관의 방역 모습
대유행 상황에서 치른 영화제의 성과
영화제 직전까지도 우려가 많았던 평창국제평화영화제는 많은 영화인과 관객들의 호평을 받으며 6월 23일 막을 내렸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34개국에서 온 96편의 영화가 상영됐다. 여성 감독 김도영, 윤가은, 김보라, 한가람과 진행한 토크 프로그램, 영화 <남부군> 리마스터링(음질 향상이나 녹음방식 변화를 위해 다시 마스터링하는 일) 버전 공개 후 진행된 정지영 감독 강좌(마스터클래스) 등은 영화인들이 함께 참여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또 예매 20여 초 만에 매진된 구교환, 이옥섭 감독 스페셜 토크는 영화 팬들로 객석을 가득 메웠다.
극장 관객은 2680명, 야외 상영 참여 관객은 2080명으로 총 4760명의 관객이 참여해 점유율 63%를 기록했으며, 총 88개 회차에서 12개관이 매진됐다. 영화제 부대 행사 참여는 5883명, 영화제 전체 참여 인원은 총 1만 643명으로 최종 집계됐다.
영화제 개막식에서 문성근 이사장은 “코로나19로 멈춰진 세상, 그리고 다시 멈춰 서는 남북 관계를 보며 ‘다시 평화’가 오기를 염원한다”고 말했다. 평창국제평화영화제가 남긴 질문과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볼 시간이다.
글·사진 심은하 기자